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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호시비

singingman 2025. 10. 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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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호시비

병호시비(屛虎是非)는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제자 중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과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두 사람의 서열을 놓고 벌어진 약 400년간의 오랜 논쟁입니다.

'병호시비'라는 이름은 류성룡을 모신 병산서원(屛山書院)의 '병(屛)'과 김성일을 모신 호계서원(虎溪書院)의 '호(虎)'에서 따온 것입니다.

병호시비의 핵심 내용
배경: 1620년(광해군 12년)경, 안동 지역의 유림들이 퇴계 이황을 모신 서원(여강서원, 후의 호계서원)에 그의 제자인 김성일과 류성룡을 함께 모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논쟁의 쟁점: 서원 사당에서 주벽(主壁)인 퇴계 이황의 위패 옆에 김성일과 류성룡 중 누구의 위패를 더 상석(上席)인 좌측(동쪽)에 둘 것인가 하는 서열 문제였습니다.

대립 구도:
병파 (屛派): 류성룡(서애)을 지지하는 세력. 류성룡이 영의정까지 지낸 높은 관직을 내세웠습니다.

호파 (虎派): 김성일(학봉)을 지지하는 세력. 김성일이 류성룡보다 나이가 많고 퇴계의 문하에 먼저 들었음을 내세웠습니다.

영향: 이 논쟁은 단순한 서열 다툼을 넘어 영남 남인 내부의 병파(류성룡 문중 중심)와 호파(김성일 문중 중심) 간의 분쟁으로 확산되었고, 수백 년 동안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림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일종의 지역 향전(鄕戰) 성격을 띠기도 했습니다.

병호시비의 종결
종식 노력: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두 문중 간의 화해 노력이 시작되었고, 2009년 두 종손이 퇴계를 중심으로 류성룡은 좌배향(왼쪽), 김성일은 우배향(오른쪽) 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마침표: 400년간 지속된 이 논쟁은 2020년 호계서원이 복원되고 유림들의 합의에 따라 퇴계 이황 위패의 좌측에 서애 류성룡, 우측에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모시는 복설 고유제(復設告由祭)를 올리면서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 병호시비는 조선 유학계에서 학문의 적통(嫡統)과 제자 간의 서열을 중요시했던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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