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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노자의 설명 2022-09-06 본문

살아가는 이야기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노자의 설명 2022-09-06

singingman 2023. 6. 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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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무리를 가르치실 때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13:34)

천국의 비유나 포도주와 가죽부대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등 복음서에는 수많은 비유들이 있습니다.
왜 어떤 팩트를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고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무리가 교육 수준이 낮아서 이해를 못하니까 그랬을까요?
노자의 가르침으로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노자는 도덕경 제1장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가 가히 도라고 한다면 항상한 도가 아니며,
이름이 가히 이름이라면 항상한 이름이 아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어떤 특정한 대상을 무엇이라고 설명하면 그 대상은 오히려 그 설명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어떤 것은 설명해줌으로 쉽게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형이상학적이거나 우리의 인지 범위 너머에 있는 영적인 세계는 설명이 오히려 그 대상을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고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천국을 설명하실 때 여러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정의를 내려버리면 오히려 천국이 그 정의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로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유명한 탕자의 비유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값없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등의 직접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집 나간 아들을 문밖에 서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시는 것 같습니다.

노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지자불언 언자부지 (知者不言 言者不知)
아는 사람은 말하지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천국이나 하나님에 관해 직접직인 말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비유들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는 흔히 사랑과 공의로 정의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어떻게 이 두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장황한 설명을 해도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아닐까요?

불교에서는 이런 경우에 염화시중, 교외별전, 이심전심 등의 말을 사용하지요.
이런 경우에도 아마 완전한 설명이나 깨달음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비유도 이해하지 못해서 예수님께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있지요.
말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비유로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로 知者不言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