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 요한복음 3장에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유대 사회에서는 아주 상류층의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지식인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은 지금의 우리 나라로 말하자면 국회의원이고 미국으로 말하면 상원 의원의 권력을 가진 자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고위 공직자가 유대교에서 배척하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당시 그들의 세계에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 몰래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님에 관해서 대충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는 유대 율법에 정통한 지식인이었으니 그가 아는 율법과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에 있는 간극을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기묘한 장면이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시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3:2, 개역한글)"라고 말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의원으로서 사회의 중요한 사건들이나 움직임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예수님께서 유대인 사회에서 행하신 기적들이나 가르침들을 보고 어느 정도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밤에 찾아와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인지에 대해 질문하는데 예수님은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대답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거듭남에 관해 말합니다. 그랬더니 현실적이고 육의 사람인 니고데모는 이미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의 자궁에 다시 들어가서 태어날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또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성령이 어떻고 바람이 어떻고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에 관해 말합니다. 그랬더니 당시 최고의 권력과 학식을 가진 지식인 그룹인 니고데모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가 보기에도 상당히 감정적으로 하는 대답 같습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고 핀잔하는 것 같습니다.
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위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그 이후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혹은 예수님과 어떤 다른 이야기들을 더 했는지 이 장면에서는 더이상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45절에 보면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요7:45, 개역한글) 라고 할 때 니고데모가 아래와 같은 말로 예수님을 옹호하는 발언을 합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요7:51, 개역한글) 위 구절을 niv 영어 번역은 아래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Does our law condemn a man without first hearing him to find out what he has been doing?”(john-7-51)
그러니까 그의 말은 우리 율법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정죄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옹호합니다. 3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에 밤에 몰래 예수님을 만나러 오던 사람이 이렇게 대놓고 두둔할 정도로 변했습니다. 그랬더니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또 이렇게 니고데모를 비난합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요7:52, 개역한글)
위의 기록들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하니까 니고데모가 말하기를 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붙잡아 오면 안 된다고 예수님을 옹호하는 내용입니다. 니고데모는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나 자리를 생각한다면 이런 발언은 그의 출세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발언입니다.
또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요19:39, 개역한글) 위의 글은 여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례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같은 공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할 때 니고데모도 함께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주 값비싼 장례용품으로 당시 가격으로는 보통 사람들의 일년 년봉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향품과 함께 세마포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쌌습니다.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19:40, 개역한글)
이제 요한복음 3장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첫 대화로 돌아가 봅시다. 이 대화에서 두 사람은 계속 동문서답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7장과 19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의 행동을 보면 예수님에게 완전히 반한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행동을 합니다. 7장의 대화에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자 죄가 정해지지도 않은 사람을 체포할 수는 없다고 옹호하고 1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자 엄청난 거금을 들여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뭔가 큰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3장의 대화 후에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7장과 19장의 행간을 읽어보면(read between the lines) 3장의 대화 후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더 이상 기록은 없지만 예수님께서 거듭남이나 영생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을 하셨는지, 아니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행적을 자세히 조사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으로 부터 큰 감동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누구라도 예수님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완전히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꼭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권력과 부와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완전히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는 사도 바울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핍박하고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도 하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바울로 변했습니다. 바울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이어령 선생님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지성에서 영성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