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노래하는 사람

사육신 묘 21-12-08 본문

궁,능,원,묘

사육신 묘 21-12-08

singingman 2023. 5. 11. 13:03
728x90

노량진 전철역 8번 출구를 나가서 한강쪽으로 300m 정도 걸어가면 사육신 공원이 있다.
오래전에 내가 상도동 살 때만 해도 그냥 초라한 무덤 몇 기만 있었는데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했고 바로 옆에능 서울 시내와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지점도 있다.
사당과 무덤이 있다.
원래는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 개의 무덤만 있었다고 한다.
후에 하위지 류성원 김문기의 허묘도 들어섰다고 설명되어 있다.
사당 뒤 왼편에는 왼쪽에서 부터 하위지 성삼문 류성원의 묘 3기가 있고 오른편에는 김문기 박팽년 이개 유응부의 묘가 나란히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육신이 아니고 사칠신이 되는 것 아닌가?
김문기는 일반적으로 사육신 명단에 들어있지 않지만 실제로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당시 성삼문과 박팽년은 확실한 주동자였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나머지 사육신의 명단은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절사란 이름을 가진 사당에는 7명의 위패가 있다.
묘소 왼편 조망지점에서 보는 여의도와 한강이 아주 볼 만하다.

 

 

사육신 묘 입구

 

 

 

 

 

왕릉등에서 보이는 홍살문

 

 

사당 입구

 

 

사육신 사당 의절사

 

사당 내부에는 6명이 아닌 7명의 위패들이 있다.

 

 

사당 천장

 

 

사당 앞 향로

 

 

 

 

 

 

 

 

 

 

 

신도비

 

무덤 올라가는 입구에 글자는 마모되어 보이지 않는 비석이 하나 있다.

 

 

 

 

 

 

 

 

김문기는 세조 때 공조판서에까지 올랐지만 단종 복위때는 오늘날의 합창의장에 해당하는 삼군도진무 벼슬을 하고 있었다. 거사에 성공하려면 군대를 장악해야 했으므로 성삼문을 비롯한 주동세력들은 김문기를 거사에 동참시켜 했고 김문기도 거사가 성공할 줄 알고 권력욕이 대단했기 때문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가 사육신에 해당하느냐는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증거로 제출된 실록에 의하면

이개에게 곤장을 치고 물으니 박팽년이 말한 것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공초에 승복하였으나 오직 김문기만이 공초에 불복하였다.

-세조실록 세조 2년 6월 2일

위의 기록을 근거로 사육신이 아닌 사7신으로 확정했다.

'조선남녀상열지사'를 쓴 손종흠은 위 글은 김문기가 '오직 김문기만 거사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한강 조망이 아주 뛰어나다.

 

 

 

 

 

 

 

 

 

 

 

 

 

'궁,능,원,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의군 이영 묘소 22-02-04  (0) 2023.05.14
영월 장릉 21-12-30  (1) 2023.05.12
이준 선생 묘 21-09-11  (1) 2023.05.05
파주 소령원 21-09-01  (0) 2023.05.05
조선왕릉 탐방 2021-07-29  (0) 202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