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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능,원,묘

창덕궁 & 창경궁 15-09-28

singingman 2022. 12. 1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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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가다. 

아침 일찍 가서 후원까지 예약해서 후원에는 아내와 함께 가다.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린다.

임진란 이후 창덕궁은 경복궁을 대신해 법궁의 역할을 오래 하다 대원군 때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다시 그 역할을

넘겨주게 된다.

현재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과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통치 영역, 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영역,  낙선재 ,

그리고 북쪽 언덕 너머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뒤쪽으로는 북악산 매봉이 있고 앞에는 금천이 흐르고 있는 배산 임수의 지형이다.

과거가 햇볕을 쬐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된다는데 여기는 역사가 살아있지?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창경궁과 경계없이 사용했다.

우리 궁궐 중 1997년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일한 궁이다.

 

3호선 안국역에 내려서 창덕궁으로 가는 길에 이 관상감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오전 10시 반인데 후원은 오후 1시 45분표가 가장 빠른 시간의 표다.

1. 돈화문 일원

 

1412년 돈화문이 건립되다.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을

사용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에 재건되었고 보물 제 383호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은 월대위에 세워져 있고 보물 제383호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의 다포식 우진각

지붕의 건물이다.

창덕궁은 경복궁처럼 광화문을 지나면 바로 정전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한번

꺾어야 궁궐들이 나온다.

즉, 종축으로 되어 있지 않고 정전을 중심으로 횡으로 연결되어 있다.

 

 

 

 

돈화문을 들어서서 진선문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우회전하면 창덕궁 관리소로 쓰고 있는 내병조가 나온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이 곳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이 건물 왼쪽으로 돌아가면 진선문 안쪽이 나온다.

 

궁궐내의 시위(侍衛)의장(儀仗) 등 군사사무를 보기 위한 병조 관리들의 출장소였다

  

 

내병조의 계단을 올라가면 긴 마루가 기둥과 함께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궁궐안의 담장은 기능외에도 미술적인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돈화문을 들어와서 우회전하면 정전과 편전으로 들어가는 이 문을 통과하게 된다.

 

 

돈화문을 들어서서 직진하면 이 안내석판이 있다.

 

 

 

 

들어가게 된다. 절의 해탈교는 성과 속의 구분이지만 왕궁 안에 있는 이 다리는 어떤 기능을 할까? 위 두장의 사진은 내가 못 찍어서 다른 사람의 사진을 퍼왔다. (사진 출처:http://cafe.daum.net/hosociety/d64H/56?q=%C3%A2%B4%F6%B1%C3%20%B1 %DD%C3%B5%B1%B3&re=1)

 

 

금천교 아래 있는 거북

 

 

 

 

 

 

해치를 닮았는데 뭘까?

 

 

금천교에 있는 석수 머리

 

 

 

 

 

 

 

 

진선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내병조(內兵曺), 호위청(扈衛廳), 상서원(尙瑞院)이 있다.호위청은 궁중의 호위를 맡아보는 군영으로 인조1년(1623년)에 인조반정을 주도한 공신 세력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설치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여기에 방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회랑처럼 기둥만 남아있다.

 

 

상서원은 새보, 발병부, 마패, 절부월 등 각종 증명을 관장하는 기관이었다고 한다.

 

2. 인정전 일원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2단의 월대 위에 중층으로 세우졌다. 하지만 속은 통층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813호. 정전(正殿)에 이르는 출입문으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 문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문 앞에는 석수가 난간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의식을 거행하는 정전인 인정전은 높은 월대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다포계(多包계) 팔작지붕건물. 국보 제225호이다.

  

 

마당에는 박석이 깔려있고 어도 양 옆에 품계석이 있는데 문관인 동반과 무반인 서반이 함께 서는 곳이고 이 문무반을 합쳐서 양반이라고 한다.

 

 

정품은 9품까지인데 종품은 3품까지만 있네.

