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저 임흥배 역 민음사 2009년 개정판 24쇄 478/494쪽 ~12.26
singingman
2025. 12. 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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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었을 때부터 헤세는 어쩐지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20대 때 읽었던 데미안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나르치스보다는 골드문트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르치스가 되고 싶지만 골드문트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다. 내 기준으로 보면 방황하는 골드문트는 방탕하고 타락한 사람의 전형이기도 하면서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 읽었던 글들 가운데 "어머니를 모르고 어떻게 사랑을 알 수 있단 말인가"로 번역되었던 문장이 이 책에서는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라고 번역되어 나온다.
나르치스의 지성과 경건한 삶을 존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지만 골드문트의 방랑하는 삶의 경험에서 나온 예술도 존중하고 싶다.
내가 혼자 걷기를 좋아하는 것도 헤세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여자는 누구나 아름다운 존재이며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있었다. 또 남자들한테 주목받지 못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여자도 엄청난 정열을 불사르며 자신을 바칠 수 있고 꽃다운 시절을 넘긴 여자도 단순히 모성애 이상의 슬프고도 달콤한 애틋함을 보여줄 수 있다. 여자는 누구나 나름의 비밀과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펼쳐지면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이 모자라더라도 그 어떤 독특한 몸짓에 의해 상쇄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런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 해진 신발을 신고 숲과 시골길을 누비고 다니며 눈비를 맞고 굶주림과 곤핍한 처지를 겪고 감각의 쾌락을 즐기다가 고통의 대가를 치르고 살아가는 편이 어쩌면 더 힘들고 용감하며 고귀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떻든 골드문트는 원래 고귀한 일을 하도록 점지된 사람이 인생의 피냄새나고 걷잡을 수 없는 아수라장에 너무나 깊숙이 빠져들어 수많은 오물과 피로 자기 몸을 더럽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왜소하거나 천박하지 않았고 자기 속에 깃들여 있는 성스러움을 죽이지도 않았다. 어두운 욕망에 깊숙이 말려들어 방황하면서도 그의 영혼의 성스러운 곳에서는 성스러운 빛과 창조력이 결코 소진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르치스는 친구의 혼란된 삶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심이 결코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커녕 나르치스는 골드 문트에 더럽혀진 손에서 이 놀랍도록 평온하고도 생기 넘치는 형상이, 보이지 않는 형식과 질서에 의해 변용된 이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 영혼의 빛이 넘치는 이 내밀한 표정들과 순진무구한 식물과 꽃들, 기도하는 손이나 축복받은 손들, 이 모든 대담하고도 섬세한 몸짓과 당당하고도 성스러운 몸집들을 지켜보았다. 그때부터 나르치스는 이 불안한 예술가 혹은 유혹자의 가슴속에는 충만된 빛과 신의 은총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벽에 걸려 있는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거울 속에서 자기를 마주보고 있는 골드문트라는 인간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지쳐 있는 골드문트, 지치고 늙고 시들어 버린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수염은 벌써 하얗게 세어 있었다. 의지할 데도 없어 보이는 노인네가 흐릿한 작은 거울 안에서 자기를 마주보고 있었다. 잘 아는 얼굴이긴 했지만 낯설게 변해 있었고 마치 허깨비처럼 무심한 얼굴이었다. 거울 속의 얼굴은 이런저런 아는 얼굴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니클라우스 선생의 얼굴도 약간은 상기되었고 일찍이 그에게 제복을 맞추어줬던 노 기사도 약간은 생각났다. 또 교회에서 보았던 성 야콥의 얼굴도 떠올랐다. 수염이 텁수룩한 성 야콥 노인은 순례자의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호호백발의 노인네였지만 명랑하고 선량해 보였다. 골드문트는 마치 거울 속의 낯선 인간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거울 속의 얼굴을 읽어 내려갔다.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다시 아는 얼굴인 것 같았다. 사실 거울 속의 얼굴은 바로 그 자신이었으며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맞아 떨어지는 얼굴이었다. 너무나 지쳐 있고 다소 무뚝뚝해진 노인이 이제 여행에서 돌아와 있었다. 눈에 띄지도 않는 노인이 거기에 있었다. 거울 속에 노인은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만도 없었으며 오히려 호감을 주는 편이었다. 노인의 얼굴에서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골드문트가 갖지 못했던 무엇인가가 우러나왔다. 아무리 지치고 쇠락해 있어도 모종의 만족감 혹은 초연함이 엿보였다. 골드문트는 혼자 피식 웃으며 거울 속에 얼굴이 따라 웃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집에 와보니 이렇게 근사한 녀석이 되어 있을 줄이야. 잠시 바깥 출입을 하고 돌아오는 사이에 완전히 누더기가 되고 까맣게 그을어 있었다. 말과 행낭과 돈만 잃고 온 게 아니라 다른 것도 없어지고 그에게서 떠나 있었다. 청춘과 건강, 자신감, 불그스레하던 얼굴과 형형하던 눈매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도 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거울에 비친 이 노약한 사내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의 모습이었던 골드문트보다 더 좋았다. 이전에 비해 더 늙고 약하고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더 순진무구하고 더 만족스러워 보였으며 이전보다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웃으면서 곱슬해진 눈썹 한 올을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다시 잠자리에 들어 비로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