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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입구~북문~원효봉~서암문~산성입구 25.12.09 본문

등산/북한산 국립공원

산성입구~북문~원효봉~서암문~산성입구 25.12.09

singingman 2025. 12. 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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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별로 춥지 않고 산에도 가고싶고 해서 오랫만에 원효봉을 가다.
원효봉은 산성 입구에서 산을 바라보면 왼편에 있는 첫 봉우리다.
오른편에는 의상봉이 있다.

생긴 모양에서부터 두 대사의 인품이나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
둥글고 원만한 의상봉과 날카롭고 가파른 의상봉은 파계한 원효와 학승 의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 코스는 산성입구에서 백운대 올라가는 길로 가다가 보리사 지나서 왼편에 있는 원효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효자비에서 자주 올라갔고 오늘 이 코스는 예수인 교회 시절에 윤집사님과 함께 올라간 후 20여년만에 올라간다.
이 코스는 끝없는 돌계단길이다.

산성입구에서 포장도로 따라 가다가 북한동 휴게소 지나서 대남문 가는 길과 백운대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계단길이 원효봉까지 계속된다.
서암문으로 내려오는 길도 돌계단이 아주 많다.
왕복에 3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원효봉 위는 고양이들이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



산성입구


오늘 올라갈 원효봉


계곡길과 포장도로 사이에 있는 자연관찰로로 올라간다.






자연관찰로여서 이런 안내판이 많다


사슴벌레

찢어진 강한 턱의 비밀

The secret of a stag beetle's large jaws 鍬形蟲之鋭裂顎, クワガタムシの大きい顎の秘密

사슴벌레가 큰 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사슴벌레의 큰 턱은 수컷에게만 있으며, 암컷의 턱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요. 힘껏 나면 암컷을 꼬실 때 큰 턱을 위로 치켜 올려 힘껏 구애합니다. 장수풍뎅이와 싸울 때도 사슴벌레는 큰 턱을 이용해 싸움에서 이기기도 한답니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주로 나무숲이나 나무 밑동의 흙 속에 숨고, 밤에 나와서 활동하는 모습입니다. 작지만 강한 사슴벌레 대단하죠?






 













여기 대서문 좀 못 미친 곳에서 포장도로와 만난다


대서문




대서문 (大西門)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1712년(숙종 38)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대서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과거 성내에 마을이 있었을 당시엔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했던 성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에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문루의 형식은 우진각지붕으로 문루의 일반적인 지붕 형태를 따르고 있다.

관영 건물이므로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를 강회로 마감하였다. 누각에 '북한산성 대서문 중수기'가 걸려 있어 중수 내력을 전해 준다.

문루의 배수시설로 용머리 모양의 누혈(漏穴:물이 흘러내리도록 구멍을 뚫은 돌)을 성문 앞뒤로 두었다. 성 밖을 바라보는 용은 입을 벌려 누혈의 구실을 제대로 하게 하였으나, 성문 안쪽에 있는 용은 입을 다물고 있어 장식용으로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문루 전면에는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한 장의 화강암으로 만든 점이 특징이다. 북한산성의 대문 6곳 모두에는 이런 독특한 형식의 여장이 올려져 있다.

이 대서문을 통과하여 중성문을 거쳐 대남문에 이르는 길은 북한산성의 주요 간선도로였는데, 이 대문 3곳을 맡아서 수비 · 관리하였던 군부대는 어영청 유영이었다.

Dae-seo-mun (Great West Gate)
Dae-seo-mun is the main gate of the Bukhansanseong and is located on the lowest spot among total 16 fortress gates. In 1712 King Sukjong (the 19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entered this fortress through the Dae-seo-mun, and when there was a village in the fortress, the village people used this gate for generations. The present gate tower was restored in 1958. The road from the Dae-seo-mun through Jung-seong-mun to the Dae-nam-mun was the main road of the Bukhansanseong. These gates had been guarded and superintended by the troops of Eo-young-choeong Yu-young.




