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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103코스 22.07.19 본문

트래킹/국내 트래킹

서해랑길 103코스 22.07.19

singingman 2023. 6. 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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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호 집사님과 둘이 가다.
아침 6시에 출발해서 7시쯤 창후항에 주차하고 7시 14분에 걷기 시작하다.
서해랑길 103코스의 목적지인 강화 평화 전망대 도착 시간은 11시 16분이었다.
전체 거리는 카카오 맵에 의하면 13.1km이고 간식 먹고 쉬는 시간 포함 4시간 2분 걸렸다.
창후항에서 출발하면 한동안 철책 따라 걷다가 포장도로도 한참 걷는다.
북한 개풍군이 바로 앞에 보인다.
교산 교회를 지나서 약 4km남짓 남겨둔 지점 부터는 성덕산과 별악봉을 걷는다.
나즈막한 야산이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날씨가 더워서 빨리 갈 수는 없었다.
평화 전망대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한번 갔던 것 같다.
전망대에서는 바다 건너 북한땅 개풍군이 육안으로도 잘 보이고 망원경으로 보면 아주 또렷이 보인다.
입장료 2,500원이고 지공선사는 무료.
전망대에서 창후항까지는 대중교통이 어려워서 택시 불러서 돌아오다.
강화택시는 너무 멀어서 오지 않겠다고 해서 전망대 매표소 직원 아주머니께 부탁했더니 개인 택시 아는 사람을 불러주었다.
요금은 16,000원 정도 나오는데 기사가 5,000원 더 달라고 해서 주었다.
국화리에 있는 대청마루라는 식당에서 육계장(9,000원)으로 이열치열하고 돌아오다.
솥밥도 함께 줘서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

 

창후항 주차장은 무료다

 

 

주차장 앞에 시작점이 있다.

 

조금만 가면 바로 무태 돈대가 나온다.

 

 

 

 

 

 

 

 

돈대에서 바라 본 교동도

 

 

 

 

 

 

돈대 내부

 

길가에 메꽃이 많이 피어 있다.

 

 

쑥부쟁이도 보이고

 

 

 

 

이런 안내 팻말이 간혹 있다.

 

 

달맞이꽃이 대낮인데도 잘 피어 있다.

 

 

지금은 나리의 계절이다.

 

어느 집 정원에 도라지가 피어있다.

 

 

능소화도 있고

 

 

황효원에 대해 찾아봤더니

 

그의 본관(관향)은 상주(尙州)이고 자(字)는 자영(子永)이며 아호(雅號)는 소원(少原)이고 시호(詩號)는 양평(襄平)이며 1414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고 경상도 상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경기도 용인에 다시 귀향하여 청소년기를 지냈다.

가계 배경[편집] 그의 6대조부 황석주(黃石柱)는 원 제국 간섭기 고려(元 帝國 干涉期 高麗) 시대에 상주국(上柱國)이라는 관직을 지낸 호족(豪族)이다.

아울러 그의 친조부 황을구(黃乙耉)는 고려(高麗) 시대 말기에 성균관 강독관(成均館 講讀官)을 지내었으며 고려(高麗) 멸망 이후에는 고려(高麗) 시대 말기의 찬성사(贊成事) 직위 전력자 안익(安翊), 고려(高麗) 시대 말기의 성균관 교수(成均館 敎授) 직위 전력자 강인(姜茵)과 함께 관직을 잃고 각자 낙향하여 야인 유자(野人 儒者) 신세를 지내고 있다가 조선(朝鮮) 시대 초기에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의 천거로 인하여 안익(安翊)·강인(姜茵)과 아울러 조선 조정에 중용되어 세자시강원 강독관(世子侍講院 講讀官)이라는 관직(官職)을 지내었다가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안익(安翊), 강인(姜茵)과 동반 퇴출되어 이후 경기도 용인에 낙향한 학행급 관료 직위자(學行級 官僚 職位者)이고 1414년 경기도 용인에서 황을구(黃乙耉)의 손자이며 황사간(黃士幹)의 아들로 출생한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 황사간(黃士幹)을 여의고 조부 황을구(黃乙耉)의 엄훈(嚴訓) 하에 자라며 경상도 상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내었다.

과거에 급제한 이후의 일생[편집] 그는 조선 세종대왕(朝鮮 世宗大王) 치세 시기였던 1441년에 28세의 나이로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를 하여 문종(文宗)·단종(端宗) 임금 시기에까지 중간급 말단 관직을 지내었다가 이후 세조(世祖) 때에는 공신(功臣)에 책록되었고 급기야는 공조판서(工曹判書)를 거쳐 의정부 좌찬성(議政府 左贊成)에까지 직위를 지낸 문관(文官)이며 예종(睿宗)·성종(成宗) 임금 치세 시기까지 압구정 한명회(狎鷗亭 韓明澮)의 간접적 비호를 받다가 1481년에 향년 68세로 하세하였다.

 

 

팻말을 놓쳐서 큰 길을 따라 오다가 여기 세븐 일레븐 지나서 원래의 길을 만났다.

 

 

포장도로를 1시간 이상 걷는다.

 

 

길가에 핀 루드베키아

 

 

불두화가 아직도 피어 있다.

 

 

낚시터에서 어떤 분이 세월을 낚고 있다.