 

 

바닥에 이 문고리는 여러개가 있는데 차일을 칠 때 필요해서 있는 것이라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다포계(多包계) 팔작지붕건물. 국보 제225호. 창덕궁의 정전(正殿)

 

 

 

 

 

인정전 안에는 일월오봉도와 어좌가 있다.어좌 위에는 보개가 있다. 절에 불상 위에도 보개가 있지?

 

 

문살은 꽃무늬살이 연결되어 있다.

 

 

인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행랑 건물들 - 의식을 행할 때 비가 오거나 하면 이 행랑이 필요했다고...

 

 

 

 

 

 

 

 

 

 

 

 

 

 

 

 

 

새들이 똥싸는 것을 막기 위해서

 
 
3. 선정전 일원
 
왕의 편전으로 인정전 동쪽에 있다.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으로 불렸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으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목재로 재건하였다. 선정전은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편전인 선정전으로 들어가는 문. 이 문으로 들어가면 계속 복도를 따라 선정전 까지 가게 되고 건물 전체를 보는 것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사진을 퍼왔다.

 

 

 

창덕궁 내에서는 유일하게 청기와 건물이다.(아래 위 두장의 사진은 다른 사람의 사진을 퍼 옴.)

 

 

 
 

왕이 업 무를 보는 공간인 편전인 선정전에도 역시 일월오봉병풍과 어좌가 있다.

 

 

 

 

 

선정전 천장무늬. 궁궐 천장의 무늬는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나?

 

 

 

 

 

중요한 건물들은 다 팔작지붕이지?

 

 

 

 

 

지붕 위 치미와 잡상들이 궁궐을 잘 지켜줄까?

 
. 희정당 일원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다.

임금의 거처인 희정당. '당'은 '전'보다 품계가 한 단계 아래다 . 그래서 오히려 더 편안할 수 있다. 원래는 내전에 속해 있었지만 여러번 불타고 하면서 용도도 바뀌었다고...

 

 

 

 

 

 
 
. 대조전 일원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터에 1920년 겅복궁의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개조하였다.

 

 

 

 

 

 

 

 

 

전의 정문으로 '화평을 세상에 펼친다'는 뜻이라고

 

 

왕비의 생활공간이며 임금과 왕비의 침전이다. -  역시 용마루가 없다. 용마루가 있으면 잘 때 용으로부터 기가 눌려서 후손을 생산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왕비께서 주무시던 방을 우리가 감히 기웃거리고 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합병되는 마지막 어전 회의를 했던 곳이라고, 이름은 흥복인데 우째 그런 일이...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신차려야 할낀데.

 

 

 

 

 

'아름다운 봄'이라는 뜻을 가진 대조전의 문이라고,

 

 

담장과 문이 아주 아름답다.

 

 

 

 

 

 

 

 

왕궁에는 굴뚝에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담장이 전벽돌로 만들어졌다. 화단이 계단을 이루어 화계라고 부르는 것 같다.

 

 

경훈각은 원래 동궐도에는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재건하면서 단층으로 되었다고 한다.

 

 

우물

 

 

 

 

 

마루 아래에는 아궁이가 있다. - 내전에는 온돌이 되어 있어서 편하게 쉴 수 있었지만 외전의 정전과 편전은 온돌이 아니어서 겨울에는 오래 머물기가 불편한 점이 있었으리라.

 

 

동궐도에 없는 건물이고 아마도 물건을 넣어두던 공간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궁궐에는 ㅡ자, ㄱ자, ㄷ자 모양의 건물들이 있다. 이 건물이 함원전이래.

 

 

 

 

 

자원봉사하는 문화재 해설사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6. 성정각 일원
 
성정각은 세자의 교육장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다.
단층이지만 동쪽에 직각으로 꺾인 2층 누각이 붙어 있다.
뒤편에 있는 관물헌은 왕이 자주 머물면서 독서와 접견을 했던 곳으로 현재는 '집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세자의 생활터이며 특히 세자의 교육장으로 사용되었던 성정각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다. 대문은 높은 솟을 대문이며 영현문(迎賢門)이라고 이름지었다.영현(迎賢)이란 어진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이 건물이 성정각이라고 한다. '보춘정'과 그 옆에는 '희우루'라는 현판이 정자에 걸려있다

 

 

한때는 내의원으로 사용되어서 아래와 같은 현판들이 붙어있다고 한다.

