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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이 안나 울란바타르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2005년 327쪽 2/27~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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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이 안나 울란바타르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2005년 327쪽 2/27~3/4

singingman 2023. 2. 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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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생활상을 자세히 소개한 책.

몽골은 기본적으로 유목국가이다.

무속이 널리 행해져서 무당이 힘을 가지고 있고 불교가 전파되면서 무속과 함께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나라의 7배 크기에 인구는 2002년 통계에 의하면 2,500,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도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나라에 약 200,000명 정도가 와 있다고 하니 넓은 땅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수도인 울란바타르 주변에 다 모여 사니 그 외 지역은 황량할 수 밖에 없다.

주변에 바다가 없는 대신 담수가 많고 평균 해발 고도가 1,587m이니 상당히 높은 지대에 살고 있다.

큰강과 큰 호수들이 있다.

헙스굴 호수가 대표적이며 지형은 서고 동저로 우리 나라와 반대다.

서부는 산악지대, 동부는 초원지대, 남부의 고비 반사막지대로 크게 구분된다.

초원 지대가 국토의 약 70%를 차지한다.

여러 부족이 모여 살며 할하 부족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카자흐, 더르워드, 바야드, 부랴트 등의 부족들이 있다.

 

순록을 키우며 사는 차아탕 족이 북쪽 수림지역에 있고 지하자원이 풍부해 세계 10대 자원부국으로 불린다.

광산업과 목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울란바타르 지역에는 버그드 항 이라는 산이 있다.

대암 이태준이라는 의사가 일제 강점기에 가서 몽골인들에게 인술을 베풀어 버그드 산 자락에 이태준을 기리는 공원이 있을 정도다.

그는 1911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당시 몽굴에 만연해있던 성병과 여

러가지 질병들을 고쳐주었고 마지막 황제였던 제8대 버그드의 주치의로도 일했다.

 

기후는 평균 강수량이 230mm밖에 되지 않고 6-9월 사이에 90%의 비가 내린다.

그나마 남쪽 고비 사막쪽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은 여름에는 한달정도 휴가를 보내며 이때는 고기 보다는 유제품을 주로 먹는다.

건조해서 도시에서는 정전기가 많이 발생해서 악수하다가 정전기 때문에 놀라는 일도 종종 있다.

 

초원을 따라 계절별로 이동하며 유목민답게 손님 대접을 중시한다.  

낙타, 말, 소 양, 염소가 5축이다.

양의 숫자가 가장 많다.

말의 나이를 나타내는 이름만도 54가지나 된다.

말은 가장 중요한 가축이며 사람의 친구이기도 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우리 막걸리 맛과 비슷한 마유주는 이들의 중요한 음료이기도 하다.

마두금은 암줄과 수줄 두 줄로 이루어져 있으며 360가닥의 말총으로 만든다.

마두금에 관한 전설이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악기다.

날개 달린 말인 저능하르라는 말과 이 말을 타고 다니는 허허남어질이라는 남자가 한 지방의 공주와 사귀고 있었는데 못된 여자가 시기해서 이 말을 죽이자 이 말 머리 모양을 새긴 악기를 만들었고 이 악기의 이름이 머링호오르(마두금)이다.

 

사냥은 군사 훈련이기도 하고 생계의 한 수단이기도 했다.

직접 사람이 하는 방법과 독수리나 매를 이용하기도 했다.

늑대사냥 후에는 가죽을 벗겨서 8부분으로 나누어서 벽에 걸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몽골에는 금기가 어마무시하게 많다.

우리가 60년대에 행하던 여러가지 미신적인 관습들이 몽골과 유사한 것이 많이 있다.

고수레도 있고 무당도 비슷한 것이 많다.

음력 1월 ㅣ일을 차강사르라고 하며 그 전날을 비퉁이라 하는데 이 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 만두와 비슷한 음식을 많이 먹고 양고기를 많이 먹는다.

나담 축제가 혁명 기념일인 7/11~12일까지 국가적 행사로 열린다.

말달리기, 씨름, 활쏘기의 3종이 중요한 경기다.

 

게르는 천정에 있는 환기구를 중심으로 우리 서까래 같은 나무를 꽂아서 만든다.

나무, 덮개, 조임끈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르의 크기는 한이라고 하는 벽체의 수로 나타내는데 15한은 150개의 천정받침나무가 들어가는 것으로 큰 게르이다. 이것은 왕이나 귀족들이 주로 살았다.

평균적인 게르는 5한으로 평균 5명 정도가 살 수 있다.

 

집을 방문할 때 우리 옛날의 '이리 오너라'에 해당하는 말로 '개 붙잡으세요.'라는 말을 사용한다.

모자는 항상 반듯하게 쓰는 것이 좋다.

게르 가운데 있는 화로를 중시해서 가문을 잇는 표현으로 사용할 정도다.

 

아기가 태어난지 6~7일 후에 아기를 씻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 때 주변 사람들을 초청한다.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을 짓기도 한다.

어린애에게 예쁘다, 귀엽다등의 말을 드러내 놓고 하지 않는다.

 

결혼 예물로는 할하족의 경우 대략 양 25마리, 말 2마리, 낙타 5마리 정도이고 가난한 집의 경우는 양 2맘리, 낙타 1마리정도를 보낸다.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갈 떼 남성의 상징이기도한 활과 화살을 준비해 간다.

 

장례는 원래 풍장이었지만 지금은 넓은 땅이어서인지 매장이 주를 이룬다.

 

전통의상은  풍부한 가죽과 추위 때문에짐승 가죽을 많이 사용하고 크게 만들어 입는다.

추위 때문에 모자를 중시해서 모자를 좋은 모자를 살 때는 돈을 아끼지 않을 정도다.

신발도 가죽을 많이 사용하며 우리 구두라는 말이 몽골어의 고드, 혹은 고탈에서 왔다고 생각된다.

 

종교는 자연물 신앙과 무속, 그리고 티벳 불교가 큰 영향을 미쳤다.

늑대와 개 토템이 있고 사슴과 백조도 토템으로 사용했다.

불을 숭상했다.

 

무속이 크게 성행해서 징키스칸도 다른 종교를 포용하기는 했지만 무속인들을 전쟁시에도 데리고 다닐 정도였다.

무당들은 대부분 강습무들이다.

 

우리 서낭당과 비슷한 돌무더기인 어워가 곳곳에 많이 있다.

 

티벳 불교가 들어와서 한 때는 국가로부터 보호도 받고 널리 퍼져서 지금도 몽골의 국교다.

승려들이 큰 권력을 잡은 적도 있고 무당들이나 다른 종교인들과 경쟁했던 시기도 있었다.

만주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도 있었고 불교의 종파인 홍교와 황교가 경쟁하기도 했다. 홍교 황교는 승려들이 쓰고 있던 모자 색깔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에르덴 조 사원 앞 산에는 남자 성기 모양의 자연석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몽골 문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몽골 비칙, 사각 문자인 더르벌찡 비칙, 만주가 점령하려고 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터드 비칙, 서염보가 만든 서염보 비칙, 헤브테 더러벌찡 비칙, 와깅드라 비칙 등이 있다.

이 비칙이  러시아 문자인 키릴 문자로 바뀐데는 정권의 일방적인 결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체로 이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만주 문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