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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삼릉 17-10-19 본문
중간 고사 둘째 날 일찍 끝나서 혼자 가다.
전에는 공릉으로 불린 적도 있고 공순영릉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침 문화재 안내원이 계셔서 친절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능에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에 박물관이 있어서 간단히 공부하고 들어갈 수 있다.
왕릉이 조선 전기와 후기에 조성된 것은 양식이 다르다.
'ㄷ'자 집이다.
공릉恭陵(예종비 장순왕후)
위치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능의 형식 :단릉
능의 조성 :1462년(세조 8), 1470년(성종 1)
능의 구성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왕세자빈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있는 향로는 직선축이 아닌 절선축으로 조성되었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석양과 석호 1쌍씩 배치하였다.
조선전기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하였기 때문에 망주석을 생략하였고, 봉분을 크게 조성하였다.
능의 역사
1461년(세조 7)에 장순왕후 한씨가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이듬해인 1462년(세조 8)에 파주 보시동(普施洞)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470년(성종 1)에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하였다.
장순왕후(章順王后) 이야기
장순왕후 한씨(재세 : 1445년 음력 1월 16일 ~ 1461년 음력 12월 5일)는 본관이 청주인 상당부원군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민씨의 셋째 딸로 1445년(세종 27)에 사저에서 태어났다.
1460년(세조 6)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이듬해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1461년(세조 7)에 안기(安耆)의 사저에서 17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조는 세상을 떠난 왕세자빈에서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성종 즉위 후 1470년(성종 1)에 장순왕후로 추존되었다.
한명회의 3째 딸로 1460년에 왕세자빈이 되었지만 이듬해 원손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순릉은 제 9대 성종의 첫 부인인 공혜왕후의 능으로 한명회의 넷째 딸이다.
그러니까 한명회의 셋째 딸은 8대 예종의 비가 되었고 넷째 딸은 9대 성종의 비가 되었으니 자매가 시댁에서는 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되었다.
순릉順陵(성종비 공혜왕후)
위치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능의 형식 :단릉
능의 조성 :1474년(성종 5)
능의 구성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파주 삼릉 내에 있는 3기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한 능인데, 공혜왕후는 중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수라간,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비각에는 한 기의 능표석이 있는데 ‘조선국 공혜왕후 순릉(朝鮮國 恭惠王后 順陵)’이라고 새겨져 있다.
능침은 병풍석은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2쌍씩 배치하였다.
장명등은 공릉의 장명등과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어 세부적인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조선 전기 장명등의 전반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점에서 비슷하다.
무석인은 머리에 투구를 쓰고 양손으로는 칼을 잡고 무관의 갑옷을 입고 목을 움츠린 모습이다.
갑옷의 선은 뚜렷하지만 얼굴은 다소 경색된 표정을 하고 있다.
능의 역사
1475년(성종 5)에 공혜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순왕후의 공릉이 있는 파주에 능을 조성하였다.
공혜왕후(恭惠王后) 이야기
공혜왕후 한씨(재세 : 1456년 음력 10월 11일 ~ 1474년 음력 4월 15일)는 본관이 청주인 상당부원군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민씨의 넷째 딸로 1456년(세조 2)에 연화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와는 자매지간이 된다. 1467년(세조 13)에 자을(잘)산군(者乙(乽)山君, (성종))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에 봉해졌으며, 1469년에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성종 사이에서는 소생을 낳지 못하였으며, 1474년(성종 5)에 창덕궁 구현전에서 19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죽고 사는 데는 천명이 있으니, 세 왕후를 모시고 끝내 효도를 다하지 못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을 한탄할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영릉永陵(추존 진종과 효순황후)
위치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능의 형식 :쌍릉
능의 조성 :1726년(영조 5), 1752년(영조 28), 1776년(정조 즉위)
능의 구성
영릉은 추존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 조씨의 능이다.
영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진종소황제, 오른쪽이 효순소황후의 능이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검소하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영릉의 비각은 총 2개로 비각 안에는 세 기의 능표석이 있다.
1비는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 2비는 진종대왕(眞宗大王)의 비, 3비는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의 비로 진종이 추존될 때마다 능표석을 새로 세웠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1쌍씩 배치하였다.
문석인은 관모를 쓰고 양손으로는 홀(笏)을 쥐고 있으며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한 편이다.
관복의 소매는 길게 늘어져 있고, 팔꿈치 부근에는 세 줄의 주름이 새겨져 있다.
능의 역사
1728년(영조 4)에 진종이 왕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729년(영조 5)에 파주 순릉 왼쪽언덕인 지금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751년(영조 27)에 효순소황후가 왕세자빈(현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752년(영조 28)에 효장세자묘 왼쪽에 묘를 조성하였다.
그 후 1776년에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조의 계승상 아버지가 되는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능의 이름을 영릉이라 하였다.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 이야기
진종소황제(재세 : 1719년 음력 2월 15일 ~ 1728년 음력 11월 16일)는 영조와 정빈 이씨의 아들로 1719년(숙종 45)에 창의궁에서 태어났다.
1724년에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경의군(敬義君)에 봉해졌다가 이듬해인 1725년(영조 1)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728년(영조 4)에 창경궁 진수당에서 10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왕세자에게 효장세자(孝章世子)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후 1776년(영조 52)에 영조의 명으로 이복동생 장조(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정조)이 양자로 입적이 되자 효장승통세자(孝章承統世子)라 하였고,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그 후 1908년(융희 2)에 진종소황제로 추존되었다.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 이야기
효순소황후 조씨(재세 : 1715년 음력 12월 14일 ~ 1751년 음력 11월 14일)는 본관이 풍양인 풍릉부원군 조문명과 완흥부부인 이씨의 딸로 1715년(숙종 41)에 숭교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1727년(영조 3)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1729년(영조 5)에 진종이 세상을 떠나자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다.
이후 1751년(영조 27)에 창경궁 건극당에서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왕세자빈에게 효순(孝純)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세손 정조가 진종의 양자로 입적되자 효순승통세자빈(孝純承統世子嬪)이라 하였다.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효순왕후로 추존되었고, 1908년(융희 2)에 효순소황후로 추존되었다.
조선국 효장세자묘, 효순현빈부좌
그러니까 영조의 아들로 10살에 세자로 죽었는데 정조가 그의 양자가 되면서 왕으로 추존하였고 1908년에
일본인들의 농간으로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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