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승효상의 건축에 관한 책 몇 달 전 우리 교회에서 건축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 우리 목사님이 젊은 시절 목회할 때 잘 알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건축은 한 마디로 그가 말한 '빈자의 미학'이다. 이 책을 통해 건축가가 미술 뿐만 아니라 인문학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대와 빈 공대에서 공부했고 김수근의 제자이기도 한 그는 공간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건축가로 보인다. 건축은 사는 사람에 의해 완성된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수도원과 달동네에 대한 이해가 깊고 위계적이고 인위적인 도시보다 자생적인 부락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우리 건축이 화려한 중국의 건축이나 인공미가 들어있고 지극히 절제된 일본 건축에 비해서 자연을 해치지 않고 거기에 순응하는 건축으로 말하는 그의 관점은 다른 글에서도 이미 많이 본 것이기도 하다. 여행이 건축이나 우리 삶에 가장 큰 가르침을 준다고 말하는 것 같다. 대학을 갈 것인지 Grand Tour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던 서양의 귀족들이 떠 오른다. 젊은 시절 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우리 시대의 인물인 것 같고 그로 인해 그런 저항이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의 신앙관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인문학적인 지식이 깊어서인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박노해의 시가 책 첫 머리에 나온다. 사람이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건축물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은 공감이 많이 간다. 우리 건축물 가운데 마당은 요즘 서양 건축가들이 화두로 삼고 있는 '불확정적 비움'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공간인 것 같다. 그에게 건축의 방향을 제시한 두 건물이 있다. 우리 종묘와 샌디에이고에 있는 소크 연구소다. 이 두 건물다 불확정적 비움을 최대한 잘 실천한 건물로 본다. 그가 추천한 아름다운 건물 혹은 인상적인 건물들을 들어보면 지금은 포장이 되어버린 달성 비슬산 아래 있는 유가사 진입로가 있다. 보이지 않는 절로 들어가는 이 길은 수행자들에게는 깊은 사색을 허락하는 길이겠지만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불편한 길이다.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는 폐사지이지만 공간을 유추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절로 보이는 모양이다. 담양 소쇄원의 자연과의 친화적인 건축도 그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공간으로 보이고 병산서원이 자연과 이루는 일체감은 아주 큰 감동을 준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기오헌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부석사가 소백산 줄기와 마주하는 아름다움은 나도 느꼈던 최순우 선생이 말한 아름다움을 같이 느끼는 것 같다. 선암사의 물확은 나는 몰라서 못 봤는데 이건 건축자의 눈이라기 보다는 인문학자나 미술가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인 것 같다. 제주의 물신주의적인 개발을 반대하면서 제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백 할아버지 한 무덤'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우리의 이념 전쟁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간 비참한 전쟁에 관해서도 말한다. 큰 사유는 형태가 없다는 大象無形은 大樂必易와 大禮必簡을 생각나게 한다.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수도사에 관한 관심도 보이고 독일 남부 하르부르크에 세워졌던 '사라지는 탑'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12m 높이의 탑이 1년에 2m씩 땅 속으로 가라앉게 설계해서 지금은 완전히 다 가라앉고 머리 부분만 지면에 남아있는 이 탑은 나치에 대항하여 일어서야 하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제작자의 말을 실천한 것이다. 처음에 12m 높이의 이 탑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쓰고 글들을 남겼지만 결국은 땅 속으로 사라지고 없어진다. 남은 것은 우리 뿐이라는 사실이 강력하게 그의 주장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