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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해남 두륜산 대흥사 21-02-15 본문
추사와 원교 그리고 정조 대왕과 초의 선사를 만나러 가다.
이 절 현판에 걸려있는 글씨들을 보고 싶었다.
홈페이지에 보니
경내 당우들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들은 당대 명필들이 쓴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도량이다.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크게 남원과 북원 그리고 별원의(표충사, 대광명전, 박물관)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대향각, 청운당, 선열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세심당, 적묵당, 정진당, 만월당, 심검강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동국선원내에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다른 절의 금강문이나 천왕문에 해당하는 자리에 해탈문이 있고 문 안 좌우에는 문수동자와 보현동자가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다.
이 글씨와 이 문 앞에 붙어있는 현판의 두륜산 대흥사라는 글씨는 철종때 이조판서를 역임한 해사 김성근이 썼다고 한다.
이 찻집 이름은 아마도 초의 선사의 동다송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홈페이지 역사 자료실에 동다송의 내용이 실려 있다.
東茶頌
后皇嘉樹配橘德 受命不遷生南國 후황가수배귤덕 수명불천생남국
密葉鬪霰貫冬靑 素花濯霜發秋榮 밀엽투산관동청 소화탁상발추영
姑揶仙子粉肌? 閻浮檀金芳心結 고야선자분기결 염부단금방심결
하늘이 예뻐하여 온 너 아름다운 나무여 그 덕스러움이 귀한 귤나무와 같도다
네 텃자리를 옮기지 아니하여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나니
풍성한 잎은 찬 기운과 모진 추위를 견뎌내 겨우내 푸르러라
하얀 꽃은 서리에 씻겨 가을풍광을 빛나게 하여이다
고야산에 노니는 신선의 살결같이 해맑아
갠지스강의 빛나는 황금같은 열매를 맺느니라
沆瀣漱淸碧玉條 朝霞含潤翠禽舌 항해수청병옥조 조하함윤취금설
맑고 백옥 같은 네 가지는 밤이슬에 씻기우고
너의 잎 또한 새벽이슬 머금어 푸르른 새의 혀와 같으니
天仙人鬼俱愛重 知爾爲物誠奇絶 炎帝曾嘗載食經
천선인귀구애중 지이위물성기절 염제증상재식경
하늘사람과 신선과 인간세상, 귀신이 다 같이 사랑하고 아끼었으니
너의 물건됨이 참으로 귀이함을 알 수 있도다
땅을 다스리는 신농님도 이미 오래 전부터 네 효능을 식경에 실었느니라
醍醐甘露舊傳名 제호감로구전명
소락 재호 감로는 아득한 날부터 이어오는 가장 맛있는 이름이어라
解酲少眠證周聖 해정소면증주성
네 약성이 술을 깨고 잠을 적게 하니 이는 일찍 주공이 증험한 바라네
脫粟伴菜聞薺嬰 탈속반채문제영
제 나라의 높은 사람 안영은 거친밥 차 한사발, 산채나물 더불어 먹었다고 들었나니
虞洪薦餼乞丹邱 毛仙示裘引秦精 우홍천회걸단구 모선시구인진정
차인 우홍은 제물을 바쳐 단구선인에 빌어 차를 얻고
털보 신선은 진정을 유혹하여 차숲을 알게 해 주었다네
潛壤不惜謝萬錢 잠양불석사만전
땅 속의 귀신도 만금으로 사례하기를 아끼지 않았어라
鼎食獨稱冠六情 정식독칭관육정
산해진미 진수성찬의 음식 가운데 좋은 차는 그 아름다운 음식의 으뜸이어라
開皇醫腦傳異事 개황의뇌전이사
수나라 황제 문제가 아픈 머리병을 이 차를 마셔 나았으니 이 얼마나 신이한 일인가
雷笑茸香取次生 뇌소용향취차생
