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노래하는 사람

순암집 안정복 저 이상하 역 한국고전번역원 2107년 338쪽 1/15 본문

독서

순암집 안정복 저 이상하 역 한국고전번역원 2107년 338쪽 1/15

singingman 2023. 1. 21. 14:01
728x90

순암 안정복의 글들과 그에 관한 글들을 모은 책
주자 - 퇴계 이황 - 성호 이익 - 순암 안정복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만큼 조선의 유학에 정통한 학자로 보는
시각이 있다.
유학자들을 비교한다면 그는 당시에 이미 조선에 번져가던 서양의 학문과 종교로 알려진 천주학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었고 천주교를 반박하는 글도 많이 썼다.
성호의 제자들 중 서학에 경도했다가 천주교를 박해할 때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혹자들은 성호가 천주교 신부인 마테오 리치를 성인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 성호도 천주교를 인정한
것이 아니냐고 할 때 순암은 마테오 리치를 성인이라고 부른 것은 공자나 요순을 부를 때 사용하는
성인이라는 호칭과는 달리 그냥 좀 뛰어난 사람을 우리가 성인이라고 치켜 세울 때 부르는 정도에서 호칭한
것이라고 변론한다.
성호가 활달하고 좀 진보적인 성향이라면 순암은 아주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동사강목이 널리 알려져 있고 일생 성호를 4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편지로 그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성호를 그의 스승으로 모셨다.

순암은 정조가 어릴 때 세자 시강원 강사를 지낸 적이 있었는데 십수년이 지난 후 정조를 만났을 때 정조가
그를 잊지 않고 쇠하지 않았다고
말해 준 것에 감격해서 불쇠옹이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하고 집 이름을 불쇠헌이라고 쓰기도 했다.
집을 짓고 그 이름을 순암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을 이렇게 풀었다.
암(菴)은 풀草가 제일 위에 있는데 이는 띠풀로 지불을 덮은 것이고 다음 한 一자는 가로지른 대들보이고
사람人은 서까래를 나타내고 전电은 기둥 하나를 세워 4칸을 만든 것인데 기둥이 둘이면 여섯칸이 되고
셋이면 8칸이 되어 용도가 더욱 넓어진다고 했다. 동북 지방 산골 백성들은 모두 이런 집을 짓습니다라고 했다.
順은 자기의 자 百順에서 순을 따 와서 순암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
천주교를 비판하면서 내세를 말하는 것이 불교와 같다고 말한다.
우리 고유 사상에 나타나는 상제와 하나님을 비교해서 같은 점과 다른 점들을 들어 이야기 한다.
자기는 도연명과 제갈공명을 존경한다고 했다. 물론 공자나 맹자를 가장 존경하지만...
국경에 나무를 심어 자연 목책을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하고 우리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역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하면서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당시의 안타까운 사실도 말한다.
중국과 우리의 국경이 불확실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