대서문 천장








무량사


약사전


종각


대웅전


무량사 | Mu-ryang-sa
북한산성 입구인 대서문(大西門)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고종의 후궁인 순빈(淳嬪) 엄(嚴)씨와의 인연으로 사찰의 역사가 시작됐다. 순빈은 지금의 무량사 자리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藥師佛坐像)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 아들이 바로 영친왕 이은(李垠: 1897~1970)이다.

이런 이유로 이 절은 순빈의 원당이 되었으며 일반인에게는 백일기도를 올리면 소원을 들어주는 사찰로 알려졌다. 현재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는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하여 승병을 주둔시켰던 승영사찰은 아니지만, 1900년 전후에 제작된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어 경기도 전통사찰 1호로 지정되었다. 여기서 약사불이란 질병 치료, 수명 연장, 재앙 소멸 등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를 말하며, 산신탱화란 비단이나 종이 등에 산신의 모습을 그려 벽에 걸 수 있게 만든 그림을 뜻한다. 경내에 약수가 있어서 약수암(藥水庵)이라고도 불렸다.

The Mu-ryang-sa was built around 1900. It was not a military Buddhist temple where monk soldiers were stationed to guard the Bukhansanseong. It was designated as the No. 1 Traditional Temple in Gyeonggi-do because it houses the Yaksa-bul-jwa-sang and the San-shin-taeng-hwa.

[안내도 표기]

① 대웅전

② 약사전

③ 범종각

④ 석조미륵불

⑤ 요사채, 종무소




무량사 전경


백운대가 멋지게 보이는데 나무 때문에 사진에는 잘 안 나온다


북한동






새마을교




보리사




보리사 옆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여기서 왼편으로 가면 원효봉이다.




계곡을 건너고


상운사에서 설치했나?




안부가 보인다


북문




북문 지나서 내려가면 효자비로 간다.


북문도 원래는 문루도 있었다고...



1. 북문 (北門 | Buk-mun)
원효봉과 영취봉 사이의 해발 43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형태를 보이는 안부(鞍部) 지점에 자리한다. 주변에 상운사와 훈련도감 유영지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훈련도감 유영과 상운사에서 북문지역의 수비와 관리를 맡은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산성에는 대서문·대남문·대동문·대성문·중성문·북문 등의 6개의 대문이 있으며, 큰길은 '대서문-중성문-대남문·대성문'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였다. 대문 중 북문과 대동문은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있는데, 이는 한양 도성과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문으로서 북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던 것은 북문만이 '대(大)'자를 붙이지 않은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를 보면 북문에만 도로망이 연결돼 있지 않다.

성문은 석축기단 부분인 육축부(陸築部), 그 위에 올린 문루(門樓), 출입을 위한 개구부(開口部),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문짝 등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북문에는 문루와 문짝이 없는 상태로 육축부와 개구부만이 남아있다. 문루 자리에는 초석만이 있으며, 개구부에는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장군목을 건너질렀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

북한산성의 대문이 완성된 때는 1711년(숙종 37)인데, 30여 년 후에 간행된 『북한지』에는 북문의 문루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를 근거로 18세기 전기에 이미 문루가 없어졌으며,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Buk-mun (North Gate)

The Buk-mun is located at an altitude of 430m between the Won-hyo-bong Peak and the Young-chui-bong Peak. This gate was installed at the saddle-like area of the mountain ridge. The Sang-wun-sa and the Hun-ryeon-do-gam Yu-young-ji are located near by. Probably, the gate was guarded and supervised by the troops of the Hun-ryeon-do-gam Yu-young and the Sang-wun-sa. This gate was installed in 1711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하단 안내문: 정기계측) 이 구간의 성벽 일부에 발생된 이격, 균열 및 배부름현상에 대한 변화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일정기간동안 정기계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관람객께서는 계측기에 충격이 가해지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효봉 올라가는 길에 본 백운대~노적봉까지


산성이 무너진 것 같다.






