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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갈등의 시대 유봉학 신구문화사 2009년 254/303 쪽~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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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갈등의 시대 유봉학 신구문화사 2009년 254/303 쪽~1/7

singingman 2023. 4. 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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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19세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조시대를 설명하면서 즉지헌 유언호 재상, 척재 이서구, 추사 김정희를 함께 다루었다.
이서구와 남공필은 같은 문하에서 함께 배운 친구 사이이고 남공필이 비문도 써 준 사이지만 마지막에는 남공필이 이서구를 몰아내시 결국 죽는다.
그래서 후손들이 비문도 땅에 파 묻었다가 후에 다시 발견되었다.
탕평군주인 정조는 영조의 뒤를 이어 사림정치를 펴고 우현좌척론과 의리탕평론을 펼쳤다.
말년에는 이런 원칙을 스스로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되있고 외척세력이 정권을 잡게 된다.
이런 현상은 그 후 순조와 헌조 그리고 철종 마지막 고종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결국 조선은 그 수명을 다 하게 된다.
외척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그 폐해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정조의 18세기는 청나라의 문물이 강력하게 밀려왔고 서학도 서민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서 주자학이 대세이던 조선에 변화를 요구하던 시대였다.
초창기의 정조는 변화에 비교적 잘 적응했고 수원화성 신도시를 건설하는 등 왕권의 강화에도 힘을 썼지만 마지막에 외척이 되는 김조순에게 권력을 사사로이 넘겨줌으로 신하들과도 마찰을 빚는다.
학자이며 군주인 정조는 규장각에 신분을 초월한 인재들을 모았고 초계문신들은 그의 정치를 잘 보좌했다.
시파와 벽파 노론과 소론, 남인 등이 고루 정치에 참여했다.
정조시대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정조시대에는 그의 주장에 동조했던 시파들이 아무래도 힘을 많이 얻었고 그의 사후에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와 손잡은 벽파가 시파를 몰아내고 6년간 권력을 얻는다.
하지만 정순 왕후가 죽고 사도세자의 처가와 순조의 처가 세력인 김조순이 다시 힘을 얻고 벽파를 몰아낸다.
천생오태사인 김조순 남공필 이만수 심상규 서영보가 순조시대에 실세였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 그리고 그 제자들이 조선 후기에 큰 역할을 한다.
문체반정, 서체반정, 악풍반정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남인들의 서학열풍을 벽파들이 비난했을 때 정조가 그들을 처벌하기보다 보호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원 화성 신도시는 정조가 1794년 10년 뒤인 1804년 갑자년에 순조가 성년이 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70세가 되었을 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거주할 목적으로 지었다.
10년 계획으로 시작했지만 다산이 만든 거중기와 표준화된 중국식 벽돌과 강제 부역이 아닌 임금노동자들을 사용해서 34개월 만에 완공했다. 이 기간 중 6개월은 극심한 흉년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장용영을 설치해서 군대도 육성하고 식량과 비용을 저축하려 했지만 정조가 1800년 6월 28일에 갑자기 앓다가 죽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