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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찬송할까? 본문
하나님은 찬송 받기를 기뻐하시며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시다. 이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은 구원받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성경은 명령하며 황소를 잡아 제사지내는 것보다도 하나님 찬양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시 69:30-31)고 기록하고 있다.
1.찬송의 본질과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찬양해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까?
먼저 찬양은 그 받으시는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그러므로 어떤 일의 결과보다는 그 일을 어떻게 준비하느냐 하는 과정을 중시하시는 하나님이다. 정성스럽게 준비하지 않은 찬양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자기의 욕심이나 채우고 시간이나 떼워메꾸기 위해서 하는 찬양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다가 3,000 명이나 죽은 기록이 나온다. 우리 속담에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말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찬양을 받으실 만큼 구차하거나 무료하신 분이 아니시다. 물론 공식적인 예배가 아닌 우리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격식 차림이 없이 콧노래로 부를 수도 있고 흥얼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예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충분한 준비를 한 것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어떤 기관의 헌신 예배에서 전혀 준비하지 않고 앞에 나온 후에야 찬송 몇 장을 부를 것인지 물어 보는 등의 행위는 너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위가 될 것이다. 우리가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도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함부로 행동한다는 것은 신자로써 할 일이 아니다. 찬양(praise)이라는 용어의 의를 정확히 살펴보면 사전적인 의미는 감사와 존졍의 표현이다. 감사와 존경을 표시하는 사람이 준비와 성의없이 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멸시나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반 생활용 성가가 아닌 예배용 찬양은 충분히 연습하고 정성스럽게 연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2. 어떤 음악으로 찬양할까?
두 번째로 어떤 종류의 음악을 하나님께 드릴까? 물론 어떤 특정의 음악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가치 있는 음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예배용이 아닌 일상 생활용 교회 음악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일을 하면서 부를 수 있는 성가도 있어야 하고 전도할 때 부르는 성가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건하고 격식을 갖춘 예배에서는 그 예배에 맞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것은 성악 음악 일수도 있고 기악 음악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성악 음악만 좋아하신 다거나 기악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양쪽을 다 드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너무 수준이 낮거나 저속한 음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시대적으로 보면 어떤 특정 기간동안 기악 음악이 교회에서 기피되었던 시대도 있었고 종교개혁 직후에는 오르간을 파괴하는 움직임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좋은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며 여건이 허락하는 교회들은 오케스트라를 조직해서 예배 시간에 찬양하기도 한다.
음악의 종류를 꼭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교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한마음으로 거리낌없이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용하는 음악이 전 교인들에게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같은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한때 우리 교회에서도 토착화 신학과 함께 교회 음악의 토착화가 교회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것은 교인들의 우리 전통 음악에 대한 이해 부족과 교회 음악인들이 우리 전통 음악을 너무 급격하게 교회에 도입하려고 시도 한데서 연유한 경우가 많았다. 우리 전통 음악에 사용하는 징이나 장구, 혹은 꽹과리 등이 일반 신자들에게나 교회 지도자들에게 너무 무속 적인 인상이 강하게 심어져 있었고 그래서 교회에서 장구나 징, 혹은 꽹과리 등을 사용하면 마치 무당이 굿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많은 경우 그 음악을 선정하는 교회 음악가들이 전통적인 교회의 예배 분위기나 신자들의 선호도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앞선 음악적 느낌이나 생각들을 교회에서 실험하려고 해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경우가 많았다. 우리 정서에 맞고 예배의 정신에도 일치하는 음악을 사용한다면 우리 한국 교인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음악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불릴 수 있다. 현재 우리 찬송가에는 한국 곡이 너무 적게 실려 있어서 교회 음악인들에게 지적을 자주 받는다. 찬송가에 실려 있는 한국 작곡가들의 찬송이 자꾸 늘어나면 우리 한국적인 찬송이 우리 교회에서 더 많이 불리게 될 것이다.
음악은 옷과 같은 것이어서 시대와 분위기에 맞아야 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다른 옷을 입듯이 음악은 변해야 한다. 성경 말씀은 변함이나 가감없이 후대에 전해져야 하지만 찬양은 시대에 따라서 그 시대 상황에 맞게 변해야만 한다.수영장에서 정장을 하고 수영할 수 없고 추운 겨울에 비키니 차림으로 돌아다닐 수 없듯이 음악도 주위 분위기와 그 음악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수준에 맞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생소한 음악을 도입하려고 할 때는 점차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숙련된 연주자들을 통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악기를 미숙한 연주 솜씨로 교인들 앞에 내보이는 것은 그 악기가 교회에서 더 심한 거부감을 갖도록 할 수밖에 없다. 음악의 내용도 그 음악이 교인들에게 어떤 저속한 상황이나 이교도적인 냄새를 풍기게 만든다면 교회에서는 사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서 찬양하는 레위인들이 악기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이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서 연주에 아주 익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대하 5장에 의하면 이들이 찬양을 너무 잘해서 제사장이 섬기는 일을 못할 정도로 되었다고 한다.
