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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19-05-12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경교장 19-05-12

singingman 2023. 2. 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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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식 권사가 강북 삼성 병원에 폐암 수술치료차 입원해서 병문안 간 길에 들렀다.

전 대통령 이승만이 거주했던 이화장과 함께 우리 나라 초기 지도자의 중요한 거처였기 때문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경교장은

 

경교장은 광화문 서대문 사이에 있던 동양극장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서대문역 인근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부지이다. 금광으로 돈을 번 친일파 최창학 소유의 별장이었던 이 집은 건축면적 396.69m2, 연면적 945.45m2(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은 일본식 건물로, 1938년 완공 당시에는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다. 8·15 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 건물 뒷면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본관을

붙여 건축하면서 오랜 기간 병원 현관으로 사용되었다.

당초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나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동 건물의

중요성 등이 재평가되면서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을 삼성에서 김구 기념실로 운영하기도 했다.

2009년 8월 14일에는 60년 만에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하여, 건물 내에 있던 병원 시설들을 모두

옮기고 2011년 3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3년 3월 1일 개관하였다. 

 

 

 

성균관 의대 강북 삼성병원 안에 있다.

 

경교장 입구

 

 

 

 

 

 

 

 

 

 

 

 

 

 

 

 

 

 

 

 

 

 

 

 

 

 

 

 

 

 

 

 

 

 

 

 

탁자가 있는 방은 침실이 아니고 집무실이다.아래 사진에 보이는 탁자 앞 다다미 방이 침실이다.

 

 

 

 

 

 

 

 

 

 

 

 

 

 

 

 

 

 

 

 

현재 건물에 이 유리창이 그대로 있다.

 

 

임시 정부 요인 숙소도 다다미방이다.

 

 

 

 

 

 

 

응접실이 1층과 2층에 각각 1개씩 있다.

 

 

 

벽난로였을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 시는 서산대사의 시로 알려져 있다.

 

아래는 조선시대 이양연(1771~1853)의 시.

 

천설야중거(穿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조아행적(今朝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출처: https://dmedu.tistory.com/71 [대명학원]

 

글자 2개만 다르다. 시대로 봐서는 이양연이 서산대사를 복사했다고 봐야하지만

 

踏 --> 穿
日 --> 朝

두글자만 다르다.
두글자가 바뀐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전당시를 봐도 바뀐글자가 엄청 많다.
외워서 전해지던것을 문자로 기록하면서 바뀐것이 아닐런지...


이 시는 조선시대 임연당(臨淵堂) 이양연의 작품이다.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실려있지 않고,
이양연의 시집인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있고,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올라 있어,
이양연(李亮淵·1771~1853)의 작품으로 보는것이 옳은것 같다.
[2013. 2. 19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안대회 교수의 글 중에서]


'대동시선(大東詩選) 1918년 장지연(張志淵)이 편찬한 역대 한시선집(漢詩選集) 12권.
고조선에서부터 한말까지 2천여인의 각체시(各體詩)를 선집하여 만든 것으로 한시선집 중에서
가장 방대하다. 신문관(新文館)에서 신활자로 출판되었다.

 

 

 

 

 

 

 

 

 

 

 

 

 

 

 

 

 

 

 

 

 

 

 

 

 

 

 

 

 

 

 

 

 

 

 

 

 

 

 

 

 

 

 

 

 

김구 선생님은 일찍부터 문화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 시대로 봐서는 총칼의 힘을 더 역설했어야 할 것 같은데 뛰어난 사람들은 역시 다르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도 우리같은 범인들은 그 깊은 뜻을 모르니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