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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가?

singingman 2023. 1. 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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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4권을 읽다가 인상적인 글이 있어서 옮긴다.

독서란에도 썼지만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조무는 기원전 546년 여러 사람들과 나라들을 설득해서 진과 초의 역사적인 휴전협정인 미병(弭兵)을 이끌어 낸 사람이다.

조무는 진나라가 초 장왕에게 패한 필의 싸움 전까지는 진나라 최고 명문가인 조돈의 손자이며 조삭의 아들이다.

도안고가 조돈의 조카인 조천이 영공을 시해한 죄를 물어 조씨 일가를 죽이자고 했을 때 한궐은 조돈을 변호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조삭에게 알려서 피하라고 했지만 조삭은 한궐에게 가문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게 도와주면 조삭은 죽겠다고 했다.

도안고는 경공의 허락도 받지 않고 조동, 조괄,조영재등 조씨 일족을 조삭의 동생 조천이 진의 포학한 군주인 영공을 시해한 죄를 물어서 다 죽였다.

 

조삭의 아내는 진나라 성공의 딸로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공궁으로 피해 숨었다.

그때 조삭의 문객으로 공손저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조삭의 죽음을 보고 그 친구인 정영에게 왜 따라 죽지 않았느냐고 힐난했다.

그러자 정영은 조삭의 부인이 임신 중이니 사내아이를 낳으면 그를 받들고 딸을 낳으면 자기도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

공손저구가 정영에게 물었다.

"고아를 키워서 세우는 일과 죽는 일 중에 무엇이 어렵소?"

죽는 것이 쉽고 고아를 세우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자 공손저구가 "조씨의 선군께서 그대를 후대했으니 그대는 힘써 어려운 일을 하시오 나는 먼저 죽겠소" 하면서 둘이 모의하여 다른 사람의 아이를 구해 강보에 싼 후 공손저구는 산속에 숨고 정영은 내려와서 조씨를 공격한 사람들을 찾아 고발했다.

누가 나에게 천금을 주면 조씨네 고아가 있는 곳을 알려 주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정영을 앞잡이로 세워서 산으로 들이닥쳤다.

공손저구는 짐짓 비장하게 정영에게 너는 조삭이 죽을 때도 따라 죽지 않더니 지금 와서 그 아들까지 죽이려고 하느냐고 꾸짖으며 나무란다.

하지만 그를 찾아 온 사람들은 저구와 아이를 죽였다.(여기까지는 정사인 것 같고 다음 이야기는 그 후에 첨가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진 경공이 병이 나서 점을 쳐보니 점괘가 대업의 후손 중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이가 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나왔다.

이 때 한궐이 대업의 후대중에 진나라에서 대가 끊긴 가문은 바로 조씨 가문이라 말하자 경공은 그 후손을 찾아보라고 해서 그간의 사정을 다 말하고 '조씨 고아'를 불러들이고 당시 난리에 가담한 사람들을 추궁했다.

그러자 도안고를 불러서 그 일족을 몰살했다.

다시 조무는 조씨 일가의 봉지도 다시 되찾았다.

조무가 성년이 되자 정영이 조무를 찾아와 말하기를

"난리가 났을 때 죽지 않은 것은 모두 오늘을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지하의 조선맹(명문 대족의 종주를 높여서 맹이라 불렀다.)과 공손저구에게 알려야겠습니다." 라고 했다.

조무가 울며 말렸지만 제가 가서 알리지 않으면 먼저 죽은 공손저구가 아직 일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거라고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 소명을 정확히 알면 죽을 때도 깨끗이 죽을 수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그러셨고 사기 열전에도 그런 인물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은혜와 의리를 위해서 죽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성경에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했는데 그들이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권력이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친구나 이웃,나라를 배신하고 더러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결국  사실들이 다 알려져서 불명예스럽게 된다.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닌 삶을 살아간다.

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47인의 사무라이'에 나오는 47인도 의리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본인들의 가치관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할복자살이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주군의 복수를 위해 인내하고 계획하면서 일을 성사시키는 일본인들을 보면 무섭기도 하다.

조선의 선비들은 무사가 아니었으니 무력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도 의리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늘날의 나는 정영처럼 저렇게 죽지는 못한다.

내세관이 다르고 내 삶이 아깝고 가족이 생각나고 살아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믿기 때문인가?

하지만 친구나 이웃을 대하는 마음은 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퇴계는 1570년 12월 자제들에게 명하여 다른 이들의 서적을 기록해 돌려보내게 했다. 제자들에게 퇴계는 ‘평소 그릇된 식견으로 종일 강론한다는 것도 역시 쉽지 않았소’라고 하고 이날 아침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 하고 유시 초 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일어나 앉아 편한 듯이 운명했다.”(『해동잡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