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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흙속에 저 바람속에 이어령 문학사상 2002년 초판 1쇄, 2010 2판 4쇄 290쪽  ~04.0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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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속에 저 바람속에 이어령 문학사상 2002년 초판 1쇄, 2010 2판 4쇄 290쪽  ~04.07

singingman 2026. 4. 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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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4월에 읽은 책인데 전혀 기억이 없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이어령 선생님을 내가 너무 좋아한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아서 낸 책이다.

달맞이꽃의 전설
그것은 달을 사랑하는 님프의 넋이라고 했다. 달을 너무도 그리워한 까닭에 별을 시기하게 되고 끝내는 것 때문에 제우스 신의 노염을 샀다. 그리하여 달도 별도 없는 곳으로 쫓겨나게 되고 달님은 그 님프를 불쌍히 여겨 그를 찾아다녔다. 제우스 신은 그것을 눈치채고 구름과 비를 보내어 그들의 사랑을 방해했다. 연연한 그림을 안고 나날이 야위어 가던 님프는 드디어 숨을 거두게 되고 그 넋은 어느 언덕에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풀 하나가 생겨나고 어두운 밤에 홀로 달을 기다리는 외로운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달맞이 꽃이다.

숭늉에는 은은한 온돌의 장판색 같은 색깔이 있고 역시 그렇게 구수한 맛이 있다. 그러나 그 빛깔은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것 같고 그 맛은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 것 같다. 마시고 나야 비로소 그 맛을 알 수 있으며 따라놓고 봐야 그 빛깔을 볼 수가 있다. 잡힐 듯 말듯한 여운이 입술 위에서 싱그럽다.
그런 숭늉 속에는 무뚝뚝하고도 정에 겨운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있고 외할머니 같은 손길이 있고 우륵이 타는 가야금 소리가 있고, 춘향의 옷자락 같은 음향이 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숭늉의 그 미지근한 감촉이야말로 한국인의 체온이다.
그리고 또 막걸리는 어떠한가?
위스키나 배갈처럼 독하지 않다. 투명하지도 않다. 뿌옇게 떫고 심심한 그 막걸리에는 한국인의 소박한 애환이, 김삿갓의 그 웃음 같은 것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텁텁한 막걸리의 맛은 이 나라의 감상과 사치하지 않은 낭만이다.

얼음 위 댓닙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어러주글 만뎡
정둔 오늘밤 더듸
새오소라 드디 새오시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에 버혀 내여, 춘풍,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던 구뷔구뷔 펴리라.

화투와 트럼프야말로 동양인의 역사와 서구인의 역사를 구별하는 상징적인 열쇠인 셈이다. 우리의 가슴에는 확실히 트럼프장의 그림이 아니라 화투장의 꽃과 초목이 찍혀 있었다.
인간의식보다는 자연의식이 사회의식보다는 풍요정신이 한국(동양)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번쩍이는 다이아몬드나 불붙는 하트를 찾아다니고 그리고 왕과 칼 (스페이드)로서 사회를 정복하려 할 때 우리는 소나무 가지에 날개를 드리운 학을 구하고 매화 그늘에서 우짖는 새소리를 탐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교통 질서를 엄수하지 않는 것은 공중의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 또 생각해보면 까다롭게 따지기를 싫어하는 은사 지품의 기질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 글이 1962년에 쓰여진 글이어서
이렇게 말하지만 오늘날 (2026년)한국인들은 교통 질서를 매우 잘 지키고 있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그러면서도 은근한 변화가 있는 바가지의 모양의 말로 한국적 미의 원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요철이 심하고 뾰족한 여인의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사스럽고 덕이 없어 보이고 방정맞다 해서 혀를 차는 것이다. 바가지처럼 둥글고 수수한 얼굴을 복성스럽다 해서 이상으로 삼는다. 도자기를 보더라도 대개의 형태는 바가지와 같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키츠가 넋을 잃고 찬양한 그리스 항아리는 거의 모두가 오늘날의 위스키 글라스처럼 원추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