3. 찬양의 상황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때에 어떤 음악을 사용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먼저 예배에서는 예배의 정신에 맞는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 찬송가를 예로 들면 1장에서 55장까지는 찬양과 경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는 예배의 경건성이나 엄숙함과 대체로 잘 어울리는 가사와 음악으로 되어 있다. 교회 음악에는 전도용이나 주일학교 교육을 위한 것도 있고 친교를 위한 음악도 있다. 이런 음악들은 각각 그 상황에 맞게 사용될 때 효율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부활주일 아침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성탄절 찬송을 부른다면 그것은 예배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 것이다. 또 초신자들을 모아 놓고 전도 집회를 하면서 너무 어렵고 경건한 찬송가만 부른다면 금방 싫증을 느끼고 지루해 할 것이다. 청년들의 예배에서는 청년들의 정서에 맞는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으며 주일학교 수준에서는 또 그 수준의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 요즘 청소년들이 찬송가 부를 때 잘 들어보면 그 찬송에 힘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 찬송가가 이들의 정서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1,700년대와 1,800 년대에 만들어진 이 찬송들이 요즘의 청소년들의 취향과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작곡된 복음성가들을 부를 때 그들의 태도가 어떤지 잘 살펴보면 문제점이 무엇이란 것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른들이 은혜스럽고 좋은 찬송이라고 하더라도 청소년들이 부르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 찬송이 잊혀져 버린다면 앞으로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맥빠진 찬송을 부르는 교회가 힘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을까? 교회가 힘이 있을 때 그 교회에는 힘찬 찬송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찬송이 힘이 없으면 교회도 힘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교회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신자들이 찬송을 부를 때 취할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간혹 우리는 찬송 부르다가 딴 생각을 해서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다른 절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찬송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찬송을 원래 악보와 다르게 부르면서 이것이 더 은혜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간혹 혼자서 부를 때에야 좀 달라도 문제가 될게 별로 없겠지만 회중이 함께 부를 때 이렇게 하면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특히 요즘은 교회에서 다들 마이크를 사용하는데 지도자가 틀려 버리면 마이크의 영향 때문에 전 회중이 다 혼란에 빠지게 된다. 찬송가의 속도도 문제가 된다. 대체로 우리 교회에서는 찬송을 지정된 속도보다 느리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곡에 따라서는 천천히 불러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이것이 예배를 지루하고 생기를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예배 순서에서 어떤 순서는 중요하고 또 어떤 순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지도자들도 있다. 예를 들면 기도 시간이나 설교 시간에는 예배당에 출입을 못하게 하면서 어떤 다른 시간에는 출입을 하라고 한다면 신자들은 그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간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찬송을 시간 메우기로 생각하거나 어수선할 때 그 순간을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준비 찬송하는 것과 “찬송 몇 장 부르시면서 뒷줄에 앉으신 분들 앞으로 나와서 맞춰 앉아 주십시오”하는 경우다. 준비 찬송이라는 말은 어떤 다른 프로그램을 위해서 찬송을 하자는 것인데 별 생각 없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써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런 경우는 준비 찬송합시다 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을 경우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하는 것이 훨씬 좋은 표현이 될 줄로 안다.
복음성가에 대해서 예배용 음악으로 부적합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모든 복음성가에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복음성가가 전도용으로 사용되었고 또 그 음악의 수준이나 내용이 처음 믿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복음성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어떻게 말하면 복음성가와 찬송가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특히 요즘 청소년 전도 집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경배와 찬양은 그 자체가 바로 예배이고 찬양이다. 또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도 실제로는 복음성가 류의 음악들이 들어 있고 우리가 그것을 잘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 찬송가에는 외국의 민요도 들어 있고 국가도 있고 노동요도 들어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그것을 은혜스럽다고 부르고 있다. 찬송할 때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신학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때로는 감동과 은혜가 혼란될 때도 있다.
4. 주일학교에서의 찬양
주일학교의 찬송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선 초등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일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신체적 발달과 성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초등 학교 입학 전의 아이들이나 초등 학교 저학년의 아이들은 아직 음폭이 넓지 못하기 때문에 찬송을 선곡할 때 신경을 써서 아이들이 부를 수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어른들이 쉽게 부른다고 해서 아이들도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주일학교 찬양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들 중에는 아이들 음역에 맞지도 않는 곡을 골라서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봉사하는 열심히 이 일을 감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들의 의도는 순수하고 좋지만 너무 무리해서 오히려 아이들이 찬양에 부담을 느끼고 그 찬양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끼기보다는 음악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기피 감을 가진다면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 주일학교 예배를 인도하는 부장 집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은 그날 부를 찬송을 반드시 한 번쯤 미리 집에서 불러 보고 와야 한다. 설교나 성경봉독은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하면서 찬송은 대충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한 자세이다. 예배 인도자가 찬송을 부르면서 성경을 뒤적거리거나 딴 짓을 하는 것도 예배 시간에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을 보는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무의식중에 찬송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우리 예배 요소 가운데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부분이 있는데 찬송과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이고 성경봉독과 설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부분이다. 설교 시간에 다른 짓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시간은 정성 없이 한다면 이것은 합당한 예배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여름 성경 학교가 끝난 직후에 볼 수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성경 학교 때 배운 노래를 예배 시간에 부르는 것이다. 그 중에는 예배 시간에 불러도 될 것들도 있지만 처음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의 교육과 전도를 위해서 작사되고 작곡되어서 예배용 음악으로는 부적합한데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경우가 있다. 예배용 음악이란 성삼위를 찬양하고 감사하며 경배하는 내용의 것이 좋다. 음악의 리듬이나 화음도 너무 가볍고 당김음이 많아서 예배의 엄숙함을 파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는 잘 맞지 않는다. 민족성에 따라서는 예배 시간에 뛰고 춤추고 하면서 찬양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우리 정서는 아직은 엄숙한 예배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은 아직 고정관념이 없고 예배에 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기는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예배와 찬양에 관해서 바른 교육을 하는 것은 미래의 교회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교사나 지도자가 예배와 찬양에 올바른 안목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이들은 그 올바르지 못한 것을 배울 수밖에 없다.
5. 결론
결론적으로 찬양은 그 대상이 찬양 받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며 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신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잘 준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찬양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예배와 관련해서 예배의 정신과 일치해야 하며 회중의 정서와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어린이들의 찬양은 아이들의 신체적 지적 능력을 감안해서 선곡하는 것이 중요하며 미래의 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기둥이란 사실을 기억하고 교육적 차원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찬양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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