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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온릉 21-07-14 본문
온릉은 미개방릉으로 있다가 2019년11월14일 무료 시범 개방되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온릉(溫陵)은 조선 중종의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의 능으로,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 19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의 크기는 약 6만 6천여 평이다.
능 뒤에 곡장을 두르고 능 안에 석양, 석호 각 2필로 호위하게 하였다. 원분 앞에 혼유석을 놓고 양 끝에 망주를 세웠으며, 중앙에는 장명등을 놓고 양옆에 문석과 석마를 배치하였다.
단경왕후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중종)이 왕위에 추대되자 왕비에 책봉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신수근이 연산군 부인의 오빠인데다가 중종반정을 반대했기 때문에 7일 만에 폐비되어 사가에 머물다 1557년(명종 12) 71세로 소생 없이 승하하여 친정 묘역에 안장되었다.
이후 1698년(숙종 24년)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고, 1739년(영조 15)에는 복위되어 시호를 단경, 능호를 온릉으로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온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원형무덤으로 무덤 주위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 1쌍을 배치하였다.
석양과 석호를 반으로 줄인 것은 비릉(妃陵)으로 봉해진 무덤의 예에 따른 것이다.
능 아래에는 재실이 있었으나 1970년 도로확장 때 없어졌다.
온릉溫陵(중종비 단경왕후)
위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255-41
능의 형식 :단릉
능의 조성 :1557년(명종 12), 1739년(영조 15)
능의 구성
온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첫 번째 왕비 단경왕후 신씨의 능으로 단릉의 형식이다.
1739년(영조 15)에 단경왕후가 복위되면서 조선 후기의 추존왕비릉 제도로 새롭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1쌍과 석호 1쌍을 배치하였다.
능의 역사
중종의 폐비 신씨가 1557년(명종 12)에 세상을 떠나자 친정집안인 거창 신씨의 묘역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739년(영조 15)에 복위되어 능호를 온릉(溫陵)이라 하고 정릉(貞陵)과 사릉(思陵)의 예에 따라 새롭게 조성하였다.
단경왕후(端敬王后) 이야기
단경왕후 신씨(재세 : 1487년 음력 1월 14일 ~ 1557년 음력 12월 7일)는 본관이 거창인 익창부원군 신수근과 청원부부인 한씨의 딸로 1487년(성종 18)에 태어났다.
1499년(연산 5)에 성종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가례를 올려 부부인이 되었으며, 1506년에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단경왕후의 아버지가 역적(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을 반대했었음)이라는 이유로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위되었다.
1515년(중종 10)에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폐비 신씨의 복위론이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1557년(명종 12)에 사저에서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지 182년이 지난 1739년(영조 15)에 복위되어 시호를 단경왕후라 하고,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였다.
왕비가 되고 7일만에 폐비가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까?
인왕산에는 치마바위 전설이 생길 정도로 중종을 그리워했다고 하는데 권력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능침에는 올라갈 수 없어서 아래서 볼 수 밖에 없다.
문석인만 있고 무석인은 없다.
왕릉들에는 산책로들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시민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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