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과 두향의 만남은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은 흔히 백석과 자야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자야(본명 김영한, 1916~1999)는 양반집 규수였다. 아버지 없이 엄마가 바느질하여 여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을 보고, 입을 덜고자 친구 언니의 소개로 가족 몰래 권번(券番. 기생양성소)에 들어가 금하 하일규선생에게 기생 수업을 받았다. 하일규 선생은 궁중에서 악사들을 길러내는 직책을 맡았었기 때문에 조선조가 망한 후 악사들의 생계를 유지해 주고자 권번을 차렸다. 자야는 중학 졸업자여서 동기생 중 성적이 뛰어 났다. 권번을 졸업하고 진향이라는 기명을 받았다. 선생은 진향을 기생으로 두기는 아까워 조선어학회 신윤국선생에게 부탁하여 일본 유학을 보냈다. 졸업할 무렵 하일규 선생님이 함흠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향은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함흥으로 가서 다시 기생이 되어 선생님 구출 운동에 나섰다.
그 무렵 백석 시인이 함흥 모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갔는데 환영회 자리에 기생을 불렀다. 거기에 간 기생이 진향이다. 백석이 그 옆에 앉았다가 진향의 손을 꼭 잡고 헤어지지 말자고 했다. 진향은 타고 난 미모에 화장을 하고 성장을 한 22세 때였으니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진향을 보고 백석은 뿅 갔다. 백석이 진향의 기명을 자야로 바꿔 주었다. 백석은 자야와 결혼하려고 아버지에게 갔지만 기생 며느리를 얻을 수 없다고 아버지는 반대 했다. 그래도 백석은 자야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자 출세 길을 막는 것 같아 자야는 멀리했다. 백석은 화가 나서 만주로 갔고, 해방 후 남북이 갈려 북한에서 살았던 백석과 만나지 못했다. 자야는 성북동에 요정을 차렸는데 장사가 잘 되어 큰 돈을 벌었다. 그 요정이 서울의 3대 요정(삼청각, 선운각)에 드는 대흥각이다. 문학을 좋아하던 자야는 말년에 대흥각(1000억원 상당)을 '무소유'라는 수필집을 낸 법정스님에게 공짜로 주었다. 법정스님은 대흥각을 길상사라는 사찰로 개조했다. 그뿐 아니라 자야는 창작과 비평에 기금을 내서 백석문학상을 마련했다. 말년에 자야는 '내 사랑 백석‘이라는 수필집을 냈다. 내용은 백석만 바라보고 산 일생을 담은 '짧은 만남 긴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