하늘 우렛소리 이름 붙인 차와 녹용 향기 스치는 차를 거듭거듭 만들었나니
巨唐尙食羞百珍 沁園唯獨記紫英 거당상식수백진 심원유독기자영
당나라 황실에서는 백 가지 진수성찬 속에 차 먹었는데
그 나라 가장 예쁜 동창공주는 자영이라는 차만을 마셨나니, 임금님은 그 차만을 하사했다네
法製頭綱從此盛 淸賢名士誇雋永 법제두강종차성 청현명사과준영
잘 만들어진 두 강차는 이 시대부터 성행되고
맑은 세상 덕 높은 이들은 차맛을 준영이라 좋아했다네
綵莊龍鳳轉巧麗 費盡萬金成百餠 채장용봉전교려 비진만금성백병
용 문양 봉 문양 차를 만들어 곱게 장식하니 아름답기 그지없고
만금을 다 들여 백 덩어리 떡차를 만들었나니
誰知自饒眞色香 一經點染失眞性 수지자요진색향 일경점염실진성
뉘라서 스스로 지닌 어여쁜 색깔과 참된 향기를 알 수 있으리
문득 한 번 잡것이 스치면 그 진성을 잃나니
道人雅欲全其嘉 曾向蒙頂手栽那 도인아욕전기가 증향몽정수재나
養淂五斤獻君王 吉祥蕊與聖楊花 양득오근한군왕 길상예여성향화
도인이 어여쁜 차를 만들려고
일찍이 깊은 몽정산에 들어가 손수 차나무를 심어
다섯 근을 정성스레 만들어 임금께 바치었으니
그 이름이 길상예 성양화차라네
雪花雲腴爭芳烈 雙井日注喧江浙 설화운유쟁방열 쌍정일주훤강절
눈꽃 같은 차와 살찐 구름 같은 차는 서로 향기를 뽐냄이여
두우물샘 차와 태양이 이루는 차는 강서성 절강성 두 고장에서 명성이 풍성하도다
建陽丹山碧水鄕 品題特尊雲澗月 건양단산벽수향 품제특존운간월
건양 땅 단산 푸른 시냇물 골짜기에서 나는
구름집 차와 달빛 젖은 시냇물 향기 나는 두 차는 천하의 일품이라네
東國所産元相同 色香氣味論一功 동국소산원상동 색향기미논일공
陸安之味蒙山藥 古人高判兼兩宗 육안지미몽산약 고인고판겸양종
맑고 고운 땅 우리 나라에서 나온 차는 원래가
그 빛과 향과 맛이 좋아 더불어 기운까지 제일 이니
육안지방 차는 맛이 좋고 몽정산 차는 약이 된다지만
우리 동차는 맛도 좋고 약도 된다고 옛사람들 말했다네
還童振枯神驗速 八耋顔如夭桃紅 환동진고신험속 팔질안여요도홍
늙은이를 젊게 하는 신험 효험 있어
팔십 도인의 얼굴 붉은 복숭아 빛 같게 하도다
我有乳泉挹成秀碧百壽湯 何以持歸木覓山前獻海翁
아유유천읍성수벽백수탕 하이지귀목멱산전헌해옹
내가 사는 일지암 기슭에는 어머니 젖 같은 달콤한 샘물이 있나니 수벽탕 백수탕 만드니
어떠랴, 이 수벽탕 백수탕 달여 남산골 해거도인께 바칠거나
又有九難四香玄妙用 우유구난사향현묘용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과 청향 난꽃 향기 진실향 순수향 이 네가지가 있음이여
何以敎汝玉浮臺上坐禪衆 하이교녀옥부대상좌선중
어찌 일러주리! 이 구난 사향의 어려움을 옥부대 선방에 참선하는 스님네들이여
九難不犯四香全 구난불범사향전
至味可獻九重供 지미가헌구중공
翠濤綠香纔入朝 취도녹향재입조
다사의 아홉 가지 어려움 그르치지 아니하고 네 가지 향기 온전하면
이 지극한 맛 가히 구중궁궐에 바칠 만 하나니
비취빛 찻물 피어 어리는 녹향 어렵사리 조정에 보낼 수 있으리라
聰明四達無滯壅 총명사달무체옹
矧爾靈根托神山 신이영근탁신산
맑고 총명함 동서 사방으로 통달해 막힌데 없나니
싱그러운 차 뿌리 신령스런 산에 기대었음이여
仙風玉骨自另種 선풍옥골자령종
綠芽紫筍穿雲根 녹아자순천운근
胡鞾犎臆皺水紋 호화봉옥추수문
선풍 옥골 그 씨가 달라
녹빛 어린 싹과 꽃 자줏빛 고운 순은 구름 뿌리 내리는 땅을 뚫나니
오랑케 가죽신 들소의 가슴 팍 같이 주름진 물결 무늬 라네
吸盡瀼瀼淸夜露 三昧手中上奇芬 흡진양양청야로 삼매중상기분
어젯밤 맑고 깨끗한 밤이슬을 흠뻑 다 마셨는지
삼매경에 든 손 끝에 기이한 향기 어리네
中有玄微妙難顯 眞精莫敎體神分 중유현미묘난현 진정막교체신분
그 가운데 들어 있는 현현 미묘함 나투기 어려우니
참다운 정기는 물과 차가 잘 어우러지지 않으면 아니하네
體神雖全猶恐過中正 中正不過健靈倂
체신수전유공과중정 중정불과건령병
차의체와 물의 신이 비록 온전하다 할지라도 오히려 중정을 그르칠까 두렵도다
중정을 잃지 않아야지 건과 영이 아울러 얻어지나니