이 위가 원효봉


다시 바라본 백운대의 위용




파노라마


고양이들이 원효봉을 점령하고 있다


 원효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2. 여장 (女墻 | Parapet)
여장은 성벽의 몸체 부분(체성[體城]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이다. 성가퀴 또는 살받이터라고도 한다. 적을 치키는 병사를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여장에는 세 개의 **총구(銃口)**를 뚫어 먼 곳과 가까운 성벽 아래에 있는 곳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비스듬히 뚫어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한 총안을 근총안이라고 하고, 수평으로 뚫어 멀리 있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한 총안을 원총안이라 한다.

북한산성의 여장은 적당히 다듬은 잡석을 사용하여 쌓았다. 이 점은 격돌로 쌓은 남한산성의 여장이나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한 화성의 여장과 차이를 보이는 축성법이다




워낙 멋져서 자꾸 찍게 된다


건너편 산 아래 있는 대불


내려가는 길




상장능선 너머로 도봉산이 이렇게 보인다




산 아래 세상


오봉




원효암






자국, 증장천왕, 사천왕이 홀대받고 있는 느낌


광목,다문






산신각


산신각 안의 산신


우물


이 안에 우물이 있다.


원효암]

Wonhyoam (Hermitage)

원효암은 북한산성 축조 당시인 1711년에 원효봉 아래에 지어졌으며, 신라 시대의 승려이자 십여 종파의 개조인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이름을 따 지었다. 1711년 북한산성 축조 당시 승병들이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성곽 축조에 참여하였다. 당시 승병들은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를 건립했는데, 이와 이외의 10여 개의 사찰도 있었다고 한다.

사찰: 보광사(현재: 보광사), 중흥사(현재: 중흥사), 상운사(현재: 상운사), 국녕사(현재: 국녕사), 상운사(현재: 상운사), 용암사, 보국사, 태고사, 진고사

암자: 원효암, 봉성암

원효대사는 7세기 경에 원효봉 일대에서 고행을 수행하였다. '원효봉 일몰'은 북한산의 빼어난 경관 8가지 중 하나로 꼽힌다. 원효암은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며, 일교정각에서 우측으로 난 작은 숲길로 5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다.


멋진 소나무


산성 성벽


서암문


[서암문 영역]

西巖門 領域

Seoammun Gate District

북한산성 성곽이 지나는 지점 중 서암문(시구문)은 성의 북서쪽에 있고, 수문과 대서문이 있으며, 위급 시에는 군수품 반입과 군사 수송이 이뤄지던 문이다. 이 지점은 산의 형세에 따라 성곽이 꺾이는 지점이며, 이 일대의 군사를 맡은 사람들은 장군사를 중심으로 한 서암사와 원효암이었다. 대서문 인근에는 서암문과 상운사 그리고 북문이 있다.

이 구역 안에는 원효봉과 영취봉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적의 공격에 취약한 산성 서쪽 지역과 성곽 관리를 방어하기 위해 다수의 군사 시설을 두었다.


이쪽 덕암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리로 내려왔다


서암문


덕암사에 왔다. 북한산에는 절이 엄청 많다










계곡길로 내려간다






서암사


대웅전 내부




고양 북한산 서암사지 (高陽 北漢山 西巖寺址)]

Seoamsa Temple Site in Bukhansan Mountain, Goyang

서암사지는 북한산성 축조 당시인 1711년에 건립된 승군 사찰 중 하나로 성곽 방어와 관리를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서암문 일대의 서쪽 지역을 수비하던 사찰이며, 승군들은 서암문과 인근 성곽 시설 관리를 맡았습니다. 서암문은 시체가 나갔던 문이라 하여 시구문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서암사는 대서문 주변의 군사를 담당하던 승군들의 숙소와 병영으로 사용되었으며, 1910년경까지 사찰의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919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사찰이 소실되고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암사지 일대는 군수품을 보관하던 창고(고창), 대서문, 북문 등 성곽 방어를 위한 주요 시설들이 모여 있던 곳입니다. 서암사지에서는 초석(礎石), 석축(石築), 기와 조각, 그리고 석등이나 불상 등 종교적 성격을 띠는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며, 일부 기와 조각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사찰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 내려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바라본 원효봉과 의상봉,
산 모양도 날카로운 의상과 원만한 원효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