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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성관 & 금학헌 23-04-28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나주 금성관 & 금학헌 23-04-28

singingman 2023. 4. 2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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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성종 6~10년(1475~1479)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 유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각지붕의 320.66m²(97평) 건물로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1976년에서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때는 이곳이나주의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금성관 정문인 2층 누각

 
 

5.18 당시 시위의 집결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금성관 중삼문

 
 

금성관 우물?

 
 

안에서 본 망화루

 
 

금성관 - 나주목 객사 정청이며 중앙 정부에서 오는사신이 묵던 곳으로 매달 1일과 15일에 망궐례를 행하던 곳이기도 하다.

좌우에 익헌을 둔 큰 규모의 건물이다.

 
 
 

 
 
 

금성관 안 마당이 아주 넓다.

 
 

금성관은 우익헌은 5칸이고 좌익헌은 6칸인 비대칭 건물이다.

 아마 관리들이 출장을 오면 계급이 높은 사람은 가운데 건물의 방을 사용하고 아랫 사람은 좌우 익헌을 사용했겠다. 그리고 익헌의 가운데에도 방을 두어서 겨울에 사람이 많을 경우 이 방도 사용했겠다.  
 

금성관 내삼문터

 
 
 

좌익헌의 이름은 벽오헌이다.

 
 

금성관 옆 은행나무

 
 

금성관 뒤면 모습

 
 

뒤에 굴뚝이 있다. 굴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익헌에 있는 방들도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온돌이 설치되어 있겠다.

 
 

금성관 뒤에 있는 650년 된 은행나무

 
 

금성관 비석군

 
 

나주 읍성의 수성군이 동학농민군과 싸워 나주성을 지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5년에 세운 비석

 
 
 

사마교비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받아 몽진하다가 2대왕 혜종의 고향인 나주에 와서 10여일 머물렀다. 이때 4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리를 지나갔는데 이 후로 이 다리를 사마교라고 불렀다고 한다.

 
 
 

 
 
 

철제비도 있다.

 
 

친일했던 사람이 정말로 애민비를 세워줄 만큼 애민했을까?

 
 

금성관 옆에 있는 정수루 - 학봉 김성일이 목민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이 북을 설치했고 지금의 것은 2003년에 나주시가 제작한 것이다.

 
 

 
 

 
 

나주목사내아 금학헌(목사가 살던 살림집)

 
 
 

 
 
 
https://youtu.be/HEEZ-k-4R0Q

 
 
 

 
 
 

 
 
 

벼락맞은 팽나무

 
 
 

금학헌 주련들 - 좋은 말들은 다 있다.

 
 

금학헌 뒤안

 
 

 
 
점심을 아래의 집에서 먹었다.

이 육회 비빔밥이 고기도 엄청 많고 양도 내 혼자 먹기는 벅찰만큼 많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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