一傾玉花風生腋 身輕已涉上淸境 일경옥화풍생액 신경이섭상청경
옥화 차 한 잔 기울여 마시면 겨드랑이 바람 일어
몸은 가벼워 하늘나라 신선인 듯 하나니
明月爲燭兼爲友 白雲鋪席因作屛 명월위촉겸위우 백운포석인작병
竹籟松濤俱蕭凉 淸寒塋骨心肝惺 죽뢰송도구소량 청한영골심간성
唯許白雲明月爲二客 道人座上此爲勝 유허백운명월위이객 도인좌상창위승
밝은 달 촛불 삼고 아울러 친구 삼으며
흰 구름이 자리하고 더불어 병풍으로 둘러치니
댓잎 스치는 소리 솔바람 소리 한 가지로 청량해
외로운 마음 달래주나니
하얀 구름 밝은 달 애오라지 두 벗이 되어
도인의 찻자리 더욱 이보다 빼어 날거나
題跋
草衣新試綠香烟 禽舌初纖穀雨前 초의성사녹향연 금설초섬곡우전
莫數丹山雲澗月 滿鍾雷笑可延年 막수단산운간월 만종뇌소가연년
申承旨白坡居士題 신승지백파거사제
초의선사가 햇차를 달이니 푸른 향기 피어오르고
날짐승의 혀 같은 섬세한 계절 잘 갖추어진 첫물차
말하지 마라 단산의 운감차나 월간차 좋은 것을
찻잔에 가득 찬 뇌소차 한 사발이면 우리 생명 맑게 이루리
백파거사 제
위키 백과에 의하면
이광사(李匡師, 숙종 31년(1705) ~ 정조 1년(1777))는 조선의 문신, 서예가이며, 현대 한국학의 시조이다. 본관은 전주.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의 서얼 왕자였던 덕천군 이후생(德泉君 李厚生)의 후손으로 호조판서 석문 이경직(石門 李景稷)의 현손(玄孫)이고, 예조판서 이진검(李眞儉)의 넷째 아들이다. 조선시대의 양명학자(강화학파)로 육진팔광(六眞八匡)중의 한 사람이며 서예가로서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하였다.(이 서체는 중국서체의 범주에서 벗어나 조선화(朝鮮化) 되었다는 의미에서 동국진체(東國眞體)라고 불린다.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圓嶠), 수북(壽北).
이 무량수각 글씨는 추사의 글씨다.(진품은 성보 박물관에 있는 것 같다.)
대웅전 옆 건물인 백설당 지붕 아래 걸려있다.
원교 이광사의 글인 이 현판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면서 이 글씨를 보고 자기가 새로 써 줄테니 떼어내라고 친구인 초의 선사에게 말했다고 한다.
초의가 이 현판을 떼어내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겸손해 진 그가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초의에게 원교의 현판이 아직도 있느냐고 물어서 창고에 있다고 했더니 자기가 쓴 것을 떼어내고 원교의 이 글씨를 다시 걸라고 했단다.
20대 초반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사신 수행원으로 갔다가 옹방강과 완원등에게서 실력을 인정받아 의기양양해진 추사는 그 후 아주 콧대가 높았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중국 최고의 학자요 문필가인 옹방강으로 부터 경술문장이 해동제일이라는 칭찬을 들었으니 얼마나 자신감이 넘쳤을까?
태어날 때부터도 금수저였던 그는 완당이라는 호도 완원의 완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아주 모화주의자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그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추사체도 완성했지만 인격이 겸손해져서 돌아오는 길에 자기가 쓴 글을 떼어내고 원교의 글씨를 걸라고 했으니 고난이 사람의 인격을 원숙하게 만든다.
강화도 전등사에도 이 마니차(윤장대라고도 불린다.)가 있더니 얼마전 가 봤더니 없어졌더라.
대웅전 들어가기 전 침계루 앞에 매화가 피었다.
이 겨울에 홍매를 보니 아주 반갑다.
