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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릉(長陵) 21-07-14 본문

궁,능,원,묘

파주 장릉(長陵) 21-07-14

singingman 2023. 5. 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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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은 우리 나라에 3곳이 있다.

김포 장릉(章陵)과 영월 장릉(莊陵)이 또 있다.

김포 장릉에 묻힌 사람이 파주 장릉의 주인인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이다.

영월 장릉은 비운의 왕 단종의 릉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파주 장릉(坡州 長陵)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있는,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 인열왕후의 능이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그의 원비 인열왕후의 합장릉이다.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는 1623년 3월 13일 즉위하였다. 그 후 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어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 등의 변란을 겪었으며, 남한산성에서 항거하다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청에 볼모로 보내는 치욕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인조의 원비 인열왕후는 서평부원군 한준겸의 딸로 선조 27년 1594년 7월 1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광해군 2년 1610년 가례를 올려 청성현부인으로 봉해졌으며,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인조 13년 1635년 12월 9일 산후병으로 42세의 나이로 인렬왕후가 승하하자 능호를 《장릉》이라 하고 이듬해 1636년 4월 12일 파주 운천리의 언덕에 능을 조영하였다.

인조는 장릉을 조영하면서 오른쪽에 미리 자신의 능을 마련해 두었다가 인조 27년 1649년 5월 8일 승하한 후 그곳에 묻혔다.

그러나 후에 화재가 일어나고 뱀과 전갈이 능 주위로 무리를 이루고 석물 틈에 집을 짓는 등 이변이 계속되어 영조 7년 1731년 8월 30일 천장을 결정하고 현재의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로 옮겼다.

 

 

 

 

 

 

 

 

 

 

 

 

 

 

새를 사진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이 나무에 파랑새가 살고 있어서 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장릉 재실

 

 

 

 

 

 

 

 

 

 

 

 

 

 

 

 

 

 

 

 

 

 

 

 

 

 

 

 

 

 

 

여기도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금천교가 이런 모습이다.

 

 

장릉長陵(인조와 인열왕후)

 

위치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능의 형식 :합장릉

능의 조성 :1636년(인조 14), 1649년(효종즉위), 1731년(영조 7)

능의 구성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의 능으로 합장릉의 형식이다.

장릉은 원래 파주 운천리에 있었다가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자리로 천장하면서 합장릉으로 조성하였다.

특히 옛 장릉의 석물과 천장하면서 다시 세운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재실, 금천교, 홍살문,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향로와 어로는 숙종의 명릉처럼 양 옆에 변로를 깔았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으며,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혼유석은 합장릉의 형태로 2좌를 배치하였다.

특히 천장하면서 병풍석을 둘렀는데, 병풍석에는 기존의 구름문양과 십이지신상을 대신하여 모란꽃과 연꽃 문양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능의 역사

1635년(인조 13)에 인조의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636년에 파주 운천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때 인조는 자신의 능자리를 미리 공사하였다.

이후 1649년(인조 27)에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장릉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뱀과 전갈이 능 주위에 무리를 이루고 석물 틈에 집을 짓는 변이 계속되자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자리로 천장하였다.

 

인조(仁祖) 이야기

인조(재세 : 1595년 음력 11월 7일 ~ 1649년 음력 5월 8일, 재위 : 1623년 음력 3월 13일 ~ 1649년 음력 5월 8일)는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첫째 아들로 1595년(선조 28)에 임진왜란으로 피란 중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607년(선조 40)에 능양도정이 되었으며 이후 능양군에 봉해졌다.

1623년에 서인 정권과 함께 광해군을 폐위한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군제를 정비하여 총융청(摠戎廳)과 수어청(守禦廳)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즉위 초에 반정공신책록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수습하였고, 당시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라가 성장하는 시기를 인식하지 못하여 척화파와 주화파가 대립하기도 하였다.

결국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일어났고, 다시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으나 청나라에 항복하여 삼전도에서 수난을 당하였다.

그 후 1649년(인조 27)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종이 왕위에 오른 후 묘호를 열조(烈祖)라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묘호를 인조라 하였다.

 

인열왕후(仁烈王后) 이야기

인열왕후 한씨(재세 : 1594년 음력 7월 1일 ~ 1635년 음력 12월 9일)는 본관이 청주인 서평부원군 한준겸과 회산부부인 황씨의 딸로 1594년(선조 27)에 강원 원주 내우소에서 태어났다.

1610년(광해군 2)에 능양군과 가례를 올려 청성현부인에 봉해졌으며, 1623년에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인조 사이에서 6남 1녀를 낳았으며, 1635년(인조 13)에 창경궁 여휘당 산실청에서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수복방

 

 

수라간

 

 

정자각

 

 

정자각 계단

 

 

 

 

 

 

 

 

 

 

 

정자각과 능 사이에는 귀신의 발이 젖지 않게 돌다리가 놓여 있다.

 

 

 

 

 

 

 

비각

 

 

합장릉이다.

 

 

 

 

 

능은 공사중인 것 같다.

 

 

 

 

 

 

 

 

잎에 붙어 있는 씨앗이 프로펠러 모양으로 생겨서 잘 날아간다.

 

 

 

 

 

 

장릉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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