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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서양 음악사 상,하권 Donald Jay Grout 저 서우석, 문호근 역 수문당 1978년 439쪽, 하권은354쪽 ~26.01.2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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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음악사 상,하권 Donald Jay Grout 저 서우석, 문호근 역 수문당 1978년 439쪽, 하권은354쪽 ~26.01.26

singingman 2026. 1. 1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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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고싶은 말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다.
이건 누구를 시켜서 번역하게 하고 이름만 빌려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서울대 교수라는 이름만 걸고 원고를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고 책을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제자가 번역을 다 하고도 자기 선생 이름으로 책을 내는 일이 허다했으니까 그렇다 쳐도 이건  너무 심하다.

그래도 이 책을 낼 당시에는 다른 마땅한 번역된 음악사책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 읽기가 너무 어렵다.
심지어는 단순한 오자, 탈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용 조차도 믿기 어려운 부분도 군데군데 있다.

하지만 도움되는 부분만 몇 곳 옮긴다.

고대 음악은 제사의식과 밀접한 괸련이 있었다.
중세로 들어오면서 교회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단선율 무반주로 많이 불리었다.
세속 노래들도 있기는 했다.
트루베레, 트루바도르, 미네징거, 마이스터징거, 영국의 글리맨등이 세속 음악의 작곡가이기도 하고 연주가이가도 했다.
아직 기악은 성악의 반주 기능을 담당하는 수준이고 독립적인 악기로서의 연주기능은 거의 없었다.
11~12 세기로 오면서 초기 다성 음악이 생기기 시작하고 오르가눔, 콘둑투스, 모테트들이 13세기에는 발달한다.
14세기 Ars Nova 시대가 되면서 네델란드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등의 음악도 발전하기 시작한다.
무지카 픽타, 기보법의 발달이 이루어진다.
중세에서 르네쌍스로 넘어가면서 버건디 악파의 활약이 크게 나타나고 르네쌍스 시대에는 옥케겜과 네델란드 작곡가들, 죠스껭 데 프레, 오브레흐트등이 횔약한다.
16세기에는 프랑코.플레미쉬 악파가 나타나고
르네쌍스 후기로 가면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구교 음악에 개신교 음악이 더해진다.
바로크 시대가 되면서 독립적인 기악 음악이 발달한다.

초기 중세에 노래나 춤과 연관되지 않은 기악 음악이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지만 이 시기의 음악이 순전히 성악만으로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옳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레고리안 성가마저도 언제 어디서나 반주 없이 노래되었으리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13세기 이전까지 어떤 음악이 악기에 의해 연주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악기가 존재하였고 또 연주되었다는 것은 아는 것이다.
음악의 필사본들은 악기를 지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체 악기를 사용하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이러한 지식을 얻는 것은 아니다.
1300년경에 이르러서야 저술가들이 특별히 기악 음악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고대 음악 이론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초기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문학에서 어쩌다 나타나는 언급, 건물의 장식이나 조각에 나타난 형상, 그리고 특히 기도서 등의 책에 들어 있는 정밀화나 이와 비슷한 그림으로 된 장식 등에서 얻어질 뿐이다.
이에 덧붙인다면 12세기와 13세기 프랑스 시, 문학에는 악기에 관한 언급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연주가들의 음악적 음향이 근대의 악기와 목소리로 나는 것과는 같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가수들과 연주가들은 상당히 가볍고 깨끗하고 가는 소리를 개발시켰던 것 같으며 이것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음악적 음향의 특징인 완전한 정확한 음정을 갖지 못하게 하는 계속적인 비브라토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실제 연주되던 중세 음악의 조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어떤 것보다도 더 투명한 것이었을 것이다.

15세기의 첫 몇십 년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대표적인 작곡가도 배출하지 못하였고 음악 양식상의 어떠한 커다란 변형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북이탈리아의 주된 중심지는 베니스였다. 교황 교회가 있던 로마는 1420년 이후에 중요한 위치로 부상하였다.
작곡은 아직도 주로 세속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칸틸레나 짜임새가 점점 더 인기를 얻어서 모테트, 미사곡에까지도 침투되었다. 이미 1400년대 초기에 치코니아를 위시한 북방인들이 이탈리아에 옴으로써 시작된 국제적 양식을 향한 추세는 오래 지속되었다.
영국 음악에서는 장조조성(선법체계와는 반대되는 것으로서)으로 향하려는 경향, 그리고 화성적인 통일성(프랑스 모테트의 독립적인 성부들 다양한 가사들 그리고 화성적인 불협화음들과 반대되는 것으로서)과 음향의 충실성, 대륙의 음악보다는 3도와 6도를 더 많이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어 왔다.
3도가 처음으로 협화 음정으로 인정받은 것은 1300년경의 영국 이론가들의 저술에 서였으며 병행 3도가 12세기의 용례에서 나타나는 것은 오크니 섬의 애국성자를 위한 찬미가 성마그누스에게 드리는 찬미가 에서였다. 병행 3도와 6도를 쓰는 관습은 13세기 영국의 다성 음악에는 흔한 것이었다.

