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영혼 프랭크 스마이드 저 안정효 역 수문출판사 1990년 초판 2010년 4쇄 326쪽 ~05.21
singingman
2026. 5. 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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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산악인이 자기 나라와 알프스 그리고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쓴 책으로 명상록에 가까운 글솜씨다. 원제목은 The spirit of the hills이다. 49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27권이나 되는 많은 책을 썼고 죽음에 관해서도 상당히 초연한 편이다.
등산은 그 자체가 삶이고 즐거움이고 인생을 관조하는 행위이다.
고생과 난관과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오르려는 충동에 있어서 사람들은 지극히 복잡한 동기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이 동기들은 하나의 초점을 이루기도 하는데 아름다움이 바로 그 초점이다.
등산은 아름다움의 탐구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어디에나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우리들의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그만큼 더 많은 아름다움을 우리들은 파악한다.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이 음식과 물이나 마찬가지로 필수품이다.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은 정신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문학이나 철학이나 종교, 그 어떤 형태일지라도 인간은 아름다움을 누려야만 한다. 산들은 아름답다. 산은 그 선과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 아름다우며 그 순수함과 소박함과 자유로움에 있어서 아름답고 산은 우리들에게 안식과 만족감과 건강을 가져다준다. 그뿐 아니라 육체적이고 이성적이며 정신적인 한 주체로서 인간에게는 스스로 결정하는 숭고한 능력이 주어졌는데 이 능력 자체는 인간을 창조주와 같은 위치로 상승시킨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육체적으로 이성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 이 발전을 위해서는 산이 인간에게 이상적인 매체 노릇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이 매력을 주지 않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인 제한된 매력을 제공한다. 등산이란 어리석은 장난이며 인간이 그에게 주어진 삶을 그런 식으로 위험에 빠뜨릴 권리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이란 멀리서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천하고 격세 유전적인 현상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산 위에서 두려움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계속 전진함으로써 공포를 정복하려고 애써서는 안 되고 돌아감으로써 그 두려움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전진을 계속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신적인 용기를 필요로 한다. 두려움은 파괴하고 즐거움은 창조하는 힘인데 그 두 가지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등산은 즐길 수 있는 무엇, 소중히 여겨야 할 무엇이어야 하며 두려움이라는 매체에 의해서 짓밟히는 무엇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다의 수면으로부터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이를 때까지 등산은 고의적으로 자극되는 두려움이었던 피해로부터도 해방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신중함으로 두려움을 제거해야 하고 산으로부터 돌아와 진심으로 우리들의 등반이 즐거웠노라고 그러니까 정복이라는 어떤 애매하고 물질적인 동기에 이끌려 행하는 고달픈 일로서가 아니라 대자연과 행복한 관계로서 즐겼노라고 말해야 한다.
위험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용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서 짐승의 본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육체적인 용기와 신에게서 연유하는 정신적인 용기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얘기하자면 등산에서는 즐거움과 행복이 끝나는 곳에서 그 즐거움과 행복이 시작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충분히 진실된 얘기일지도 모르는 이 단순한 말은 그러나 반박의 대상이 된다. 에베레스트는 어떤가? 나는 어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만일 당신이 우발적으로 불쾌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에베레스트를 오른다는 것은 힘들고 괴롭고 심지어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기억력이 나를 속이고 있지는 않다면 나는 달나라로 가는 로켓트 안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이 느낄만한 그런 만족감과 장엄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희열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하루 가운데 황혼녘이라면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 대자연과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시간이다. 그것은 낮과 밤이 맺어지는 시간이며 그때는 낮과 밤의 아름다움이 다 같이 모습을 드러낸다. 황혼녘이면 나는 마치 평화를 원하는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군중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산은 낯익은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초연하게 높이 솟아 있음으로 해서 아름다움을 해석하고 드러내 보여주는 매체 노릇을 한다. 산은 각성을 빠르게 하고 상상력에 불을 붙이며 산은 힘과 아름다움을 눈에 보이게끔 압도적으로 표현하고 산은 우주의 영묘한 리듬으로 은은하게 진동하는 선율들을 울린다. 산의 이 음악은 순수한 조화의 파도에 가볍게 실어 인간이 솟아오르게 하고 한없는 기쁨을 그에게 가져다 준다.
