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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선비의 탄생 김권섭 다산초당 2008년 453/479쪽 ~8/5 본문
중앙 여고 국어 선생님이 쓴 책인데 아주 좋다.
대학 교수가 아니어도 부지런히 공부하면 좋은 책을 쓸 수 있다.
9명의 우리 나라 선비들에 관해 쓰면서 국어 선생님답게 그들의 시들도 해설했다.
퇴계는 손자 안도가 혼인 했을 때 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이렇게 썼다.
"부부란 인륜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므로 비록 지극히 친밀한 사이기는 하지만 또한 지극히 바르게 하고 지극히 조심해야 할 처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부부간에 예를 갖추어 공경함을 싹 잊어버리고 너무 가깝게만 지내다가 마침내는 서로 깔보고 업신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퇴계가 첩을 들인 이유는 과거 공부등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는데 첫 아내가 죽자마자 재혼할 수는 없어서 그랬다고 보여진다.
또 당시에는 사대부가 첩을 두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남명 조식은 18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 한양 장의동으로 왔다. 이때 이웃에 살던 대곡 성운과 알게 되고 평생의 친구가 된다.
남명이나 대곡은 벼슬을 원치 않았고 산림에 있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남명은 자리산 아래 살았고 대곡은 속리산 아래 살았다.
남명이 57세때 25년 만에 대곡을 찾아 열흘 가까이 걸어서 만나고 열흘을 머물렀다.
우암 송시열이 대곡의 묘갈명에 이렇게 썼다.
(대곡) 선생은 남명과 가장 막역한 친구였다. 대개 남명이 깎아지른 듯한 천길 낭떠러지와 같은 기상을 지니고 있다면 선생은 순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다. 남명이 말하기를 "성건숙(=대곡)은 다듬은 금붙이나 아름다운 옥과 같아서 내가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동주 성제원과 남명도 나이 차가 여섯살이나 나지만 남명은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었다.
남명은 1557년 추석에 만난 후 다음 해에 해인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1558년 8월에 삼가를 출발해서 합천 해인사까지 폭우를 뚫고 갔더니 보은 현감으로 있는 동주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바람을 뚫고 600리 길을 걸어 온 것이다.
남명이 대곡을 알게 될 무렵 이웃에 사는 청송 성수침도 알게 되었고 친하게 되었지만 후에 청송은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게 되어 자주 만나지 못했다.
청송의 아들이 우계 성혼이다.
남명은 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임금을 고아라고 하고 그 어미인 문정왕후를 과부라고 말하는 극단적인 표현도 했다.
이것은 목숨을 내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남명은 경(敬)과 의(義)를 평생 마음에 지니고 살았으며 지니고 다니는 칼에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다.(內明者敬 外斷者義)"라고 새겼다.
1561년 지리산 아래 덕산에 산천재를 세워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율곡이 39세 때 황해도 관찰사로 5,6개월 지낸 적이 있다. 또 48세 때는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일로 황해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율곡은 황주 관아에 딸린 기생 유지와 각별히 가깝게 지냈다.
후에 율곡이 황해도 재령의 강촌에서 묵을 때 밤에 어떤 이가 찾아와 문을 두드르기에 나가보니 유지였다.
사내가 젊은 여인을 보고 이런 밤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의 시가 이때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문을 닫으면 仁을 상할 것이요
동침을 한다면 義를 해칠 것이다.'
문을 열고 유지를 맞아들였지만 몸을 가까이 하지 않음으로 인과 의를 지켰다.
낙하고목(落霞孤鶩)은 떨어지는 저녁놀과 외로운 집오리(혹은 따오기)를 가리키는 말로 강가의 풍경을 나타내는 관용구다.
친구라고 해서 모든 문제에 의견이 같을 수는 없다. 친구는 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다.
나와 다름이 불편하지 않는 사람, 그가 친구다.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는
"배울 것이 없다면 참다운 친구가 아니요, 친구처럼 대할 수 없다면 참다운 스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궁은 인생의 곤궁한 처지를 가리키는 말로 환과고독 [鰥寡孤獨]을 말한다. 이는
鰥 - 늙어서 아내 없는 남자
寡 - 젊어서 남편 없는 여자
孤 - 어려서 부모 없는 아이
獨 - 늙어서 자식 없는 부모를 말한다.
형벌에는 태형, 장형,도형, 유형, 사형 다섯 가지가 있다.
태(苔)형은 아랫도리를 벗기고 태로 볼기를 치는 형벌로 10대부터 50대까지 5등급으로 구분했다.
태는 길이가 약 1.1M였고 매를 치는 부분은 지름이 8mm가량이었다.
장형은 장(杖)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로 60대에서 100대가지 5등급으로 구분했다.
길이 1.1m에 치는 부분의 굵기는 약 1cm였다.
도(徒)형은 멀리 쫓아낸 다음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일정한 기관에 딸려 있으면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벌로 1년 이상 3년 이내로 기간이 정해져 있다.
유(流)형은 유배형으로 귀양·정배(定配)·부처(付處)·안치(安置)·정속(定屬)·충군(充軍)·천사(遷徙)·사변(徙邊)·병예(屛裔: 변방으로 내쫓음)·투비(投畀: 왕명으로 지정한 곳에 죄인을 귀양 보냄) 등으로 표현하였다. 또 간단히 배(配)·적(謫)·방(放)·찬(竄)·사(徙) 등으로도 불렀다.
천사는 고향에서 내쫓는 벌이고
부처는 죄인이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한 곳에서 지내도록 하는 벌이고
사변(徙邊)은 변방 오지로 내쫓는 벌이고
안치는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벌로 고향 마을로 제한하는 본향안치, 스스로 유배지를 정하게 하는 자원처안치, 일정한 지방 안에서만 생활하게 하는 주군안치, 외딴 섬에 보내는 절도안치. 가시울타리를 두른 집에 가두는 위리안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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