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노래하는 사람

위기는 기회다 2020-09-07 본문

살아가는 이야기

위기는 기회다 2020-09-07

singingman 2023. 4. 7. 15:45
728x90

내가 학교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학교는 해마다 교내 축제가 있었습니다.
이때 어머니 합창단을 조직해서 나는 연주하곤 했습니다.
...
어느 해인가 이 때도 나는 어머니 합창단을 조직해서 축제 때 연주하기 위해서 연습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에는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 어머니 합창단을 운영해보면 그 단원들이 교회에서 찬양대원을 하고 있거나 합창을 한두 번 해 본 사람들이 많이 참석합니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들은 내가 선곡만 잘 하면 큰 어려움 없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아도 무난히 연주를 하고는 했습니다.
이번 연주에 참석한 어머니들은 특이하게도 교회 찬양대원 출신들이 없었고 합창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한 두 명 빼고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악보도 읽을 줄 모르고 기본적인 합창 발성이나 음악적 기초가 거의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어려움은 이들 가운데 두 어머니가 완전히 소리에 둔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야말로 정말 완벽한 음치였습니다.
음높이에 관한 음감이 전혀 없고 박자감도 아주 부족했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어머니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단한 열심과 큰 목소리입니다.
연습에 좀처럼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고 연습 때는 상당히 큰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자기들의 소리가 음악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주위 사람들의 소리에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열심히 연습에 참여합니다.
사실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고 모르니까 못 씁니다.
그렇다고 지휘자가 그 사람들을 콕 찍어서 당신들은 음치이니까 합창을 그만두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주위 다른 어머니들도 그 사람들 때문에 합창이 되지 않는다는 정도는 다 아니까 속으로 답답해 하지만 그들 역시 대놓고 그 어머니들에게 그만두라거나 하는 말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습시간에 아무리 파트 연습을 철저히 시키고 소리를 잘 만들어도 이 두 어머니 때문에 합창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연주는 반드시 해야 하고 축제날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연주도 하고 이 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그만 두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기도하던 중 아이디어가 떠 올랐습니다.
우리 단원 가운데 수화를 잘 하는 어머니가 한 분 계셨습니다.
우리 합창에는 약간의 안무가 곁들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우리 합창 때 수화를 곁들이면 어떻겠느냐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프로 합창단들도 간혹 연주 때 수화를 함께 하곤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쾌히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습 때 이 두 음치 어머니에게 춤 동작이 특별히 아름다우니 두 분은 노래를 하지 말고 무대 앞에 나와서 두 분이 수화로 연주를 해 주면 합창이 훨씬 더 빛나겠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실제로도 이 두 분은 춤 동작은 내가 보기에는 아름다웠습니다.
이 두 어머니도 내 부탁에 어리둥절하다가 수락하고 수화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축제 때 이 연주는 어느 해에 못지 않은 아주 역동적이고 활기찬 연주가 되었습니다.
이 두 분이 자기들이 음치여서 지휘자가 고의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어땠는지는 아직도 나는 의문입니다.
어쨌든 연주를 만족스럽게 마쳤고 그 뒤에도 아무런 잡음 없이 해마다 연주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연주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었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조 2020-10-01  (0) 2023.04.09
북한산 문수봉  (0) 2023.04.09
3년 & 2년 전 봄날  (0) 2023.04.07
역린(逆鱗) 2020-08-01  (0) 2023.04.05
임산부석 2020-04-24  (0) 2023.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