청년기는 중년기보다 많은 활동력을 요구하지만 등산인은 나이를 먹고 경험을 축적함에 따라 스스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한 등반 시즌 동안에 가능한 한 많은 산들을 오른다는 사실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등반의 즐거움이 산을 오르는 행위 못지 않게 그 산들을 구경하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이유로 해서 사람들은 산에 대해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육체적인 에너지와 정신적인 에너지의 다 같이 공통되는 요소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리듬이다. 산에서 육신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리듬을 통해서 뿐이다. 등산에서는 리듬에 맞지 않게 억지로 산을 올라가도록 육체를 강요하는 것보다 성공과 안전에 더 역행하는 요소는 또 없다. 발작적인 동작과 갑작스러운 스피드의 분출과 헐떡거리는 폐와 빈번한 중단과 고르지 못한 에너지의 발산은 리듬이 깨어진 상태임을 의미한다.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해서도 힘세고 다른 기술을 잘 갖춘 사람은 시련에 처했을 때 실패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신체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은 산에서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인내심이며 이것은 흔히 힘과 체중의 비율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자신의 체중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더 좋다는 뜻이다. 나로서는 제시할 통계나 숫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몸집이 큰 사람보다는 체중이 가벼운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파운드당 더 많은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이 간다.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항상 그런 인상을 받아왔다. 영국 공군 중앙의료위원회에 의하면 1933년 에베레스트 등반대에서는 한 사람만 예외일 뿐 모든 대원이 평균치보다 미달이었으며 예외였던 그 한 명의 대원은 심한 병을 알았다고 한다. 힘겨운 원정의 과정에서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가고 가장 힘든 사람이 가장 먼저 쓰러진 고전적인 본보기로서는 해군 하사관 에반서의 경우가 있는데 계속적인 긴장과 장기간에 걸친 고생을 그가 견딜 수 없었다는 능력의 결함은 남극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코트의 원정대가 재난을 만났던 원인들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등산에서는 묵직함과 근육의 힘보다 가벼움과 유연한 민첩함이 더 큰 중요성을 지닌다.
리듬은 기술과 결부되고 리듬은 곧 기술이다. 어려운 지대에서 함께 등반하는 데 익숙한 두 명의 일류 안내인들을 보고 있으면 등산이 힘과 에너지에 얼마나 조금밖에 의존하지 않는지를 깨닫게 된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이 등산인의 격언이다. 빨리 가면서 자주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계속해서 천천히 전진하는 쪽이 더 좋다. 어떤 사람들은 줄곧 빠른 속도로 전진할 수가 있는데 그들은 등산의 올림픽 선수나 마찬가지다. 기술이 훌륭한 등산가는 느긋하게 산을 올라가고 그는 항상 풍경을 즐기면서 올라갈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한다. 너무 빨리 가면 당장 그는 등산과 경치 를 어느 쪽도 즐기지 못한다.
등산은 산을 오르고 명상을 함으로써 육체적인 요소들과 정신적인 요소들의 결합을 이루게 해주기 때문에 즐거운 활동이다. 우리들이 종사하는 일반적인 직업들로부터 야기되는 짜증스러운 골칫거리들을 벗어나 건강한 운동과 이성의 휴식이라는 분명한 혜택들을 얻는다는 것은 제쳐두더라도 등산은 끊임없는 분석과 처리와 경계심을 요구함으로써 두뇌를 훈련시키며 도시 생활의 정신없는 혼란을 겪고 난 다음 이성과 영원히 목욕을 하는 듯한 평화의 삶을 가져다준다. 등산은 평상시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 심지어는 평상시에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휴가를 마련해 줄 뿐 아니라 문명 세계의 인공적인 환경과 긴박한 상황들이 촉진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저해하는 경향을 보이는 자연스러운 기능들을 발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