 

 

 

 

 

희우루는 이 전각을 짓기 시작할 때 비가 내리고 완성할 때도 흡족한 비가 내려 정조대왕이 기뻐서 이 이름을 짓고 친필현판을 써 주었다고.

 

 

'즙희,혹은 집희'라는 말은 임금의 덕이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는 뜻이라고, 고종이 13세 때 쓴 친필이라고 한다.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건너가는 출입문이다. 입장료 1,000원을 따로 내고 들어가야 한다.

 

 

 

 

 

 

 

 

 

 

 

 

 

 

 
 
 
. 낙선재 일원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헌종의 빈인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를 위한 집이었다.
석복헌에서는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낙선재에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원래는 창경궁 소속의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창덕궁안에 있고 세자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1847년(헌종 13)에 중건된 낙선재는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다. 그러나 고종대에 들어와서 중희당과 가까운 낙선재를 종종 편전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생겼다. 특히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 이후 고종은 낙선재를 집무실로 정하고 대신들과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였다. 그 후 조선왕조 마지막 영친왕 이은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1966년부터 1989년까지는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였다.

 

 

 

 

 

화계가 아름다운 낙선재

 

 

굴뚝이 기품있다.

 

 

 

 

 

 

 

 

 

 

 

역시 기와와 벽돌로 지어진 굴뚝이 아름답다.

 

 

 

 

 

 

 

 

석복헌과 수강재가 낙선재 구역에 있다.

 

 

 

 

 

 

 

 

 

 

 

 

 

 

이 아름다운 정자는 상량정이다.

 

 

 

 

 

 
 

후원 가는 길

 

아래는 창경궁이다.

창경궁으로 건너가는 문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정조대왕이 생각나지?

 

 

 

 

 

 

 

 

 

 

 

여름에는 이리로 물이 흐른다고

 

 

 

 

 

이 곳은 내의원에 속하는 건물이라고, 역대 국왕의 어필 현판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한다.

 

 

 

 

 

 

 

 

 
 
9. 구 선원전 일원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은 1656년 경덕궁의 경화당을 옮겨 지어 창덕궁 선원전으로 삼았다.

양지당은 왕이 제사 전날 머무르던 어재실이다.

 

 

 

 

 

 

 

 

 

 

 

 

 

 

궐내 각사에 속하는 홍문관의 별칭인 옥당 - 옥같이 귀한 집이라는 뜻

 

 

궁궐안의 담들은 구역을 나누는 상징만 있는 것 같애.

 

 

 

신하들이 들어와 업무 보는 곳이 내각이다. 궐내 각사 건물이다

 

 

 

 

 

 

 

 

돈화문을 들어가면 왼편에 이 나무들이 있다.

 

 

왼편의 인정문을 지나면 정전으로 들어가고 정면의 숙장문을 지나면 내전으로 들어간다.

 

 

 
 
 

아래는 창덕궁 후원이다.

 

 

 

 

 

 

 

 

 

주합루와 부용지

 

 

 

 

 

 

부용정

 

 

 

 

 

 

 

 

 

 

 

 

 

 

 

 

 

 

 

 

 

 

 

 

 

 

 

 

 

 

 

 

 

 

 

 

 

 

 

 

 

 

 

 

 

늙지 않는 불로문

 

 

 

 

 

 

 

 

 

 

 

 

 

 

 

 

 

 

 

 

 

 

 

 

 

 

 

 

 

 

 

 

 

 

 

 

 

 

 

 

 

 

 

 

 

 

 

 

 

 

 

 

 

 

 

 

 

 

 

 

 

 

 

 

 

 

 

 

 

 

 

 

 

 

 

 

 

 

 

 

 

 

 

 

 

 

궁궐 안에 있는 일반 사대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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