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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허백당 시집 성현 저 조순희 역 한국고전번역원 2017년 333쪽 2017.0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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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당 시집 성현 저 조순희 역 한국고전번역원 2017년 333쪽 2017.01.16

singingman 2023. 1. 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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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의 저자인 성현(1439~1504)의 시들 가운데 발췌해서 엮은 책.
그의 호는 허백당이라고도 하고 부휴자라고도 한다.
관학하 관료로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할 정도로 당대의 문풍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다.
문학에 능할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능했고 성종 때 악학궤범을 편찬 주도하기도 했다.
그의 형 성임도 음악에 능해서 악학도감 제조를 겸임한 것으로 보아 그의 집안이 다들 음악에도 능했다.
용재는 자신이 거문고에도 능했고 기예와 복서등에도 밝았다.
그는 현실인식이 뚜렷한 진보적인 관료였다고 한다.
그의 시에는 15,16세기로 접어들면서 중세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는 평생 당뇨병으로 고생하였으며 노년에는 중풍을 앓았다.
명문가의 자제로 유벅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외모는 유난히 못났고 몸에는 이가 많아 그가 보던 책 속에는
말라 비틀어진 이가 눌린 채 끼어 있었다고 한다. 슬은 잘 못 마셨으나 달 밝은 밤이면 머리를 풀어 헤친 채
거문고를 타며 음악에 심취하고 했다.
또 산수를 좋아하여 명승지라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승정원에 재직하다 함께 파직된 채수와 같이 신분을 숨긴 채 허름한 선비 복장으로 금강산 일대를 마음껏
유람하였던 일화는 후대까지 널리 회자되었다고 한다.
많은 시를 지었으나 이 책에 다 싣지는 못하고 일부를 뽑아서 실었다.
그 중 내게 인상적인 몇 편을 옮긴다.

사회(寫懷) - 가을날의 회포

전원에 가을 깊어 초목이 지니
천지간에 바람 따라 날리는 낙엽
팔랑팔랑 먼 물가에 몸을 던지고
휘날려 골짜기를 감싸는구나
둥지에서 나온 새는 외롭게 날고
이웃집 개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담장 옆의 차가운 나무 사이에
환히 뜬 달이 유독 사랑스럽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어도
두렵기가 열 사람이 보는 듯하니
벼슬이 높아져도 비방 두렵고
소탈하여 청렴함을 편히 여기네
토란 잎을 삶아서 쌈을 싸 먹고
순무 뿌리 씻어서 김치 담그니
작은 배 채우기가 어렵지 않아
많은 돈을 욕심낼 필요가 없네

부귀영화 누리고 싶긴 하지만
병든 몸이 피곤함을 감당 못 하네
배를 삶아 한밤중의 갈증 달래고
밤을 구워 아침나절 허기 채우네
아녀자의 손을 빌려 머리를 빗고
아이 불러 눈물 콧물 닦으라 하니
늙어 가며 실수가 많아지므로
놀림받는 것쯤은 두려워 않네

윗 시는 1497년 작품으로 노년에 삶을 관조하는 시다. 전체 5수 중에서 1,4,5 수만 뽑았다.

오경가

초경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며
빈방에서 잠 못 들고 나 홀로 앉았어라
이제는 영원토록 다시 만날 길이 없고
베개 옆에 등불만이 밤을 함께 하는구나

이경에 창밖에는 달이 점점 높이 뜨고
뜰에 선 소나무엔 파도 같은 바람 소리
이승과 저승 사이 이별 못내 아쉬워서
가슴 속에 오만 가지 시름만이 가득하네

삼경에 구름 걷힌 하늘에 달이 밝고
고요한 밤 흐느끼듯 떨어지는 샘물 소리
이 몸은 한가하게 편히 앉아 있건마는
외로운 혼 누구 곁을 떠돌면서 눈물짓나

사경에 외로운 달 서편으로 기우니
숲 그림자 삐죽비죽 문을 반쯤 덮었어라
옷은 솜이 너덜대고 이가 득실거리는데
남은 인생 고된 삶을 누구와 논할 건가

오경에 달이 지고 시끄럽게 닭이 우니
아침밥 재촉하여 술 한 사발 곁들이네
빈소에서 두 아이가 가슴 치며 곡하는데
당신은 이 소리를 기억하고 있을는지

1498년 부인 한산 이씨의 상을 당하고 지은 시.1482년 강희맹이 부인을 잃고 오경가를 지었는데 성현도
부인을 사별하고 같은 제목으로 이 시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