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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연미정 20-10-03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강화도 연미정 20-10-03

singingman 2023. 4. 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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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1코스에 연미정이 있다.
그래서 가게 되었다.
 
연미정은  다음 백과에 의하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연미정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며, 1244년(고종 31)에 시랑 이종주(李宗胄)에게 명하여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이곳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여름철에 50일 동안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일)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방어사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정자를 하사하였으며, 현재도 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이곳은 민간인통제구역 이북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현재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이 정자에서 강화도로 피난했던 조선 조정과 후금 대표 사이에 강화 협상이 이루어졌다. 이후 후금은 강화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파하고 1636년 병자호란 때는 강화도로 이어지는 길목을 차단하여 조선 조정을 곤경에 빠뜨렸다.
 
 

 
 
 

월곶 돈대 안에 연미정이 있다.

 
 

황형의 사당인 장무사는 다른 곳에 있다. 오늘 알바를 장무사까지 하고 왔다.

 
 

 황사영 백서의 주인공인 황사영이 그의 12대손이라고 한다.
 
 

연미정 아래 이 조해루가 있다.

 
 

 
 
 

 
 
 

 
 
 

해파랑길에 있는 망해루가 생각난다.

 
 

 
 
 

 
 
 

 
 
 

 
 
 

 
 
 

 
 
 

 
 
 

연미정 반대편에 있던 나무는 태풍 링링 때 쓰러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