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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용양늪 25.10.13 본문
철원군 김화 민통선 안에 있는 용양늪에 우리 선교회원들이 함께 가다.
11쌍의 부부와 4명의 회원 합해서 모두 26명이 교회 버스로 갔다.
07시 정각에 한 명도 지각하지 않고 다 모여서 칼같이 출발하다.
대한민국 교회 역사상 이런 예는 아마 처음일 것 같다고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목적지 앞에 있는 DMZ 생태 평화 공원에 9시 반쯤 도착해서 간단히 교육을 받고 가이드의 인솔하에 10시쯤 용양늪으로 출발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라 자연이 잘 보전되어 있었다.
이 늪은 한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花江지류라고 할 수 있다.
민통선 안이니까 남방 한계선 철책이 바로 앞에 있고 군인들이 우리와 함께 동행했다.
이 늪의 둘레는 2.1KM정도이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사진도 찍고 하니 1시간 반 가까이 걸려서 트래킹이 끝났다.
나와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고석정으로 가서 차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3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비가 왔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부부끼리 온 분들은 사진도 많이 찍고 즐거운 시간이 된 것 같다.
가이드가 재미있게 해설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늘 우리가 걸은 이 길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금강산 구경갈 때 지나간 길이기도 하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소떼를 몰고 간 길이기도 하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겸재 정선과 표암 강세황이 이곳을 지나갔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또 일제 시대에는 경원선 전기 철길이 지나간 곳이기도 하다고

우리는 이 지도의 오른편 용양습지(파란색 라인 따라) 탐방로를 다녀왔다.

김화 생창리에 있는 생태평화공원 방문자 센터

생창리 마을 회관

철원 지도

이 마을 박물관

천혜의 자연을 품고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자연 생태의 비밀 공원
DMZ 생태평화공원
용양보 탐방로
용양보 탐방로는 예부터 금강산 유람을 가던 길목으로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이던 금강산 전기철도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으며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고결한 모습의 습지는 정전 이후 60년 만에 일반인들에게 최초로 공개되었다.
지금은 멧돼지의 먹이를 구하는 모습, 고라니가 사람들을 쳐다보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빗속을 뚫고

길 양옆은 지뢰지대다.
아픈 과거의 산물, 희망과 미래의 땅 DMZ
지뢰 숲 (계획지뢰지대)
한반도 DMZ 일원에는 남한에 약 130만발, 북한에 약 200만발,
도합 330만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에 따르면 민통선 지역 미확인 지뢰지대 면적이 121㎢으로
제거에만 489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전쟁 이후 DMZ 인근에 추가로 많은 지뢰가 매설되었으며
북쪽에서 떠밀려온 지뢰에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아 자연적으로 원시 생태계가 복원되어
이제는 동식물의 낙원이 되어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감국이 비가 와서 향기를 날리지 못하고 있다.

용양늪

민통선 안에 들어오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참 평화로운 느낌이다.


저 철탑은 옛날 전기철도 시대에 전기를 공급해주던 곳이라고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옛 김화의 이야기
김화(金化)
본래 김화현(金化縣) 지역이었던 김화 읍내는 현재면(縣內面)으로 개칭하였다가 1895년(고종 32년) 군면(郡內面)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전까지는 강원 금성군, 김화군 등 2개 군이었다가 1914년 금성군이 김화군에 통합된 이후 강원도 김화군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 38선으로 분단되며 전 지역이 북한에 포함되어 철원군, 평강군과 함께 ‘철의 삼각지대’에 들어가게 된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한 치의 땅이라도 서로 빼앗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역이었으며 휴전이 되면서 다시 남북으로 갈라졌다.
남쪽에서는 김화읍을 수복하긴 하였으나 철원군에 병합되며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는 김화군은 사실상 폐지되고
김화(읍) 지역으로 불리고 있다.
사진 설명
(상단) 6.25전쟁 이전 번성했던 시절의 김화읍 읍내리
(좌하) 1968년 김화읍
(우하) 2016년 김화읍

이 꽃이 멸종위기종 분홍장구채라고

같은 꽃

왕버들이 아주 많다

아름다운 용양늪

늪 주위로 데크를 설치했다.


왕버들숲


생물 다양성의 보고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습지보호지역
용양보습지
용양보 습지보호지역은 호소(호수, 늪 등), 하천 등 다양한 유형이 혼재되어 있는 습지로
화강 상류 DMZ 남방한계선에 위치해 있어 식생 및 생물 서식환경이 매우 우수하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수달과 주꾸미에 속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분홍장구채의 서식이 확인되는 등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로 인해 습지의 생태학적 가치가 높고 북쪽 지역과의 생태적 연결통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서식지의 온전성, 자연성 등이 우수하여 2020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사진 설명 (왼쪽부터)
용양보습지의 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분홍장구채
멸종위기 야생생물 수달
용양보습지의 겨울

길 옆은 다 지뢰지대


1970년 새로 입주한 민북마을
생창리
43번 국도변에 아담하게 형성된 생창리는 전형적인 최전방 농촌마을로 북으로 성재산과 계음산이 에워싸고 남으로 화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고장으로 김화(金化)의 중심지였다.
한반도 중심부에 위치하여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진격로였고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진로였다. 병자호란 때 청 10만 대군에 맞서 용전분투했던 홍명구 공과 유림장군의 충절이 깃들어 있고,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생창리로 개칭되었고, 6.25때는 피비린내 나는 ‘철의 삼각지 전쟁터’ 한가운데 위치하였다.
이제는 사랑과 정이 넘치는 전원마을이자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는 통일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 가이드


꽃향유?

