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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읍성 23-04-28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무장읍성 23-04-28

singingman 2023. 4. 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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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백과에 의하면 고려시대까지 무송(茂松)과 장사(長沙)의 두 고을이었던 것을 효과적인 왜구의 방비를 위하여 1417년(태종 17) 합하여 두 고을 첫자를 떼어 무장이라 하고 성과 관아를 새로 마련하였다고 한다.
전라도의 여러 고을에서 장정과 승려 2만수천명이 동원되어 둘레 1,470척(尺), 높이 7척의 성벽을 쌓고, 성 위에 높이 1척짜리 여장(女墻 : 성위에 낮게 쌓은 담) 471개를 만들고,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을 갖춘 남문과 동·북문을 세웠다.
성벽 밖으로는 둘레 2,127척의 해자(垓字 : 성 밖으로 둘러 판 못)를 파서 견고히 하고, 병마사가 현감을 겸직하는 진(鎭)을 베풀었던 곳이다. 이후 성은 더욱 넓혀 축조되었던 듯하니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둘레가 2,639척이라 하였다. 성안에는 뱀의 두 눈처럼 생긴 지형에 두 곳의 샘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읍성은 사두봉(蛇頭峰)이라 부르는, 남북으로 기다란 구릉을 중심으로 하여 평원을 마름모꼴에 가깝게 네모지게 성벽이 감싸고 있다. 둘레가 대략 1.2km이고 성벽은 바깥의 돌이 흙 속에 묻힌 채 높이 1∼2m로 확연하게 남아 있다. 해자는 너비 4m, 길이 574m가 남아 있다.
성에는 남문인 진무루(鎭茂樓)가 있으며, 성안에는 옛 고을의 풍모를 알 수 있는 객사와 동헌이 있는데, 객사는 송사관(松沙館)이라 하여 옛 무송·장사의 끝자를 따서 이름지었다. 성안에는 조선시대의 각종 건물터와 사직단·여단(厲壇)·성황단 등의 터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떤 글에 보니 동학농민 봉기가 최초로 일어난 곳이 무장읍성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고창읍성보다도 작아서 성벽을 한바퀴 다 돌아도 20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성 안은 아직 복원 공사가 진행중인 것 같다.
 

동백이 있다.

 
 

무장읍성

 
 

누각 이름이 진무루이다.

 
 

 
 
 

 
 
 

 
 
 

진무루에서 본 풍경

 

고창 무장객사

 
 
 

안에서 본 진무루

 
 

 
 
 

비석군

 
 
 

무장동헌

 
 
 

 
 
 

 
 

동헌의 이름이 취백당이다.

 
 

형틀 - 동헌에는 왜 꼭 형틀을 전시해 두었을까?

 
 

동헌에 걸려있는 편액들

 
 

동헌 옆 고목

 
 

 
 
 

동헌 앞 배롱나무 - 배롱나무는 간지럼을 타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사창지

 
 
 

성벽을 최근에 복원했다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기가 다 있다.
 
 

 
 
 

 
 
 

 
 
 

객사 뒤에 고목들이 많이 있다.

 
 

창고를 새로 복원했나?

 
 

연지가 크다.

 
 

 
 
 

 
 
 

무장읍성은 아직 안내서가 없어서 이 누각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나주 금성관이나 고창읍성도 그렇고 객사에 익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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