퇴계 선생님은 뛰어난 인품과 학식 때문에 존경하기도 하지만 매화를 梅兄이라 부르고 임종 직전에 남긴 말이 매화분에 물 주라고 했다는 뛰어난 Romantist여서 더 존경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퇴계선생님이 왜 매화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유홍준에 의하면
추사는 1840년 제주도로 귀양갈 때 전주 객사에서 이삼만을 만났다. 창암은 추사에게 글씨를 보여주며 평을 부탁했다. 추사는 당대의 유명한 모더니스트 서예가였으니 촌티나는 자신의 글씨를 내심 인정을 받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 때 창암의 나이는 70세였으며 추사보다 열여섯이나 위였다.
한 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노인장께서는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
객기였는지 감탄이었는지 모르지만 완당은 이렇게 창암의 글씨를 폄하했다.
제자들이 분에 못이겨 완당을 두들겨 팰 작정으로 몰려나가려고 했을 때 창암이 말렸다.
완당이 가고나서야 창암은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이 글씨는 잘 아는지 모르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멋과 조선 종이의 스미는 맛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초의선사(1786~1866)는 무안 출신으로 속가에서 성은 장씨였고 법명은 의순(意恂)이며 초의(草衣)는 호이다.
대흥사의 13대 종사의 한 사람인 대선사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켜 다성(茶聖)으로 불린다.
강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것을 지나가던 스님이 건져 준 일이 인연이 되어 6세 때 나주 운흥사에서 출가했다. 그 후 각지로 다니며 운수행각 하다가 대흥사 10대 강사인 완호윤우(琓虎尹佑)스님의 법을 받고 초의라는 법호를 얻었다.
초의선사는 불문에 몸담고 있었으나 그 테두리에 그치지 않고 유학, 도교 등 당대의 여러 지식을 섭렵하며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같은 학자나 사대부들과 폭넓게 사귀었고 범패와 서예, 시, 문장에도 능했다.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만이 선이 아니었으며 현실의 일상생활과 선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차(茶)와 선(禪)을 하나로 보아 「동다송」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초의선사는 차 한잔을 마시는 데서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으며 차는 그 성품에 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것이며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과 같은 것이라 하여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가 지은 「동다송」은 동다(東茶) 즉 우리나라 차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적은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다.
차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주로 불가의 학승들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과 영남지방은 차나무가 자라는 데 풍토가 알맞았으므로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이 되어 왔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와 불교가 밀려나면서 다도도 쇠퇴하여 겨우 명맥만 이어지고 있었다.
초의선사는 차와 선이 한가지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바탕으로 다도의 이론을 정리하고 차를 만들어 널리폄으로써 전래의 차 문화를 중흥시켰다. 24세 연상이어서 스승으로 모셨던 정약용과 동갑으로 승속과 유불의 경계를 넘어 누구보다도 친밀한 정을 나누었던 김정희와의 사귐에서도 학문과 예술, 차의 향기가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초의선사는 귀양살이하는 김정희를 만나러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을 만큼 서로 터놓고 도탑게 지냈다. 김정희가 말년에 초의선사가 보낸 차를 받고 써 보낸 걸작 ‘명선(茗禪)’이 대흥사에 전해온다.
초의선사는 중년 이후 큰 절의 번거로움을 피해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간 은거하며 차와 더불어 지관(止觀)에 전념하다가 81세로 입적했다.
(대흥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초의 선사에 관한 글입니다.)
절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표충사 경내에는 별도의 비각이 있는데, 비각 내에는 2기의 비가 있다.
이 중 1기는 표충사건사적비로 높이 316㎝로 사각형 비좌에 비신과 이수를 갖추었다. 건립연대는 「성상십육년임자오월일, 서산육세법손연담유일근찬, 응운등오근서(聖上十六年壬子五月日, 西山六世法孫蓮潭有一謹撰, 應雲登旿謹書)」란 내용으로 보아 정조 16년(1792)이며, 찬자는 연담유일, 글씨는 응운등오가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른 1기는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로 높이는 364㎝이며 사각형 비좌에 비신과 사각형의 지붕돌을 올렸다. 건립연대는 비신측면에 「숭정기원후삼신해월립」이란 명문으로 보아 정조 15년(1791)임을 알 수 있다. 청허당 유정은 임진왜란 때 80노구를 이끌고 구국운동의 선봉에 나서 활약한 승병대장으로 선조가 「국일대선사교도총섭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란 긴 호를 내렸다.
표충사는 정조 12년(1788) 왕이 표충사라 사액하였으며 대사의 7세법손인 천묵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나라에서는 매년 예관과 헌관을 보내 관급으로 제향케 하였다.
아래는 조사전 안에 있는 조사들
특이하게 문수전과 보현전이 있다. 해탈문에 문수 보현동자가 있더니 전각도 있다.
초의 선사도 이 13대종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강진 백련사로 간 혜장 스님에 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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