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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금수저의 슬기로운 일상탐닉 안나미 저 의미와 재미 2021 274 ~5/19 본문
중국인들이 즐긴 잔인한 음식으로는 살아있는 원숭이를 탁자에 붙잡아 두고 두개골을 잘라 그 골을 퍼 먹으며 원숭이가 지르는 비명을 즐겼고 살아있는 오리를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 오리가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과 비명을 즐기며 오리 발바닥 구이를 먹었다.
가수저라는 카스테라의 중국식 이름이다.
황화채라는 음식은 원추리꽃으로 만든 음식이다.
원추리 싹이 어릴 때 먹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흔한 일이었지만 명나라에서는 꽃도 먹었다.
이정귀의 유천산기에는 험한 산을 오르면서 "뒷사람은 앞사람의 신발 밑을 보고 앞사람은 뒷사람의 정수리를 본다"고 했다.
가을철 한밤중에 오색에서 대청봉 올라가던 모습이 연상된다.
1604년에 이정귀가 각산을 오른 후 100여 년이 지나 김창업이 다시 오르면서 노가재연행일기에 유산기를 실었다.
그 후로 1765년에 홍대용이, 1803년에 이해응이, 1829년에 박사호등이 연행하면서 올랐다.
이정귀는 중국의 천산, 각산, 의무려산을 다 올랐다.
남승도 놀이는 산에 올라가지 않고 장방형 종이에 칸을 그리고 그 안에 전국의 산 이름이나 명승지를 써놓고 블루마블같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월사 이정귀는 중국 문인 웅화와 바둑 내기를 해서 홍매를 얻어 온다. 이 매화는 중국 신종 황제가 직접 감상하던 매화인데 웅화가 글을 잘 지어 황제에게 상으로 받은 것이다.
이 매화가 우리 나라에서는 이정귀의 호를 따서 월사매로 불렸다.
징비록의 저자 유성룡도 아주 똑똑했지만 율곡에게 눌려 항상 2등밖에 할 수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고 난 후 축하연에서 온 얼굴에 먹을 칠하고 먹돼지라 부르면서 놀리고 그 위에 밀가루를 뿌려 회시라고 했는데 이를 당하는 자는 영광으로 여겼다.
우리가 예전에 졸업식 때 교복을 찢고 머리와 얼굴에 구두약을 바르고 밀가루를 뿌리던 것에는 이런 전통이 있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최고령 과거 급제자는 83세에 문과 급제한 박문규가 있고 최연소 급제자로는 5살에 문장을 지어 신동으로 불린 이건창이 1866년에 15세의 나이로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19세가 되어서야 홍문관직에 나아갔다.
위험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지만 순탄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김홍도의 위 그림은 과거에 부정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주는 그림이다.
문장을 잘 하는 거벽, 글씨 잘 쓰는 사수등이 일산 아래 함께 앉아 과거를 치르고 있다.
과거에서 컨닝하기 땅속에 대나무 관을 과거장 담장 밖까지 묻어서 그 통속으로 답안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연안이씨와 광산 김씨가 조선조 최고의 명문가가 되었다.
명문가의 기준은 대제학이 되는 것이다.
연안 이씨 집안은 이정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연속으로 대제학을 했고 약 100년 후 광산 김씨도 3대가 연속 대제학을 지냈다.
이수광의 글은 중국뿐만 아니라 지금의 오끼나와인 유구국과 안남(베트남),섬라국(태국)에 까지도 알려졌다.
이때 이미 동남아에 한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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