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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향교 19-01-02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남원 향교 19-01-02

singingman 2023. 2. 2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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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을 가진 남원 향교를 성수네, 문목네와 함께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1410년(태종 1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부(府)의 서쪽인 대곡산(大谷山) 기슭에 창건하였다.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의 침해가 있는 까닭에 1428년 부의 동쪽 덕음봉(德蔭峰) 밑으로 이건하였다가, 홍수 때 길이 막히는 일이 많아 1443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 1599년에 진사 유인옥(柳仁沃)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건하였고, 1609년 감사 윤안성(尹安性)과 부사 성안의(成安義)의 찬조로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748년에 진사 한동섭(韓東攝)이 동재·서재를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하여오다가, 1876년에 화재로 명륜당과 서적이 유실되었으며, 그 뒤 부사 오달선(吳達善) 등 유림이 협력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892년에는 부사 민종렬(閔鍾烈)이 대성전 등을 수리하는 등 계속적인 보수를 하여왔으며, 1982년에는 국가보조금으로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성전과 동무(3칸)·서무(3칸)·명륜당(5칸)·동재(5칸)·서재(3칸)·신문(神門, 3칸)·고직사(庫直舍, 6칸)·진강루(振綱樓, 6칸)·외문(外門, 3칸) 등이 있다.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대성전은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되어 있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의 높은 곳에 대성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7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유림들이 위성계(衛聖稧)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소장전적은 253종 821책으로 전라북도 향교 중 가장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이 중 필사본인 《향안 鄕案》·《완의 完議》·《청금록 靑衿錄》 및 절목류들은 지방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다른 향교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크다.
내삼문은 잠겨 있어서 대성전은 들어가지 못했다.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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