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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100코스 25.11.26 본문

트래킹/국내 트래킹

서해랑길 100코스 25.11.26

singingman 2025. 11. 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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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기 선생님이 부산에서 올라와서 함께 서해랑길 100코스를 가게 되었다.
서해랑길은 전체 길이가  1,800km 가량 되고 103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손장로님 부부와 함께 걷는 이들은 이제 2코스만 더 걸으면 서해랑길이 끝난다고 한다.
오늘 코스는 대명항에서 길상리까지 지도상으로 17km 남짓되는 거리다.
우리 둘은 역으로 걷고 손장로님 부부와 우선생님 부인은 원래 코스대로 걸었다.
이 코스는 주로 찻길을 따라 많이 걷고 산을 넘거나 하지는 않아서 아주 쉬운 코스다.
도중에 이규보 선생 묘도 지나는 강화 나들길 3코스와 많이 겹친다.

https://song419.tistory.com/m/2934

강화 나들길 3코스(능묘 가는 길) 21-01-15

혼자 내 차로 가다. 온수리 공영 주차장까지 가서 700-1번 버스로 탑재까지 가다. 탑재에서 가릉은 가까워서 걸어 갈 수 있다. 온수리 도착했더니 700-1번이 20분 후에 온다고 정류장 안내판에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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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나서 풍물시장 가서 밴댕이 무침을 추천했더니 다들 아주 맛있게 드셔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김포에 있는 Zatura에 가서 차를 마셨는데 이곳의 분위기를 다들 좋아해 줘서 고마웠다.

먹고 쉬는 시간 포함해서 5시간 가량 걸렸다.

강화도는 언제 가도 역사 유적이 픙부해서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는 항상 눈이 반짝이게 만든다


오늘 코스


권능교회
오늘 출발지점인 양도면 길정리에 있는 교회


100코스 종점


포장도로를 많이 걷는다


길가에 있는 큰 나무


 산길 아래도 잠깐 걷는다
 
 



 마을길도 걷고




이 산길을 지나면 이규보 선생 묘가 나온다






이규보 선생 묘



이규보 선생 사당인 유영각





유영각



이규보 묘
Tomb of Yi Gyu-bo 李奎報 墓

고려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의 묘소이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활동한 문인으로, 명종 20년(1190)에 과거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 많은 글을 썼다. 고구려 동명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은 『동명왕편(東明王篇)』,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장경을 조판할 때 지은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등을 남겼다. 이외에도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국선생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This is the Tomb of Yi Gyu-bo (1168–1241), a civil official and great writer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19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s one of the most distinguished writers in Korean history, he left a number of literary works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including the Saga of King Dongmyeong, an epic poem about the legendary founding king of Goguryeo. In 1987, a ritual house near the tomb was reconstructed by Yi's descendants.

In front of the tomb mound are a stone table, stone lantern, stone statues of two civil officials, and two stone pillars. In 1987, a ritual house near the tomb was reconstructed by Yi's descendants.



사가재


사가재, 백운재




이규보 묘 전경






길정 저수지




강화 학생 체육관






노인 회관 규모가 대단하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


https://song419.tistory.com/m/1369

성공회 온수리 성당 2014-06-04

강화도에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공회 성당이 두 곳이나 있다. 성공회 강화 성당과 이 곳 온수리 성당이다. 온수리 성당은 지금은 새로 잘 지은 성당과 옛날 성당이 둘 다 아주 아름답고 문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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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 江華 溫水里 聖公會 聖堂 Onsuri Anglican Church, Ganghwa <small>(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 Incheon Tangible Cultural Heritage)</small>

1906년에 지어진 이 성당 건물은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이 성당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종탑)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이때 문루란 바깥뜰 위에 지은 다락집을 의미한다. 건물 외형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으로 한 반면, 내부 공간은 서유럽의 교회 건축 양식으로 구성하여 동서 조합을 이룬 것이 특징이다.

Onsuri Anglican Church was constructed in 1906. At the entrance of the church is a tall, bell tower in the style of a traditional Korean gate. The main building has a traditional Korean hip-and-gable roof topped with a stone cross, and its chapel follows the typical style of western European church architecture.



사제관



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 江華 溫水里 聖公會 司祭館 Onsuri Anglican Presbytery, Ganghwa <small>(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 Incheon Tangible Cultural Heritage)</small>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코널리(Cormac E. J. )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하커(Mark N. Trollope) 신부가 1898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시작한 1900년 전후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신부가 한국 전통 주거 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생활해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 공간으로 기차가 높다, 또 건축 수법이나 마름질 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식인 점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여 기술적인 적응을 하였는가를 드러내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건물 형식은 'ㄷ'자형 벽돌 구조로 된 5량 4칸의 흙집이다.

This presbytery was constructed around 1900 by Mark N. Trollope (1862–1930), a British missionary who came to Ganghwa in 1898 and later became the third bishop in Korea in 1911. This L-shaped building, which combines both Western and Korean-style architecture, consists of a wooden-floor hall, kitchen, and four rooms. The small gate in the northeast of the building leads to the church. As the original presbytery building was worn down, it was reconstructed in 1933 and was repaired again in 2002.




삼종(三鍾) 길
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에 맞춰 하루 세 번의 종을 친다고 해서 삼종(三鍾) 이라 하고, 이 때 드리는 기도가 삼종 기도(三鍾祈禱, Angelus)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전한 예수의 잉태 예고와 마리아의 응답,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느님의 현존을 찬송합니다.

보나벤투라 Bonaventura “오! 기본 일이다.”