 

 

분꽃

 

 

채송화와 패랭이

 

 

초등학교였던 건물이 학생이 없어지자 이렇게 서사 체험 학습장으로 변했겠지?

 

 

 

 

접시꽃

 

 

 

 

 

 

내가 좋아하는 자주 달개비

 

다알리아

 

 

강화 교산 교회가 산 아래 있다.

 

 

 

 

선상 세례 장면 재현 강화도 양반의 반대로 선교사가 입도하지 못하자 선상에서 세례를 받았고 그 후 기독교인들의 변화되고 헌신적인 삶을 보고 훈장과 다른 양반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급속도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교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127년 전 강화도에 복음이 전파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이 강화 첫 교회에 마련됐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농촌마을에 어울리는 고즈넉하고 아담한 교회.
이곳에는 드라마틱한 복음 전파의 역사가 있다.

1893년 제물포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이승환은 고향인 강화로 돌아와 노모를 전도했다.
그는 제물포교회에 부임한 조지 존스(한국명 조원시) 선교사에게 어머니의 세례를 요청했으나 이 지역 양반가문이 서양 선교사의 입성을 막았다. 결국 이승환은 밤중에 노모를 업고 바닷가로 나갔고, 이들 모자는 배 위에서 존스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 ‘선상(船上)세례’가 강화에 복음의 겨자씨가 떨어진 순간이었다.

이후 마을사람 몇몇이 이승환의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강화교산교회의 시작이다.

이 신앙공동체는 처음에 존스 선교사를 못 들어오도록 막았던 서당 훈장 김상임이 회심(回心)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김상임은 외국인 선교사의 사려 깊은 행동과 교인들의 변화에 감복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김상임이 개종했다는 소식에 분개한 동료 훈장 박능일은 이를 따지러 갔다가 김상임을 통해 복음을 전해 듣고 1896년 강화의 두 번째 교회인 홍의교회를 세웠다.
복음의 씨앗은 이런 식으로 강화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892년 제물포교회에 부임한 존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강화를 찾아 왔으나, 입성을 거부 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데, 제물포에서 주막집을 운영하던 이승환이 복음을 받아 들인 후 주막을 그만두고 고향인 강화 서사로 돌아 왔다.

그가 농사를 지으면서 늙으신 어머니를 전도하여 세례를 요청하자, 존스 선교사는 조선사람의 복장을 하고 은밀히 강화를 찾아 왔지만 다리목 마을의 김초시 양반가문에서 서영 오랑캐가 우리 땅을 밟으면 쫓아가서 그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반발하자 어머니를 배로 모셔 오도록 하였다.

이에 이승환은 어머니를 업고 들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갯벌을 지나 배로 갔다.

보름달이 환히 빛나는 밤에 존스 선교사는 달빛에 예문을 비추어 읽으며 배 위에서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것이 강화에 최초로 복음의 겨자씨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선상세례를 통해서 복음의 씨앗이 열매맺게 된 것이다.

 

 

강화도 최초의 강화 교산 교회

 

교산 교회는 1893년에 설립되었고 오른쪽 돌로 지은 교회는 지금은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898년

교항계삭회 조직. 본처 전도사로 김상임(2대),권사로 이승환 임명

 1896년

교항에 15칸 초가를 매입하여 예배처소 이전

 1894년

김상임 개종, 존스선교사에게 세례받음

 1893년

이승환 모자, 존스선교사에게 선상세례 받고 시루미 공동체 시작
전도인 이명숙 파송 (1대)

 1892년

존스선교사 복음전도 위해 강화 방문했으나 입성거부 당함.
이승환이 존스선교사에게 전도받고 고향인 강화로 돌아옴

 

 

http://gsch.co.kr/file/video01.mp4

 

 

 

 

 

 

 

 

 

 

서해랑길 103코스가 교산 교회 마당을 통과한다.

 

 

초롱꽃

 

 

종각의 줄로 보인다. 어릴 때 나도 이런 종을 교회에서 친 적이 있다.

 

 

지금은 종각에 스피커가 달려 있고 까치집이 있다.

 

 

 

 

부용화

 

 

 

 

교산교회를 지나 마을 입구를 지나면 성덕산으로 올라간다.

 

 

 

 

이런 산길을 한시간 넘게 걷는다.

 

 

 

 

전설을 좀 잘 만들지...

 

 

 

 

 

 

 

 

 

 

이 산 높이가 215m밖에 되지 않지만 더운 날씨여서 만만치 않았다.

 

 

성덕산 휴식터

 

 

 

 

 

 

 

 

 

 

 

 

계단을 보는 순간 놀라서 그 아래서 간식을 먹고 힘을 내어서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서니 이렇게 멋진 광경이 펼쳐진다.

 

 

 

 

 

 

 

 

별악봉에도 정자가 있다.

 

별악봉에서 본 풍경

 

 

 

북한이 이렇게 보인다.

 

 

조집사님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니 이 팻말이 보인다.

 

 

평화 전망대 올라가는 길

 

 

평화 전망대 주차장

 

 

여기서 매표하고 잠깐 더 올라가야 한다.

 

 

 

 

 

 

 

 

 

 

아버지 살아계실때 온 것 같다.

 

 

전망대 안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땅

 

 

 

 

 

내려오는 길에 본 무궁화 꽃송이가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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