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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한국의 문기 최준식 소나무 2007년 319쪽 6/30~7/1 본문

독서

한국의 문기 최준식 소나무 2007년 319쪽 6/30~7/1

singingman 2023. 1. 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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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氣라는 말을 저자가 만든 것 같다.

우리 나라의 인쇄문화와 금속활자에 관해, 특히 직지심체요절과 고려 금속활자에 관해 이야기 한다.

구텐베르크 활자가 성경의 보급에 널리 쓰인데 비해 우리 금속활자는 한번에 그렇게 많이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계 최초의 인쇄본은 흔히 다라니경이라고 말하는 우리 나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그 전에는 일본의 백만탑 다라니경이 세계 최초의 인쇄본이었는데 도굴꾼들이 불국사 석가탑 속에 있는

유물을 훔쳐 갈려다가 못 가져가고 탑신이 기울어 진 것을 보고 해체해서 다시 세우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고려 대장경은 가장 완벽한 장경이고 여러 불경들을 목판에 기록한 것이다.

고려 대장경의 글자수는 대략 5,200만자 정도이다.

지금은 20세기 초에 만든 일본의 대정신수 대장경이 가장 포괄적으로 기록하고 대장경이라고 한다.

 

세계 최대의 단일 왕조 역사서는 조선왕조실록이다.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역사는 우리 사관들이 썼고 고종과 순종은 일본 총독부가 기록했기 때문에 실록으로

안 친다.

약 5,300만자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 최대의 역사 기록물은 승정원 일기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승정원 일기는 전란통에 광해군 이전의 것은 불타고 없다.

 

세계에서 가장 탁월하고 과학적인 문자는 한글이다.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 함대 사령관이었던 로즈 제독은 강화도를 습격하고 외규장가 도서를 약탈해 갔다.

그의 부하였던 주베르라는 해군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곳에서 감탄할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 해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성리학이 정치 이념이었기 때문에 건물을 크게 짓고 으시대는 그런 외향적인 문화보다는 내면을

단속하고 욕심을 줄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조선의 궁궐이 중국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경복궁의 크기도 그리 작은 것은 아니다 자금성 크기의 4/7 정도 된다.

반면 고려는 불교가 국시였기 때문에 부처님 나라로 표상되는 절을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 외양이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으 많이 만들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조선의 향교에는 늘 은행나무가 있고 서원에는 배롱나무가 항상 있다. 이 나무는 예쁜 분홍색 백일홍이 피

나무인데 일명 해골나무라고도 한다.

이 나무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다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서원에 이 나무를 심은 이유는 이 나무처럼 마음 속을 투명하게 하여 겉과 속을 다르게 하지 말고 살라는

데 있다.

논어에 나오는 생각에 삿됨이 없게 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로 이 정신을 구현한 것이 배롱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금의 밥상이 12첩 반상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중국 황제는 밥의 종류만도 9가지를 먹었다고 하고 유럽의 귀족들은 아주 긴 식탁에 수많은 사람의 시중을

받아가면서 온갖 폼을 잡으면서 밥을 먹었다.

홍수나 천재지변이 나면 임금이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고 해서 반찬의 숫자를 줄였다.

 

승정원 일기는 3천 책이 좀 넘고 글자 수로 계산하면 2억 4천여만자가 된다. 세계 최대의 역사 기록물이다.

중국 욕대 왕조의 정사인 25사의 6배에 달한다. 조선왕조 실록보다 4배 많다.

임진왜란 이전 것은 다 소실됐고 이괄의 난 때 선조와 광해군 대의 일기도 소실된다.

인조 1년(1632년)부터 순종 융희 4년(1910년)까지의 288년간의 기록이 3,243책이다.

만일 조선초부터 다 남았다면 2배는 더 많은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간혹 이 일기를 종이로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러면  주서(승정원 일기 쓰는 사람들의 명칭이다.

실록은 사관들이 쓰고 일기는 주서들이 썼다.)들이 다른 기록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채워넣었다고 한다.

 

일기에 의하면 영조 40년 1월에 큰 천둥과 번개가 쳤습니다. 심상치 않게 생각한 조정은 조사해봤더니

양주에 권씨 성을 가진 어떤 여인이 강간을 당하고 피살된 사건이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영조는 자신의

부덕으로 생각하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이를 감선이라고 한다)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알파벳이라는 말은 페니키아어의 알레프와 베트의 합성어에서 만들어졌다.

 

수원화성은 복원된 성인데도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이유는 화성성역의궤가 워낙 정밀하고 빠짐없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원래 모양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궤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