하느님, 천사가 알려주어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주소서. Amen

길은 삼종을 치러 가는 길입니다. 종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묵상하며 걷는 길입니다. 2023년 대한성공회 주교좌교회 선교 125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열린 길입니다.

✝️ 역대 삼종지기
1967년 - 1969년 : 김성배(바실) 교우
1970년 - 1973년 : 유길회(가브리엘) 교우
1974년 - 1996년 : 이아금(베드로) 교우
1996년 - 1998년 : 차영길(베드로) 교우
2000년 - 현재 : 고상만(다윗) 교우

성공회 온수리 성당  옛 성당 솟을대문




솟을대문은 종각 역할도 하고 있다






절에 있는 부도밭이 생각난다


옛 성당인 성 안드레 성당


새로 지은 성 베드로 성당
외관은 한옥의 양식을 따왔으나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이다




아름다운 온수리 성공회 성당








온수 감리교회




천주교 온수 성당


온수 성당의 마리아상


특허김밥집






꽁치김밥이 특허품이라는데 내 입에는 별로다




낚시터


순무밭


순무


길가의 산국




 억새

 

가을 추수가 끝난 벌판


 
 
 

 


미국 쑥부쟁이


부들


초지광장




초지대교




초지대교에서 바라 본 염하강


 김포 함상공원 방면
 
 

 초지대교


김포쪽에서 본 염하강



초지대교






평화누리길 출발지점


오늘 종착지점




강화 초지진 | 江華 草芝鎭
Chojijin Fort, Ganghwa

[사적 Historic Site]

초지진은 조선 후기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든 여러 요새 중의 하나이다. 병자호란 이후 수비 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鎭: 군사가 주둔하는 곳)들이 강화도 일대로 옮겨 왔다. 초지진도 경기도 안산에 있던 수군 기지를 효종 7년(1656)에 이곳으로 옮겨 설치한 것에서 유래했다.

강화 지역은 1870년대 통상을 요구하며 침략한 열강들과 격렬히 싸웠던 곳이다. 특히 초지진은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전력의 열세로 미군에게 점령을 당하면서 대부분의 시설물이 파괴되었고, 고종 12년(1875) 운요호 사건 때에는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고종 13년(1876)에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가 체결되었으며, 이후 우리나라는 주권 상실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초지진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허물어져 성벽의 기초만 남았다. 이후 1970년대에 복원하고 이곳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대포를 전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초지진 옆 소나무에는 1870년대 전투 중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A fort, called jin in Korean, was a military base where the command of a local army was stationed. The area around Ganghwado Island has been a strategic military defense location for over a millennia, as it is located at the mouth of two rivers which pass by the former capitals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dynasties.

This fort was originally established in Ansan but was relocated in 1656 to its current location at the southwest of Ganghwado Island. About 300 soldiers were stationed here, and it had three outposts, namely Chojidondae (located within the fort itself), Jangjapyeongdondae, and Seomamdondae, as well as two artillery posts; Hwangsanpodae and Jinnampodae. During the Western Disturbances of 1866 and 1871, in which French and American troops, respectively, attacked Korea this fort was the site of fierce battles and was destroyed. It fell into further ruin in the early 20th century, leaving only the remains of the fortress walls and the outpost.

The current outpost was constructed in the 1970s. Along its stone walls, three artillery emplacements and around 100 gun emplacements were installed. On the pine trees in the vicinity, there is visible damage from projectiles, which is presumed to be from the Western Disturbances.









대포 (大砲)
구경 : 100m/m 길이 : 215cm 중량 : 1,800kg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砲口裝塡式火砲)로 사정거리는 700m이며 조선영조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 가나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광성보

https://song419.tistory.com/m/197

강화 광성보 22.11.02

10층 조집사님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10시 반에 출발해서 11시 반 도착.한바퀴 돌아보는 데 50분 가량 소요.나와서 강화 읍내에 있는 이유가라는 청국장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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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광성보 | 江華 廣城堡
Gwangseongbo Fort, Ganghwa

강화 광성보는 병자호란으로 강화도가 처참하게 함락된 후 체계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조선 효종 9년(1658) 강화 해협 주위에 설치한 12개의 진과 보 중의 하나로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를 관할하였다.

무역 통상을 요구하며 미국 함대가 침범한 사건인 신미양요(1871) 때 미국 군대와 사투를 벌여 어재연 등 모든 군인이 전사하였다. 이 때 문의 누각과 성이 파괴되었던 것을 1976년에 새롭게 복원하면서 광성보 유적지 안에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와 순국용사 350여 명을 기리는 신미순의총, 전적지를 수리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 등을 함께 만들어 세웠다.

*보(堡): 일정한 규모를 가진 부대의 단위. 지휘소, 병사의 주둔지, 창고 등을 포함 **돈대(墩臺): 경사면을 절토하거나 성토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으로 받친 방위시설.

A fort, called bo in Korean, was a military base where the command of a local army was stationed. The area around Ganghwado Island has been a strategic military defense location for over a millennia, as it is located at the mouth of two rivers which pass by the former capitals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dynasties.

This fort was built in 1658. It is one of 12 forts established on Ganghwado at that time.

This fortress was the site of a battle during the United States expedition to Korea in 1871. During the fierce battle, all the roughly 350 Koreans stationed at Gwangseongbo Fort died, including commanding general Eo Jae-yeon. The fort was left in ruins.

In 1976, the fort was repaired and renovated. At this time, various memorials for general Eo and the soldiers who died were built in the fort complex.






덕포진



자투라 카페


뱅쇼


자투라 내부




이들은 코리아 둘레길 4,500km가운데 평화누리길만 빼고 다 걸었습니다.
내년 봄에 평화누리길도 걷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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