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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전주) 2017.01.31 본문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인 〈조선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며, 영정을 실제로 모신 정전 건물은 보물 제1578호다.
경기전 권역은 1991년 사적 제339호로 지정받았다.1410년(태종 10년)에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는데, 1442년(세종 24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2]으로 이름을 고쳤다.[3]'경기(慶基)'라는 이름은 조선의 국성(國姓)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경기전에 있는 어진은 1872년(고종 9년)에 원본이 너무 오래되어 모사한 것이다. 현재 경기전 진전에 있는 어진은 모사본이며, 〈조선태조어진〉 원본은 어진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원본은 1년에 1번 11월중에 약 3~4주간 전시된다고 한다.
경기전 입구에 있는 하마비(下馬碑)에는 이곳이 어떤 장소였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참고로 경기전 코 앞에는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성당이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완고한 왕조의 갖은 탄압을 뚫고 전세계 거의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신앙을 싹틔운 한국 가톨릭의 오래된 교회와, 바로 그 유교 이념으로 500년을 버틴 왕조의 시조를 모신 준 묘사(廟祠)가 얼굴을 바로 맞대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다.[5] 실제로 처음 방문해 보면 이 고즈넉한 마을에 우뚝선 두 건물들의 이질감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한 이 절묘함은 두 건물 사이를 지나는 태조로가 조선시대까지는 전주부의 남쪽 성벽 자리였던 것에서 기인한다. 천주교 선교가 자유화[6]되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전주지역 신자들이 점차 산골에서 내려오고 수도 늘면서 전주부 내에 성당을 짓기 위해 성벽에 붙어있는 구례 영저리[7] 저택을 사들여 임시 성당 겸 성당 신축 부지로 삼았다. 그런데 착공 직전인 1908년 통감부가 전주부성을 헐어버리면서 성당 부지와 경기전이 장애물 없이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현재 경기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경기전과 전주사고, 조경묘, 어진박물관, 경기전 부속채를 관람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초-중학교인 전주심상고등소학교[9]를 지으면서 원래 있던 부속채 건물을 상당히 헐어냈는데, 이때 훼손된 부분은 주로 옛 전주부성 동문 근처인 서쪽과 북쪽 부분이며 2004년에 복원 완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경기전의 원래 영역으로 지적받는 바로 옆의 현재 중앙초등학교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전주부성의 밖이었으며, 원래부터 경기전과는 전혀 무관한 장소였다. 한때 전주시립박물관도 경내에 있었으나 국립전주박물관이 생기면서 없어졌다.
(나무 위키에서 복사해 옴)
조경묘 내부에는 위패가 모셔진 건물이 있고 오늘 제사할 준비로 마당에 자리가 깔려있다.
오늘 제사 장면을 보니 무덤들에 있는 건물의 구조가 왜 이렇게 생겼고 배치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진 봉안시 행렬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그 중 악대가 3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후부고취는 대취타 행렬과 비슷한 악기 구성으로 되어있다. - 나발, 피리, 나각, 북, 징,꽹과리, 자바라, 장구등이 보인다.
제일 왼쪽에 서 있는 제관이 오늘 제사를 집례하고 있다. 사용하는 용어가 전부 한자로 되어 있어서 우리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참석한 사람들은 자주 참석해서 그런지 시키는 대로 절하고 일어서고 하는
것이 아주 숙련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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