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성인대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미시령 성인대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평화누리길 7코스
- 오블완
- 군위 팔공산
- 해파랑길 8코스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앙코르와트
- 해파랑길 20코스
- 명동 성당 미사
- 평화누리길 4코스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김포 한재당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북한산 만포면옥
- 김포 문수산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평화누리길 3코스
- 해파랑길 48코스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단양 구담봉
- #강화나들길 3코스
- 티스토리챌린지
- Today
- Total
노래하는 사람
4월의 꽃들 - 17년 4월 주변의 꽃들 본문
이제 그야말로 김용택의 말처럼
"이 꽃들이 시방 제정신이 아니지라, 다 미쳤지라." 라는 소리가 나오는 계절이 왔다.
주변이 이리 아름다우니 "내 마음도 덩달아 이리 지랄이고."
내가 사는 도시 일산은 그야말로 온 도시가 꽃으로 둘러 싸인다.
일년중 단풍드는 가을도 참 아름답지만 이 4월은 정신을 못차리게 아름답다.
길을 그냥 걸어갈 수가 없다.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서서 카메라를 계속 들이대게 된다.
아침 산책 시간이 30분이면 되는 길인데 한시간도 더 걸린다.
어제 밤에 호수공원은 벚꽃이 만발했었는데 비 온 후여서인지 더 아름다웠다.
진달래 -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 꽃이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아름다운 꽃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진달래에서 슬픔을 느낄까?
아래 소월의 시 때문일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진달래꽃의 다른 이름인 두견화에도 슬픈 전설이 있다.
여러 전설 중에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보면 (http://cafe.daum.net/sunkyungkimmini0C0/SKDL/64?q=%B5%CE%B0%DF%C8%AD%20%C0%FC%BC%B3에서 복사해 온 글이다.)
진달래의 한자 이름은 두견화(杜鵑花) 또는 척촉(척촉)이다. 여기에는 형을 그리워 하는 동생의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척=擲+躪 촉=觸+躪
옛날 중국의 촉(蜀)나라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자 계모가 들어 왔다. 계모의 학대로 형은 집을 쫓겨나고 말았다. 나중에는 동생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오고 말았다.
어느 따뜻한 봄날 동생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 새가 되었다. 그 새가 바로 두견새이다. 형를 찾아 헤매던 두견새는 매년 진달래꽃이 필 때면 고향을 찾아와 언제나 형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슬피 울었다.
촉나라로 돌아 갈꺼나! 촉나라로 돌아갈거나!
귀촉도(歸蜀道)! 귀촉도(歸蜀道)!
목이 찢어져라 슬피 울다가 마지막에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래서 진달래와 철쭉에는 지금도 붉은 피가 점점이 묻어 있다. 고사에서 말하는 두견화는 철쭉을 지칭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달래는 분명 아니다.
새 이름 두견은 두견이를 말한다. 우리 말이 한자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귀촉도는 소쩍새를 말한다. 같은 여름 철새이긴 하지만 분명 다른 새이다. 옛 사람들이 진달래와 철쭉을 따로 구분해서 쓰지 않았듯 새도 서로 다른 종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
두견화 전설에 대해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은 "두견화는 지극히 아름다운 꽃이지만 일반인들은 비극의 꽃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뻐꾸기의 피눈물 나는 울음 속에서 핀 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두견이도 소쩍새도 아니고 뻐꾸기로 기술돼 있다.
아파트 화단에서 흔히 보는 산수유가 아니다. 산에서 볼 수 있는 생강나무꽃이다.
산수유와 비교해보면 산수유가 훨씬 화려하다. 나무도 산수유는 껍질이 많이 일어나서 지저분해 보이지만 생강나무는 매끈하고 잎이나 가지를 씹어보면 정말로 생강맛이 난다.
대학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은 봄에 아마 현숙이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라일락 잎 때문에 입안이 한동안 너무 써서 혼났던 기억이 있다.
당시 커피 크림 중에 라일락이라는 상표가 있었다.
현숙이가 라일락 잎을 따서 내게 주면서 이 잎을 꼭꼭 씹어보면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하면서 주었다.
라일락이라는 커피 크림도 이 라일락잎으로 만든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자기 손에도 이빨로 씹은 흔적이 있는
잎을 들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몇번 씹었는데 얼마나 쓰든지...
나를 이렇게 놀리고나서 하는 말이 자기들이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은 나를 놀릴려고 이빨로 씹은 것이 아니라
손톱으로 그렇게 눌렀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을 놀릴려고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대구 촌놈이 이런 서울내기들한테 당하고 나서도 그 후로 같이 잘 놀았다.
그래서 나도 요즘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점심시간에 학교 뒷산에 산책하러 가면서 데려갈 때 이런 장난을
해보는데 참 재미있다.
선생님에게 속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세상에 믿을 놈 정말 하나도 없다고 하겠지?