본래 모테트는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한 의전적인 가사를 갖는 작품이었다.
우리가 보아 온 바대로 13세기 말에 와서는 이 용어는 세속적인 가사를 갖는 작품에도 적용되었으며 테노르의 세속적인 선율의 칸투스 피르무스를 갖는 것까지도 포함하게 되었다.

15세기에 있어서 샹송이란 세속적인 시에 붙인 다성 음악곡을 일컫는 일반적인 용어였다.

교회 음악에 있어서 버건디 작곡가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뚜렷한 종교적인 양식을 발전시키지 못하였지만 샹송의 방식으로 모테트와 미사를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보통의 3성부 짜임에 있어서 테노르와 콘트라테노르가 받쳐주는 위에서 꼭대기의 독창 성부가 자유스러운 선율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중세 모테트의 전통은 차용된 선율을 테노로에 놓도록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15세기 음악의 새로운 관념은 최저 성부가 화성 진행의 기초로서의 기능을 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이 점은 특히 종지부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 당시에는 테노르가 최저성부였다)

루터란 코랄에서 특별히 중요한 코랄의 종류는 세속노래 콘트라팍타 또는 패러디인데 이것은 주어진 선율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가사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대치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적당한 영적 의미를 갖도록 수정되는 것이었다. 세속노래나 세속적인 다성작품을 교회에서 사용되도록 채택하는 것은 16세기는 흔한 일이었으며 이것은 이미 미사의 역사에서 우리가 본 바와 같다.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확실히 가장 아름다운 콘트라팍트의 하나는 이삭의 (내 마음의 평화는 부드러운 아가씨의 매력에 의해서 흔들리도다) 로서 이것은 1600년경에는 종교적인 가사 (내 마음은 소망으로 가득 차네)의 붙여졌다가 나중에는 (상하신 성스러운 그 머리)에 붙여졌던 것이다. 하슬러의 본래의 편곡의 첫 부분이 바흐의 성마태 수난곡에서 어떻게 두 가지로 변형되었는가는 아래 악보에 보인다.


레시타티브처럼 자유스러운 리듬을 사용하지도 않고 아리아처럼 규칙적인 리듬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이 둘 사이에 위치하는 선율 형태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선율에는 arioso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는 '아리아와 비슷한' 이라는 뜻이다.

라모는 굽힐줄 모르는 변함없는 완전주의자였다. 그는 임종의 자리에 최후의 예배를 집전하러 온 승려의 나쁜 창법을 나무를 할 수 있었다.

바흐의 음악적 발전에는 5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다.
그것들은
1.가족의 전통이었던 장인 정신
2.악보를 베낌으로써 모든 자료를 흡수할 수 있었던 그의 고되고도 유익했던 방식 3. 18세기식 후원 조직 그것은 어떤 개인일 때도 있었고 교회, 또는 시 당국일 때도 있었다.
4.예술의 기능과 예술가의 의무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관념
5.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 깔려 있는 것으로서 -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 개인적인 특성이었다.

바흐가 코랄 프렐루드 곡집 -  교회 음악 - 을 지고하신 하나님에게 바친 것, 그리고 그의 칸타타 수난곡 첫 페이지에 J.J.(Jesu juva, 예수여 도우소서), 그리고 끝페이지에 SDG(Soli Deo Gloria, 하느님 홀로 영광 받았소서)의 글자들을 써 놓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빌헬름 프리데만을 위해 썼던 연승용 클라비어 곡집의 첫머리에 I.N.J.(in nomine Jesu) 의 글자를 보게 되거나 바흐가 지속 저음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에게 허락된 기쁨을 위하여 잘 울리는 화성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고 규정한 것을 알게 되면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놀라움이 될 것이다.
요컨대 그는 원칙적으로 종교 예술과 세속 예술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에게는 둘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18세기 말 고전 양식의 완성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하이든의 역할이 컸다. 그의 예술의 특징은 세련성, 정직한 장인 정신, 겸손, 의도의 순수함, 그리고 그가 자라나온 평범한 대중의 생활과의 끊임없는 정신적 유대 등이 한데 합쳐진 것이다.


