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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중세교회사 유스토 L. 곤잘레스 저 서영일 역 은성 1987년 305/337쪽 ~04.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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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사 유스토 L. 곤잘레스 저 서영일 역 은성 1987년 305/337쪽 ~04.09

singingman 2026. 4. 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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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교회 회의와 이단 논쟁, 수도원 개혁 운동, 십자군 전쟁, 탁발 수도회조누 위클리프와 존 후스의 개혁,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동양으로의 포교와 식민지 확보등을 다루고 있다.
스페인과 특히 포르투갈은 식민지를 확보하면서 원주민들을 괴롭히는 나쁜 짓들을 많이 했고 그곳에 있는 선교사들은 거기에 저항하며 싸웠지만 본국에 있는 천주교들은 오히려 국가와 동조하며 원주민들을 돌보지 않은 것 같다.

12 ~ 13세기 동안에 발전하였던 화폐 경제는 중세 말의 상황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비록 20세기의 기준에서 볼 때에는 사소한 규모이지만 신용제도, 교역, 그리고 공산품 생산 등으로 부르조아 계급은 점차 막강한 영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새로이 등장한 이 계급의 이해관계는 봉건 영주들의 그것과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귀족들 간의 잦은 전쟁, 자기 영역을 통과하는 상품들에 부과한 세금들, 그리고 자급자족을 추구하였던 대영주들의 욕망 등은 모두 교역을 저해하고 그 이익을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부르조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정부가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교역이 보호받고 산적들을 퇴치하며 화폐 제도를 통솔하고 사소한 전쟁들을 종식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르조아들은 대귀족들에 대항하여 국왕들을 지원하였다. 국왕들 역시 이러한 동맹을 통하여 이익을 얻었다. 국왕들이 대군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자금이 없을 때에만 강력한 귀족들은 군주들에게 반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군자금을 왕들은 부르조아들로부터 얻었다. 그리하여 중세에 있어서 중앙집권 군주제의 성숙은 은행가들 및 상인들의 점증하는 영향력과 병행하였다.

원래 후스파들은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거부된 사항들 이외에는 기꺼이 유지하고자 했는데 반해 타볼파들은 성경 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체의 사항들은 부정하였다. 이러한 타볼파와 비슷하였으나 종말론 주의에 있어서는 약간 온건하였던 움직임으로써 호렙파들이 있었다.
여러 집단들은 무력에 의한 해결을 피하기 위하여 네 개 헌장에 동의하였으니 이것이 곧 보헤미아 저항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4개의 헌장 가운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스럽게 왕국 전체에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두 가지 종류 모두의 성찬을 거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이는 곧 떡뿐만 아니라 포도주도 평신도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후스가 그의 생애 말기에 도달한 결론으로서 곧 모든 후스파들의 주요한 요구 조건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성직자들을 일체 재산을 포기하고 사도적 빈곤을 규범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조항은 공적인 범죄 특히 성직 매매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정복 초기부터 스페인인들은 쿠바 북쪽에도 육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1513년 푸에리토 리코의 총독이었던 후앙 폰스 데 레온은 국왕으로부터 비미니 지방의 탐험 및 식민권을 하사받았다. 이곳에는 인간의 젊음을 다시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많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분수가 존재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폰소의 탐험대는 이곳에 도착하여 플로리다라 이름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파스코 플로리다 국왕의 이름 아래 부활절날 도착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래는 제미나이가 요약한 내용이다.

후스토 곤잘레스(Justo L. González)의 『교회사』(The Story of Christianity) 중세 편은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기독교가 어떻게 서구 문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권력과 신앙의 긴장을 아주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곤잘레스가 서술한 중세 교회사의 핵심 내용을 5가지 주요 흐름으로 요약해 드립니다.

1. 새로운 질서의 형성 (초기 중세)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에 의해 함락된 후, 교회는 혼란에 빠진 유럽의 유일한 안정적 기구로 남았습니다.

수도원 운동의 확산: 베네딕트 수도 규칙서 등을 통해 수도원이 학문과 농업,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곤잘레스는 수도원이 중세 문명을 보존한 '저장고'였음을 강조합니다.

교황권의 부상: 그레고리 1세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교황은 영적 지도자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르만 포교: 클로비스의 개종 등을 통해 야만족이라 불리던 이들이 기독교화되며 유럽의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2. 제국과 교회의 결합 (카롤링거 왕조)
샤를마뉴(카를 대제): 서기 800년, 샤를마뉴가 황제 대관식을 치르며 '신성 로마 제국'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곤잘레스는 이 시기를 교회와 국가가 한 몸처럼 움직이던 시기로 봅니다.

부작용: 권력이 집중되자 성직 매매와 교회의 타락이 나타났고, 이는 훗날 개혁 운동의 불씨가 됩니다.

3. 중세의 정점과 수도원 개혁
곤잘레스는 11세기부터 13세기를 중세 기독교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시기로 묘사합니다.

클뤼니(Cluny) 개혁 운동: 교회가 세속 권력(영주 등)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서임권 투쟁: 교황 그리도리 7세와 황제 하인리히 4세의 충돌(카노사의 굴욕)을 통해 교황권이 황제권 위로 올라섰음을 보여줍니다.

스콜라 철학의 발달: 안셀무스, 아퀴나스 등이 등장하여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4. 십자군 전쟁과 동방 교회와의 분열
이 시기는 기독교 역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중 하나인 십자군 전쟁을 포함합니다.

1054년 대분열: 로마 가톨릭(서방)과 정교회(동방)가 서로를 파문하며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곤잘레스는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신학적 차이만큼이나 컸음을 지적합니다.

십자군 전쟁: 성지 탈환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정치적, 경제적 탐욕과 이로 인한 이슬람/동방 교회와의 관계 악화를 비판적으로 서술합니다.

5. 중세의 황혼과 개혁의 전조 (후기 중세)
14세기 이후, 중세적 질서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교황권의 쇠퇴: '아비뇽 유슈'와 '서구 대분열'(두세 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로 인해 교회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흑사병과 신비주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제도적 교회보다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신비주의가 유행했습니다.

선구자들의 등장: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처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교회의 부패를 비판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종교개혁의 길을 닦았습니다.

곤잘레스 서술의 특징
곤잘레스는 중세를 단순히 '암흑시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 시기를 **"기독교가 유럽의 모든 삶(정치, 예술, 철학) 속에 스며들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시대"**이자, 동시에 **"그 비대해진 몸집 때문에 내부로부터 개혁의 요구가 분출될 수밖에 없었던 시기"**로 정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