부들



sniper ridge
저격능선 전투
저격능선 전투(狙擊稜線戰鬪, Battle of Sniper Ridge)는 1952년 중부전선의 김화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15군에 맞서, 6주간 공방전을 벌인 전투이다.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성산 우측 화강 부근에 솟아오른 고도 590m 정도의 쌍방형 무명능선으로 이 능선에 배치된 중공군이 538고지로 진출한 미군을 저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혀 미군 병사들이 이곳을 가리켜 ‘저격능선(Sniper Ridge)’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공군은 빼앗긴 고지를 찾으려고 계속 공격해왔으나 한국군은 이 능선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끝까지 지켜냈으며, 2개 연대의 병력을 잃은 중공군은 오성산 북쪽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도 1개 연대 병력의 사상자를 내었지만 이 전투의 승리로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설정 시 지금의 철원과 김화 지역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백마고지 전투와 함께 6·25전쟁의 사상 2대 격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6.25 전쟁 백전백승 불패의 신화창조
제3보병사단
‘백골’의 유래
1948년 북한 공산당의 만행을 견디다 못해 자진 월남한 서북청년단원들이 18연대에 자원입대하여 6.25전쟁 당시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끝까지 조국을 수호하고, 두고 온 북녘땅을 자유의 품으로 되찾고야 말겠다’는 굳은 각오로 철모 좌·우측에 백골을 그려 넣고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같은 백골혼으로 무장된 선배 전우들의 정신은 ‘백골 정신’으로 계승되어 북괴군과의 전투에서 백전백승의 신화적인 전과를 올리는 밑거름이 되었고 1965년 사단 명칭을 ‘백골부대’로 명명하였다.


금강산철길에 열차소리가
다시 울리기를 기대하며
금강산전기철도
조선시대엔 금강산에 가려면 서울에서 철원을 거쳐서 옛 김화군을 지나
금성, 창도를 거쳐 단발령을 넘어야 했다.
일제강점기 1931년 완공된 금강산 전기철도는 강원선 환승역인 철원역에서
출발해 김화역을 거쳐 내금강까지 총연장 116km로 원래 일제가 창도지역
유화철을 반출할 목적으로 건설하였는데 후에 금강산 관광객 수송이 주가 되었다. 당시 철원에서 금강산까지는 4시간 반
가량 걸렸고 매일 8회 운행하였으며 요금은 당시 쌀 한 가마 값인 7원 56전에
이를 정도로 비쌌다고 한다.
1936년 당시 연 이용객이 약 154,000명
이었다고 전한다.

표암 강세황의 '김화 명승도'의 그림들을 보여 달라고 AI에게 말했더니 찾지 못했다고 아래와 같이 AI가 강세황풍으로 그려줬다.


옛철길을 관광용으로 복원했다



여기도 좌우는 지뢰지대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옛 김화의 이야기
김화역
김화역은 3~4칸 정도의 한옥으로 지어진 간이역으로 일제 강점기 금강산 전기철도 철원-김화 구간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한 금강산 전철의 종착역이었다. 주요 광산물과 임산물, 특히 목탄을 경성 등지로 반출하는 통로였으며, 경원선을 통해 반입되는 원산 방면의 건어물과 생선 등을 강원도 내륙 지방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였다. 김화역 앞쪽으로 동호백화점, 흠정백화점, 통일은행 등 상업가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조선요리, 일식요리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성행하고 숙박시설 등이 운영되었고 그 외에도 양복점, 약국, 목재소, 석재상 등이 김화역 역전 상업가로 형성되어 있었다.

무심한 강물은 흐르고


꽃향유

안개가 올라가고 있다.

무슨 버섯?


금강산 전기철도


건너편에서 본 용양늪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다리 건너간다










용양보
천혜의 자연을 품고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자연 생태의 비밀 공원
용양보는 DMZ 남방한계선 내에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로 일제강점기에 건설되었던 금강산 전철 교각을 사용하여 조성되어 보 자체가 옛날 철교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근대문화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
지난 60년간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았던 이곳은 왕버들 군락이 분포하는 아름다운 습지를 볼 수 있으며, 한가운데에는 전쟁 후 DMZ 경계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세월의 풍상에 닳고 떨어져 나가고 지지대가 되는 철선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어 이제는 가마우지, 두루미, 고니 등 새들이 찾아오는 쉼터가 되고 있다.

주차장

바늘꽃

이곳을 탐방하고 싶으면 위 전화번호로 예약해야 한다.
아래는 고석정 카페에서 찍은 사진들

고석정에 왔다


고석정 정자도 보인다.

한탄강은 협곡이다.

한탄강에 다리가 놓였다.


비가 와서 물살이 세다




고라니를 이렇게 할 수 있는 동물이 뭘까?

우리가 앉아 담소를 나눈 카페
아래는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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