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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북한산 자락길 & 인왕산 17-10-21 본문
혼자서 찬양대 야유회 답사겸 가다.
인왕산은 몇 주 전에 갔다왔는데 자락길만 걷기는 너무 짧아서 좀 더 걸으려고 가다.
가을 기운이 완연하고 덥지도 않고 산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 왔다.
산행 마치고 내려와서는 성수네랑 세종 문화회관에서 Paul Potts 연주회에 갔다 오다.
북한산 자락길은 전철로 갈려면 3호선 홍제역에 내려서 1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오늘 코스는 홍제역 - 홍은벽산 아파트 옆 등산로 - 데크길 따라 - 상명대 후문 입구 -옥천암 - 홍지문 건너 인왕산 입구 -정상 -사직공원 내려 가는 길 - 인왕산 숲길 - 수성동 - 광화문 - 세종문화회관 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 포함애서 4시간 40분 정도 걸었다.
시온 찬양대원들은 아래 글을 잘 읽고 그대로 따라오면 됩니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정해진 시간에 홍제역 1번 출구로 오면 제가 친절하게 가이드해서 모십니다.
멀리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보입니다. 제일 오른쪽 봉우리는 보현봉이고 그 왼쪽은 문수봉입니다.
보현과 문수는 대웅전에 있는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입니다.
그러니까 문수봉과 보현봉 사이에 있는 대남문 자리가 석가모니불 자리가 되겠지요.
무슨 말인지 관심없는사람은 신경 안 써도 되고 관심있는 분들은 대웅전 불상들을 공부해 보세요.
담쟁이 넝쿨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이 나무는 죽거나, 살아도 엄청 고생합니다.
우리도 작은 잘못들을 그냥 용인하다 보면 결국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지요.
향로봉 올라가는 등산로 입니다.
북한산 등산로가 도중에 곳곳에 있어서 언제든지 둘레길이 심심하면 등산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싸리나무도 단풍이 노랗게 들었습니다.
군에 갔다 온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면 월동 준비 하느라 싸리비 만들던 생각이 난다고 오늘 점심 먹으면서
이지원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사진 찍으면서 놀멍 쉬멍 와도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위가 상명대학 입니다.
우리는 이 길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갑니다.
오늘 산행 중 산 위에서 유일하게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여기만 올라가면 더 이상 올라가고 싶어도 오늘은 올라가는 길이 없습니다.
좀 빡세게 올라가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 길은 그런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상명대학교 후문 안내판이 보이지요?
우리는 대학으로 안 들어가고 오른쪽 옥천암이라는 암자 쪽으로 내려갑니다.
여기 보이는 목어는 몸통은 물고기이고 머리는 용머리지요 그래서 龍頭漁身이라 표현하고 초창기에는 목어가
단순한 물고기 형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화려하게 변했다고 합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자기 때문에 스님들이 졸지 말고 정진하라는 의미로 불가에서는 물고기를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목어는 뱃속이 비어 있어서 저 뱃속을 스님이 예불시간을 알리거나 할 때 나무 막대기 두개로 두드립니다.
이 목어를 사용하기 쉽게 작게 만든 것이 목탁이라고...
극락전은 안양전 혹은 무량수전으로도 불리는데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입니다.
경기도 안양시는 바로 극락시입니다. 그러니 안양중앙 교회는 극락중앙교회가 됩니다.ㅎㅎ
무량수전하면 잘 모르는 사람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생각나지요?
한 때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알려졌었지요.
지금은 그 옆 안동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에 그 지위를 넘겨주었지만, 이 무량수전 안에 있는 아미타불은
특이하게도 석가모니불의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이 아미타불을 만드는 사람이 잘 몰랐거나 착각을 했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했는지 몰라도
이런 경우는 많지는 않습니다.
불교 사찰을 신앙의 대상이 아닌 문화재로 공부해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전 세검정 주위는 동령폭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 위로 소리내어 흘러 심신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세검정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숙종 45년(1719) 탕춘대성(蕩春臺城)을 쌓고 평창(平倉) 등 시설을 그 부근에 두었으며,
세검정은 1941년 부근의 종이공장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주초석(柱礎石)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 5월에 복원하였다.
세검동 일대는 산이 높고 물이 맑아 경치는 좋으나 논밭이 없고 다른 생산이 없어서 주민들이 생활고를 못이겨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중국집에서 짜장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짜장밥이 7,000원이고 오리지날 중국집입니다.
오늘 우리 모임은 여기까지 입니다.
거리가 너무 짧아서 아쉬운 분들은 여기서 인왕산으로 올라갈 겁니다.
미리 등산 준비해서 오세요. 인왕산은 약1시간 반 내지 2시간 정도 걸을 예정입니다.
상명대학 아래 찻 길에서 건너편 자하문 쪽으로 보면 이 높은음자리표가 보입니다.
여기로 건너가서 오른쪽 홍지문 쪽으로 몇 걸음만 걸어가면 인왕산 올라가는 등산로가 나옵니다.
상명대 뒤 왼쪽 바위 봉우리는 족두리봉이고 오른쪽 높은 봉우리는 향로봉입니다.
