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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정발산 평심루 2020-12-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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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이란 국어 사전에 의하면 '감정의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설명을 보면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안한 마음'을 평정심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복없고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항상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음이라는 것이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관장하고 그 결과에 영향을 받아서 우리는 희비를 겪게 된다.
마음을 다스리는 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종교가 다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고 한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는 말을 영어성경 niv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마음이 생명의 샘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음을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에 흔들림없이 평온하게 유지하는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는 마음을 평정하지 못해서 번뇌하고 걱정에 사로잡히고 분노한다.
불교에서는 이 번뇌의 근본 원인을 탐진치(貪瞋癡)라고 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번뇌의 근본원인이다.
이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불가에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한다.
행복도 사실은 마음의 작용이다.
흔히 행복을 수학적인 공식으로 표현할 때 '가진 것/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분모인 원하는 것이 마음에서 시작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분모인 '원하는 것'을 적게 가지면 상대적으로 분자인 '가진 것'이 적어도 행복의 수치는 올라갈 수 있다.
옛 성현들이 욕심을 비우라고 하거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평정심은 또 다른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도 보인다.
순리에 따라 욕심부리지 않고 환경에 순응하면 마음 편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된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했을 때 햇빛을 가리지 말아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했다.
큰 욕심을 가지지 않으면 큰 좌절이나 큰 불행도 적을 수 밖에 없다.
지나친 욕심을 가지면 그것을 성취했을 때의 기쁨도 크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
또 실패했을 때의 상처와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적절한 정도의 원함과 그것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 마음이 그 적절함을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가질수록 점점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원함과 소유가 어려워진다.
이 자연스러움을 도가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함축적인 말로 표현한다.
물은 온도에 따라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막히면 기다리고 주변지형에 따라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큰 물을 만나면 그 물의 일부가 되고 통과할 수 없는 높은 바위나 산을 만나면 불평없이 휘돌아간다.
우리가 억지로 무엇을 하려거나 불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훈련 방법 가운데 하나가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걷기에 몰입해 본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걷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고 자신을 성찰할 수도 있다.
단순한 걷기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조용히 선방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걷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불가의 만행(萬行)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명상과 사유를 하는 방법이다.
자연히 걷기도 거기에 포함된다.
마음을 평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참 많은 노력을 한다.
일산 정발산에 있는 평심루(平心樓)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또 다른 설명을 보면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안한 마음'을 평정심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복없고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항상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음이라는 것이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관장하고 그 결과에 영향을 받아서 우리는 희비를 겪게 된다.
마음을 다스리는 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종교가 다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고 한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는 말을 영어성경 niv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마음이 생명의 샘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음을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에 흔들림없이 평온하게 유지하는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는 마음을 평정하지 못해서 번뇌하고 걱정에 사로잡히고 분노한다.
불교에서는 이 번뇌의 근본 원인을 탐진치(貪瞋癡)라고 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번뇌의 근본원인이다.
이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불가에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한다.
행복도 사실은 마음의 작용이다.
흔히 행복을 수학적인 공식으로 표현할 때 '가진 것/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분모인 원하는 것이 마음에서 시작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분모인 '원하는 것'을 적게 가지면 상대적으로 분자인 '가진 것'이 적어도 행복의 수치는 올라갈 수 있다.
옛 성현들이 욕심을 비우라고 하거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평정심은 또 다른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도 보인다.
순리에 따라 욕심부리지 않고 환경에 순응하면 마음 편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된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했을 때 햇빛을 가리지 말아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했다.
큰 욕심을 가지지 않으면 큰 좌절이나 큰 불행도 적을 수 밖에 없다.
지나친 욕심을 가지면 그것을 성취했을 때의 기쁨도 크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
또 실패했을 때의 상처와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적절한 정도의 원함과 그것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 마음이 그 적절함을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가질수록 점점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원함과 소유가 어려워진다.
이 자연스러움을 도가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함축적인 말로 표현한다.
물은 온도에 따라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막히면 기다리고 주변지형에 따라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큰 물을 만나면 그 물의 일부가 되고 통과할 수 없는 높은 바위나 산을 만나면 불평없이 휘돌아간다.
우리가 억지로 무엇을 하려거나 불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훈련 방법 가운데 하나가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걷기에 몰입해 본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걷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고 자신을 성찰할 수도 있다.
단순한 걷기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조용히 선방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걷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불가의 만행(萬行)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명상과 사유를 하는 방법이다.
자연히 걷기도 거기에 포함된다.
마음을 평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참 많은 노력을 한다.
일산 정발산에 있는 평심루(平心樓)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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