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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한국학 중앙 연구원 심재우 외 5명 돌베개 2011년 394쪽 ~3/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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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한국학 중앙 연구원 심재우 외 5명 돌베개 2011년 394쪽 ~3/19

singingman 2023. 4. 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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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삶을 다룬 책
왕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신하들에 의해 휘둘리기도 한 사람이었다.
태종같이 왕권이 강력한 왕들도 있었지만 인척이나 신하들, 사림들에게 휘둘린 왕들도 있었다.
왕위 계승은 선왕의 사망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왕의 취임식은 장례 중에 하루 잠깐 하는 것이고 그후에는 바로 다시 장례기간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왕의 취임식은 화려할 수 없었다.
왕의 적장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는 정통성에 시비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왕권이 불안했다.
신하들이나 인척들 가운데 모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항상 경계해야 했다.
국왕의 행차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기 때문에 함부로 자주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는 큰 이벤트였다.
국왕의 가장 큰 특권이자 의무 가운데 하나가 조상들과 각종 신들에게 제사하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왕의 일과는 새벽에 일어나서 문안인사로 시작해서 경연에 참석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밤늦게 일이 끝나면 왕비나 비빈들과 밤을 보내야 했다.
왕은 즉위한 후에도 신하들과 경연에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존재였다.
세종, 영조, 정조같은 왕들은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경연을 꾸준히 했지만 연산군이나 광해군같은 왕들은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 했다.
시를 짓거나 운동을 하는 것은 왕에 따라서 장려되지 않기도 했다.
사냥과 격구가 왕실의 대표적인 운동이었다.

조선왕조 최초의 통일법전은 성종대의 경국대전이고 대전통편은 정조대에 대전회통은 고종대에 만들어졌다.
왕의 명령을 수교라 한다.

예기에 의하면 공이 있는 자는 조가 되고 덕이 있는 자는 종이 된다고 했다.
조를 종보다 더 높게 생각했다.
원래는 중국에서 내리는 시호에 왕이라고 붙여야 했지만 왕권의 정통성과 중국에 대한 자주의식을 나타내기 위해서 조와 종의 묘호를 사용했다.

부원군은 왕의 장인 외에도 친공신에게도 붙이는 경우가 있었다.
이항복이 선조 때 왕을 잘 모신 공으로 오선부원군에 책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