어린 모차르트는 6살부터 15살 사이의 반 이상을 여행과 연주로 보냈다.
1762년이 되었을 때 그는 클라비어의 기교파 연주자였으며 오래지 않아 뛰어난 오르간과 바이올린 주자가 되었다. 어린이로서의 공개 연주에서 그는 준비된 곡을 연주할 뿐만 아니라 협주곡들을 초견으로 치고 변주곡, 푸가,  판타지아들을 즉흥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는 작곡도 하였다. 그는 6살에 첫 미뉴엣들을 제작하였고 9살 되는 생일 바로 전에 첫 교향곡을, 열한 살에 첫 오라토리오를, 12살에 첫 오페라를 썼던 것이다. 그의 600이 넘는 작품들은 주제별로 분류되어 1862년에 쾨헬에 의해 처음 정리되었으며 그 후 주기적으로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한 새 목록들이 나오고 있다.
퀘헬 "K" 번호는 세계적으로 모차르트 작품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베네딕트(Sir Julius Benedict) 경은 베토벤에 대한 첫인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키가 작고 땅땅한 사람이 얼굴은 아주 붉고, 작고 꿰뚫어 보는 듯한 눈과 짙은 눈썹을 가졌으며 발뒤꿈치까지 덮는 긴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 볼의 상기된 색과 대체로 다듬지 않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작은 꿰뚫는 두 눈은 어떤 화가도 당할 수 없는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숭고와 애수가 섞인 감정이었다. 첫 모습이 나에게 준 기막힌 인상은 내가 그를 다시 만날 때마다 고조되었다. 내가 바덴에서 그의 흰 머리털이 힘찬 그의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있는 기막힌 모습의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무엇인가가 그를 괴롭힐 때에 가끔 양미간을 찌푸렸으며 가끔 힘찬 웃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그 웃음은 듣는 자에게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리어 왕이나 또는 갈릭의 방랑 시인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감동을 받았다.

아래는 하이힐리겐슈타트 유서 일부다.
나는 마치 추방당한 사람처럼 외롭게 살지 않으면 안 되고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사회와 섞일 수가 없다. 내가 사람들 가까이 갈 때면 무서운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고 나의 상태가 주목받게 될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지난 6개월을 시골에서 보냈다. 내 옆에 사람이 멀리서 들리는 풀류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때, 혹은 누가 목동의 노래를 들었을 때 그리고 다시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때 나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그런 일들이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갔고 조금만 더 갔으면 나는 생명을 스스로 끊었을 것이다. 나를 되돌려 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이다. 아! 내가 내 안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끌어내놓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내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오 신이시여 내게 최후에 가서 단 하루만 이라도 순수한 즐거움의 날을 주소서. 진정한 즐거움이 내 마음에 울렸던 것은 참으로 오래된 일입니다.

집 밖에서 가끔 긴 산책을 하면서 작곡을 하는 것이 베토벤의 습관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당신은 내가 언제 생각을 떠올리느냐고 물을 것이다. 내가 어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상치 않은 때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온다. 나는 그것을 자연 안에서, 꿈속에서 산책하는 동안, 밤의 침묵 속에서, 이른 새벽에 내 손으로 움켜잡는다.
그것은 기분에 의해 솟아나는데 시인은 그것을 말로 바꾸겠지만 나는 음으로 바꾼다. 그 소리는 마침내 내가 음표로서 모습을 정해 놓을 때까지 소용돌이치고 폭풍 친다.

19세기 낭만주의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취는 화성적 기법과 악기의 음색의 발전이다. 반음계적 화성, 반음계적 성부 진행, 원격 전조, 조성적 모호성, 복잡한 화음, 비화성음의 자유로운 사용, 분명한 종지를 피하려는 경향의 증대 등은 조성을 확대시키고 필연적으로 조성의 윤곽을 흐리게 한다. 표현의 수단으로서 낭만주의적 화성은 음색의 끊임없는 확대와 병행하는 것이다. 새로운 음향이 피아노 음악에서 발견되고 새로운 악기가 관현악에 첨가되고 옛 악기들이 더 좋은 소리를 내고 더 융통성 있게 개조되었으며 악기의 새로운 편성이 새로운 음색 효과를 내기 위해 창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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