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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처사 남명 작곡/대본 최현석 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18-11-30 본문

음악회, 전시회 ,공연

오페라 처사 남명 작곡/대본 최현석 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18-11-30

singingman 2023. 2. 1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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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부부와 함께 가다.
대영고 제자 김강지가 단장으로 있는 경상 오페라단에서 이 오페라를 공연해서 가게 되었다.

남명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오페라이다.
2막으로 되어있고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의 분위기를 잘 그렸고 아리아와 트리오가 좋은 곡들이 있었다.
오페라에서는 마치 남명 선생이 결혼하지 않은 것처럼 그려지지만 그는 결혼도 했고 서당도 꾸려나가고
또 처가가 부잣집이어서 평생 조정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무대는 소박했지만 아역들도 출연하고 진주 시립교향악단이 함께 했다.


남명 조식(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 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퇴계 이황과 함께 대표적인 영남 유림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정으로부터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퇴계 선생은 조정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했고 남명 선생은 당시 조정에서 바른말 하는 것이 어려운 분위기여서
조정에 나가지 않고 향촌에 머무르면서 제자를 기르고 직언을 했다.
(명종을 고아라 말하고 문정왕후를 과부라고 말하는 과격함도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기묘사화와 을사 사화를 겪으면서 친족과 친구들을 잃고 조정에는 나가지 않고 산림에서 제자들을 육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선생은 나처럼 산을 아주 좋아했다. 특히 지리산 주변에 살아서 지리산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남명은 지리산을 좋아해서 지리산을 11번이나 오른 기록이 있고 61세가 되는 해에는 천왕봉이 바라다 보이는
지리산 자락의 산청 덕산으로 옮겼다.
여기에서 山天齋라는 서당을 짓고 죽을 때까지 제자들을 기르면서 살았다.

남명 선생은 나이 58세때 지리산을 17일간 유람하고 "遊頭流錄"이라는 글을 남겼다.
지리산의 옛이름이 두류산이다.

이 유람기가 지리산을 12번째 방문한 기록이다.

이런 시가 남아있다.


'보게나! 천 석(石)들이 종을.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
어찌하면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게 될까?'












경상 오페라단장 최강지 - 오늘 곽재우 역으로 출연했다.




남명 선생역의 테너 김충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