할미꽃 전설 - http://blog.naver.com/heotas/220955855253 에서 복사해 옴
옛날 어느 깊고 외진 산골에서 할머니가 두 손녀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부지런히 일을 하며 어렵게 두 손녀를 키웠습니다.
큰손녀는 얼굴이 예쁜 처녀였지만 마음씨는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손녀는 별로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곱고 착했습니다.
"언니. 할머니께서 힘들어하시니 저녁밥은 우리들이 짓도록 합시다."
"어른이 계시는데 왜 네가 설치니? 괜히 너 혼자 잘난 척하지 마!"
할머니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큰손녀를 걱정했습니다.
"에그, 저렇게 속이 좁은 것이 어떻게 시집을 가려는지, 원!"
어느덧 큰손녀와 작은손녀는 나이가 차서 시집갈 때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들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이제 너희도 나이가 찼으니 좋은 데가 있으면 얼른 시집을 가야지."
큰 손녀는 '네, 할머니!'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작은손녀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니에요, 할머니. 전 시집가지 않고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오래 살겠어요."
할머니는 작은손녀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얘야, 네 말은 고맙다만 누구나 나이가 차면 시집을 가야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이웃 동네의 부잣집에서 중매쟁이가 할머니를 찾아왔습니다.
"누추한 집에 무슨 일로 오셨수?"
"저, 이웃 마을의 김 부자 댁에서 이 집에 예쁜 처녀가 둘씩이나 있다기에 선을 보러 왔지요."
그 때 큰손녀가 쪼르르 뛰어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중매쟁이에게 큰손녀를 소개했습니다.
"이 애가 제 큰손녀입니다."
중매쟁이는 큰손녀의 예쁜 미모에 홀딱 반해 버렸습니다.
큰손녀는 김 부자 댁에 시집을 갔고, 작은손녀는 먼데 사는 성실한 산지기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작은손녀는 시집가던 날,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할머니, 몸 건강히 계세요."
세월이 흘러 손녀들을 시집 보낸 지도 몇 년쯤 되었을 때 할머니는 홀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너무 늙고 병까지 들어 도저히 혼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들에게 찾아가 이 늙은 할미를 보살펴 달라고 해 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이웃 동네의 큰손녀를 찾아갔습니다.
"여보세요, 여기가 이웃 마을에서 예쁜 색시를 며느리로 맞아 온 부잣집이지요? 저는 그 애의 할미가 되는 사람입니다."
조금 있으려니까 화려한 비단옷에 금목걸이를 하고 금팔찌를 찬 큰손녀가 나왔습니다.
큰손녀는 할머니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할머니가 자기에게 얹혀 살러 온 것을 알고는 푸대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큰손녀는 할머니만 보면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할머니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는 큰손녀 몰래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눈앞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 오래 살겠다고 하던 작은손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작은손녀의 집은 높은 산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스로 고개를 올라가고 있는데 찬바람이 쌩쌩 불어 왔습니다.
춥고 숨이 차서 할머니는 한 발짝도 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할머니는 그만 고갯마루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작은손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할머니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작은손녀는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언덕쪽으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 곳에서는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슬슬 집을 나섰던 작은손녀는 거기서 할머니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나! 할, 할머니 아니세요!"
작은손녀는 엉엉 울면서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었습니다.
다음 해 봄, 그 무덤에서는 '할미꽃' 한 송이가 마치 사랑하는 손녀들을 보내고 나서 늙고 병들어 힘없이 살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피어났습니다.
https://youtu.be/tkRQnK-jVn4?list=PLnbyTb8e2zApVyoUWMlL2Vvu
성수네랑 구천 선배가 지휘하는 국립합창단의 연주회에 갔다 오다.
지휘자 옆에 있는 오늘의 Sop.Soloist도 우리 후배였다.
연주곡은 내일(4/16) 부활주일을 앞두고 샤르팡티에(M.A Charpentier)의 Te Deum과 드보아(Th. Dubois)의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7말씀"을 연주했다.
오늘(4/16)은 우리 찬양대의 찬양이 없이 샬롬이 칸타타하느라고 2,3부 찬양을 다 했다.
그래서 우리는 3부 예배 끝나고 밥 먹기 전에 잠깐만 연습하고 오후연습이 없었다.
나는 이 빈 시간을 이용해서 교회 앞에 있는 한강을 나가보았다.
오랜만에 나가는 한강에는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뛰는 사람,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등
다양한 사람들이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아래는 한강 나가다가 그리고 한강변이 있는 꽃들을 찍은 사진이다.
'자연, 꽃,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천 수타사 생태숲 17-05-27 (1) | 2023.01.10 |
---|---|
안곡 습지 공원 17-05-20 (0) | 2023.01.10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0) | 2023.01.06 |
2017년 3월 내 주변의 봄 꽃들 (0) | 2023.01.05 |
2016년 아파트 주변의 가을 풍경 016-11-08 17:45:54 (0) | 2022.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