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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강화 성당 본문

Essay & Article

성공회 강화 성당

singingman 2026. 1. 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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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강화 성당은 한옥으로 된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설명에 의하면 이 성당 건물은 노아 방주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gemini에서 보여준 성공회 강화 성당 사진입니다.)


(구글 지도 사진입니다.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배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190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외관은 한옥 양식이지만 내부는 기둥으로 중앙과 좌우측의 통로를 형성하고 있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외관)
밖에서는 2층으로 보이지만 실내는 단층이고 자연채광이 좋게 지어졌습니다


(성공회 강화 성당 내부는 중앙과 좌우에 통로가 설치되어 있고 기둥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솟을 대문과 외삼문, 내삼문을 갖춘 유교적 질서를 중시하는 궁궐, 관아, 향교, 서원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에 들어가려면 먼저 높은 계단을 통해서 솟을 대문이 있는 외삼문을 통해 들어갑니다.


높은 계단을 통해 성당의 출입문인 외삼문으로 들어갑니다.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은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상징할 수 있겠습니다.


외삼문에는 대문에 켈트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대문 위에는 홍살문에서 볼 수 있는 홍살과 태극 문양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각을 겸하고 있는 내삼문을 통해 성당 앞마당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외삼문에서 본 내삼문 모습이고 그 안에 성당 본 건물이 있습니다.
산지형 향교의 경우 외삼문을 들어가면 명륜당이 있고 명륜당을 지나서 내삼문을 들어가면 대성전이 있습니다.
이 성당도 내삼문을 지나서 성당 본당이 있습니다.


(내삼문 안에 있는 동종)
이 동종과 출입구 계단에 있는 철제 난간은 일제가 전쟁 기간에 뺏어 갔던 것을 일본의 성공회 교인들이 사죄하고 복원했습니다.
위의 동종은 절에서 볼 수있는 범종과는 달리 용뉴 부분에 용이 없고 성령을 상징하는 불꽃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유가 있는 자리에는 십자가 문양이 대신하고 있고 당좌에는 연꽃 대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왼편에는 절에서 보는 부도밭을 연상시키는 비석들이 있고 정료대도 보입니다.

성당 마당 왼편에 있는 비석군


이 비석은 성당 건물 동편에 있습니다


축성 백주년 기념비


정료대는 윗머리 부분이 없어지고 초석과 기둥만 남아 있습니다.
정료대는 횃불을 피워 놓기 위하여 뜰에 세운 기둥 모양의 대입니다.

마당 오른편에는 오래 된 보리수 나무가 서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 서 있는 보리수 나무
1900년에 트롤로프 신부님이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 나무를 가져와서 심었다고 합니다.
보리수 나무는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어서 불교를 상징하는나무가 되었지요.)

전에는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도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해 태풍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2012년 태풍 볼라벤에 쓰러진 성공회 강화 성당의 회화나무입니다. https://m.blog.naver.com/jvj24601/71488162)에서 복사해 왔습니다.)

이 두 나무는 불교와 유교를 상징하는 나무지요.
솟을 대문과 외삼문, 내삼문을 갖추고 성당 마당에 보리수와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이미 짐작들을 하셨겠지만 성공회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다른 종교와의 마찰을 줄이고 그들과 좀 더 친숙해지기 위함이었겠지요.

1970~80년대에 토착화 신학이 유행해서 기장측의 향린교회를 비롯한 진보적인 교회들은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 대신 떡과 막걸리를 사용하고 예배 시작과 끝에 징을 친다든지 찬송가도 국악 찬송을 많이 불렀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성공적이었던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공회는 그보다 훨씬 전에 토착화를 잘 정착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성당 건물을 살펴보면 지붕에 이문(치미) 12개가 있고 추녀 끝에는 (사진을 확대해보면) 켈트 십자가와 함께 태극 문양도 보입니다.
성당의 현판도 천주성전이라고 써서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로 표시했습니다.
우리 전통 건물은 유교적 관습에 따라 전이 가장 높은 위계의 건물이고 그 다음으로 당, 합, 각등의 건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복궁에 가면 근정전이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이듯이 성전도 가장 높은 위계의 건물이 됩니다.
예배당, 곤녕합, 산신각등도 위계가 높은 건물들입니다.

기둥에는 절이나 서원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5개의 주련이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그대로 적은 것이 아니고 유불선의 느낌도 납니다.
그리고 그 주련 위에는 자세히 보면 연꽃도 그려져 있습니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처음도 끝도 없고 형태와 소리를 처음 지으신 분이 진정한 주재자시다.)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여 드디어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시다.)
三位體天主 萬有之眞原(삼위일체 천주는 만물의 근원이시로다.)
神化主流 有庶物 同胞之樂(하나님 가르침 아래 만물이 성장하니 동포의 즐거움이로다.)
福音宣播 啓衆民 永世之方(복음이 전파되어 세상 사람들이 깨달으니 영생의 길이로다.)


이문은 우리 설화에서 용의 아홉 아들들(용생구자)중 둘째 아들로 높은 곳에 앉아서 멀리 바라보기를 좋아하며 화재를 막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궁궐이나 사찰, 서원등 목조 건물 지붕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문이 12개가 있는 것은 12사도를 상징할까요?
서양에서는 용이 악의 상징이지만 동양에서는 용이 신령한 존재로 여겨지며 황제나 왕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또 켈트 십자가는 성공회가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태극 문양은 도교나 유교와 깊은 관련이 있지요.

