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손 이석 씨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단편적인 소문과 글들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체계적인 지식과 정보를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앞에 읽은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가 쓴 대한제국 황실비사에서도 대한제국 말기의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지만 황실의 후손들에 관한 정보는 이 책을 통해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고종은 많은 자녀를 두었지만 유아 사망이 많아서 장성한 자녀는 3남 1녀 뿐이었다. 그나마 순종은 왕통은 이었지만 대를 잇지 못하였고 영친왕은 일본으로 가서 이진과 이구 두아들을 두기는 했으나 맏아들 이진은 태어난지 8개월만에 고국에 돌아와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구는 미국으로 유학가서 쥴리아라는 서양 여성과 결혼하고 우리 나라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의친왕은 공식적으로는 12남 9녀를 두었지만 그의 행적으로 보아 정확한 숫자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의 자녀라는 사람들이 그 후에도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영친왕 이은은 어린 나이에 황세자가 되긴 하지만 일본으로 끌려가 군인이 되었고 황족의 대우를 받으면서 육군 중장까지 진급한다. 하지만 이방자와의 혼인 때문에 조선 사람들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1926년 순종의 서거 후에는 왕통의 법적 후계자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이 전쟁에 패한 후 건강이 나빠지고 나서야 말년에 의식도 불분명한 상태로 귀국한다. 아들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자 미국도 오가기는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이 라이벌로 인식해서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영친왕비 이방자는 일본 황족으로 교육을 받아서 남편을 잘 섬긴 왕비로 보인다. 하지만 두 조국 사이에서 말년에는 역시 어려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영친왕의 아들 이구는 미국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쥴리아라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과 결혼해서 초기에는 행복하게 살았지만 말년에는 일본 무당 여자인 아리타 기누코라는 여자에게 홀려서 결국 쥴리아와 이혼까지 하고 이 여자와 살게 된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말년에 얻은 귀하고 총명한 딸이었으나 역시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일본에 끌려가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마도 출신의 귀족과 결혼하긴 하지만 여러 설들에 의하면 그리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말년에 낙선재로 돌아와서 살다가 평생을 마친다. 의친왕 이강은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사람이다.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만주로 탈출하려다가 일경에 붙잡혀서 좌절되고 특히 여자와 술에 빠져서 평이 매우 안 좋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왕족 집안에 아주 많은 후손을 남겨 주었다. 그의 두 아들 이건과 이우는 일본 황족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이건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서 조선을 싫어했고 일본인이 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건이 일본인의 피를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가지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둘때 아들 이우는 대원군의 다른 아들에게 양자로 들어가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고 잘 생긴 외모 덕에 당시에는 굉장한 인기를 얻었지만 육군 장교로 근무하다 히로시마 원폭 때 피폭되어 숨진다. 말을 타고 가다가 원폭을 맞고 물로 뛰어 들었다는 사람이 바로 이우 전하였다. 그의 부관인 육군 중좌 요시나리 히로시는 이우의 인품을 흠모하여 그가 죽자 병원 잔디밭에서 "일본도로 배를 가르고 권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쏘아 섬기던 상관의 뒤를 따르는 장렬한 죽음을 택했다." 영친왕 이은의 약혼녀였던 민갑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도 나온다. 일제에 의해 사랑을 빼앗기고 중국을 떠돌았던 비운의 여인이다. 일제는 자기들의 뜻에 맞지 않으면 온갖 공작을 다해서 뜻을 이루었다. 고종과 순종의 죽음을 당시 사람들은 일본의 독살로 본 듯하다. 영친왕의 맏아들 이진의 죽음은 영친왕이 일본 여자와 결혼한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소행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