(인왕산치마바위에얽힌전설)
중종반정후
중종을 왕위에 앉힌 자들은 자신들이 살해한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의 보복이 두려워서 중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경왕후를 폐위시켰다.
왕후는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옛 거처로 쫓겨났다. 단경왕후는 궁을 나오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왕산 바위에 붉은 치마를 걸어두겠다는 약속을 중종에게 남겼고,
이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아침이면 인왕산 바위에 치마를 널어놓고 저녁이면 걷는 일을 51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중종 또한 부인을 잊지 못해 경회루에 올라 부인이 있는 인왕산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인왕산 치마바위에 전해지는 슬프고도 애잔한 전설은 단순히 큰 바위로만 보일 수 있는
치마바위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멀리서 보면 모양이 치마처럼 보여서 치마바위라고 합니다.(전설일뿐입니다만... )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시인 안도현으로 부터 '무식한 놈'이라고 욕 먹을 수도 있습니다.
무식한 놈
안 도 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
인왕산 치마바위 슬픈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사직공원쪽으로 내려오다 오른쪽으로 보면 이 '선바위'가 보입니다.
선바위는 바위가 우뚝 서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參禪하는 스님 모습같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 사진에서 처럼 무당이나 무속인들이 여기서 기도하는 행렬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습니다.
인왕산을 수성동 계곡쪽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양이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 아랫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본 각도이며 그림 윗 부분은 올려다 본 각도다.
수성동 계곡에서는 이 각도가 나올 수 있는 지점이 없다.
위 그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정육 교수의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그림은 아마도 1751년 윤 5월 하순(어쩌면 승정원 일기에 기록된 날씨를 근거로 25일로 추측함) 비온
뒤 맑게 갠 인왕산을 그린 것으로 추측한다. 이 때 정선의 나이는 76세였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이야기를 추측해 보면 그와 막역지우였던 시인 사천 이병연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사천은 겸재와 함께 인왕산 근처에 살았으며 당시 많이 아팠다.
승정원 일기에 의하면 1751년 윤 5월 1-18일까지는 날씨가 변화무쌍하였고 19-24일까지는 계속 비가 왔으며 25일 아침까지 비가 오다가 저녁에 비가 개었다고 한다.
그리고 28일 아침에 잠깐 흐리고 이후는 계속 맑았다고 한다.
만약 이 그림이 25일에 그려졌다면 당시 아프고 있던 사천의 쾌유를 빌었을 것이고 29일 이후에 그려졌다면
사천이 29일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명복을 비는 그림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천은 시인이고 겸재는 화가였으므로 서로 시와 그림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정선의 또 다른 인왕산도도 있다.
이 그림은 인왕제색도보다 훨씬 뒤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산 이름이 仁王山이 아니고 仁旺山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정선의 그림이냐는 데 대해서 논란이 있다. 일제는 조선 왕실을 누르기 위해서 산 이름도 바꾸었다.
수성동을 그린 정선의 또 다른 그림 중 수성구지가 있다.
정선의 '수성동'보다 좀 더 먼 곳에서 수성동을 바라본 그림이다.
인왕산을 그린 또 다른 정선의 그림도 있다.
오른쪽 간송 미술관 소장본은 겸재의 장동팔경 그림 가운데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큰 작품입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어느 글에서 이 그림에 대한 감회를
다음과 같이 써 놓았습니다.
온 폭에 거의 하늘의 공간을 남기지 않은 대담한 화면 포치법과
스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호연한 시심이 넘나드는 독특한 분위기가
뭉클한 감명을 안겨 주는 것은 아마도 정을 다해서 길들인
우리 산하의 실감에서 오는 감상인지도 모른다.
출처: http://www.ssgblog.com/3414 [신세계그룹 공식 블로그]
꽃놀이 장소로 유명한 인왕산 남쪽 아래 필운대 그림도 있다.
겸재와는 옆집에 살았던 강희언의 인왕산 그림도 있다.
묵직한 정선의 그림에 비해서 아주 세밀하고 생동감이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 오른쪽 위에 暮春登桃花洞望仁王山(모춘등도화동망인왕산)이라고 적혀 있다. '늦은 봄 도화동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 근처에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 한 장 때문에 2009년 7/1~2012년 6/30일까지 총예산 1,060억원을 들여서 원래 지형.지세를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되었다.
문화재인 돌다리와 청계천의 원류지를 보전하고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문화 공간 속에 한양의 역사성을 되살리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여기에 옥인 시범 아파트가 있었다. 이 아파트를 철거하고 수성동 계곡에는 자연스런 형태의 돌담을 쌓고 정자 사모정은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곡 북측에 설치하고 옥인 아파트는 방문하거나 이용하는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일부 구조물을 남겨놓도록 했다.
(겸재 정선 이석우 저 81쪽을 참고 했음.)
아래 그림이 자기가 살던 집을 그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겸재일 것이고
위의 집에서 훌륭한 선비이며 문인화가였던 그는 책을 읽다가 아래 그림과 같이 쉬기도 하며 지내지 않았을까요?
아래는 다른 분이 찍어서 보내 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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