건물 네 모퉁이에는 빨간색 원 안에서 보듯이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자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끝없는 정진을 나타냅니다.
수행에 잠은 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스님들은 심지어는 수행을 위해서 눕지 않고 앉아서 자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달마 대사는 눈꺼풀을 잘라내었을까요?
또 물고기는 물 속에서 아무런 방해받지 않고 다니기 때문에 자유로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람에 소리를 내는 풍경에도 물고기가 들어가 있고 목어나 목탁도 물고기입니다.
이런 외부의 그림들을 보는 당시의 유교나 불교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별 거부감 없이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성당 건물 출입문도 우물정(井)자 창호문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었습니다

뒤에서 본 성당 모습


성당 측면 모습으로 4칸 × 10칸 건물입니다.


성당 뒷편에 있는 사제관의 모습으로 켈트 십자가가 출입문에 그려져 있습니다


사제관 옆에 있는 솟을 대문 형식 같기도 한데 용도를 모르겠습니다.


라브린스 걷기 - 좁은 공간을 활용해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길을 들어서면 모든 코스를 다 돌아야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명상할 수 있습니다. 성당 뒷편 마당에 있습니다.

성당 외부만 토착화가 잘 된 것이 아닙니다.
성당 건물 자체도 그렇고 내부에도 이런 의도가 많이 보입니다.

제대및 세례대

성당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이 제대가 보입니다.
기독교를 모르던 불자들이나 유림들이 이 글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선비들이 이 글들을 보았다면
수기
세심
거악
작선
가운데 가장 먼저 머릿속에 수기치인(修己治人)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삶의 목표이기도 했던 유교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말이었겠지요.
불교도들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 마음을 닦는 것이니까 세심이 눈에 바로 들어왔겠지요.
물론 위의 거악, 작선등 모든 항목들이 전부 기독교의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종교인들이 보아도 매우 친숙한 덕목들이지요.


세례대에 새겨진 글
거듭남의 샘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1900년 축성식 순행 당시에 사용했던 이 교회 깃발에는 강화성당 수호성인 베드로의 천국열쇠와 바울의 성령의 검을 비단에 수놓아 제작했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베드로의 천국열쇠에 절 만자가 있습니다.
이미 사용하던 십자가 문양이긴 하지만 어쩐지 이 성당에서는 불교 냄새도 진하게 납니다.


만유진원- 천지만물을 창조한 참 근원
우리 나라 초기 성공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참 귀해 보입니다.

천장의 조명등은 고색창연한 느낌을 줍니다.


다른 개신교파에서는 교회당 내부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수난상


성수(holy water)를 담아두는 그릇


오늘날 우리 나라 성공회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성공회가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보면 유럽 대륙 다른 나라들의 종교개혁과는 달리 영국의 종교개혁은 아주 정치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바람둥이로 알려진 헨리 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서 교황과 갈라서면서 수장령을 발표하고 영국 교회는 카톨릭과 결별하고 개신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공회는 개신교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구교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교회를 성당이라 부르고 목사님은 신부님이고 예배는 미사라고 부릅니다.
시청 앞에 있는 아름다운 성공회 주교좌 성당에 가보면 교회 건물, 실내 장식, 미사 절차가 개신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거의  천주교와 비슷합니다.

강화도에는 감리교와 성공회가 우리 나라 어느 지역보다도 월등하게 많습니다.
왜 유독 강화도에 감리교와 성공회가 많은지 알아봤더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선교 구역 분할 협정 (Comity Arrangement)
19세기 말, 한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은 과도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지역별로 선교 구역을 나누었습니다.
감리교의 집중: 당시 인천과 강화 지역은 미국 감리교의 선교 담당 구역으로 배정되었습니다. 반면, 서울이나 평안도 등은 장로교가 주도권을 가졌죠.

이 협정 때문에 강화도에는 장로교보다 감리교가 먼저 뿌리를 내렸고, 오늘날에도 강화도 교회의 약 70% 이상이 감리교인 독특한 종교 지형을 갖게 되었습니다.

2. '강화학파'와 양명학의 열린 사상
강화도는 조선 시대 양명학(강화학파)의 중심지였습니다. 양명학의 초기 대가였던 정재두가 강화도에 정착해 살았고 이건창도 강화도 사람입니다.

지행합일(知行合一): 양명학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다"라는 실천 중심의 사상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학풍은 체면과 형식을 중시하는 성리학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진취적이었습니다. 덕분에 강화도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실천적인 민족 종교'로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적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강화학파 후손들이 초기 기독교 수용에 앞장섰습니다.

3. 성공회의 '토착화'와 정치적 배경
성공회가 강화도에서 크게 번창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해군 양성과 영국: 고종 황제는 강화도에 해군 사관학교인 총제영학당을 세우고 영국군 교관들을 초빙했습니다. 이때 성공회 신부들이 함께 들어와 선교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한옥 성당 전략: 성공회는 외래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강화성당, 온수리 성당처럼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성당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문화적 배려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4. 풀뿌리 선교와 공동체 문화
이승환의 세례: 1893년, 강화 사람 이승환이 인천에서 복음을 접하고 돌아와 자신의 어머니에게 세례를 주며 강화 최초의 교회인 교산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문중 교회: 강화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공동체 의식이 강했습니다. 한 집안의 어른이 개종하면 마을 전체나 문중 전체가 함께 믿는 경우가 많아, 교회가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 요약하자면
강화도는 지리적으로는 서양 문물의 관문이었고, 사상적으로는 양명학의 실천 정신이 살아 있었으며, 제도적으로는 감리교와 성공회의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오늘날과 같은 깊은 신앙의 역사를 갖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