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노래하는 사람

보령 충청수영성 & 수덕사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보령 충청수영성 & 수덕사

singingman 2026. 6. 9. 22:44
728x90

우리 교회 '동안 걷자'팀의 늙수그레한 5명의 남자들이 함께 가다.



봉고로 함께


행담도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아침 9시에 교회에서 봉고로 출발해서 보령 도착하니 12시나 되어서 점심부터 먹고 수영으로 가다.

오양칼국수




비빔국수는 쫄면맛이 난다.


이 집 칼국수에는 키조개와 해물이 들어 있어서 맛있고 그만큼 비싸다

칼국수에는 만두도 들었고 갑오징어, 키조개등이 들어 있다.

충청수영은 전라좌수영, 경상 우수영처럼 바다를 지키던 해군 사령부라 할 수 있다.
서해안을 지키던 요새다.

수영에 있는 영보정이라는 정자에 앉아 있으니 바닷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일어나기 싫어 한참을 있다가 예산 수덕사로 갔다.

https://song419.tistory.com/m/496

예산 수덕사   14-01-29

덕숭산 등산 가면서도 들르고 가족과도 가고 친구들과도 가고 자주 간 절고려 공민왕의 거문고가 성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의왕이 만공 스님에게 맡겼다고 하는데 다행이 이 절이 잘 보관

song419.tistory.com


수덕사 관람을 마치고 일산으로 돌아오니 8시나 되었다.
그래서 다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gemini에게 이 수영에 관해 알려달라고 했더니 아래와 같다.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조선 시대 서해안 방어의 핵심 거점이자, 충청도 수군의 최고 사령부 역할을 했던 중요한 군사 유적지입니다. 현재는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위치해 있으며, 국가사적 제50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 충청수영성의 개요와 중요성

역할: 조선 초기부터 서해를 통해 한양으로 들어오는 조운선(곡물 운반선)을 보호하고,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는 것이 주 임무였습니다. 또한, 충청도 연안을 순찰하며 해상 치안을 유지하는 핵심 사령부였습니다.

규모: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은 군선 142척과 8,414명의 수군이 배치되었을 만큼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하던 군사 기지였습니다.

전략적 가치: 오천항은 지형적으로 천연 요새를 갖추고 있어, 서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적을 관측하고 대응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2. 주요 역사적 사건 및 전투

충청수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임진왜란: 충청 수군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통제영과 협력하여 연합 작전을 펼쳤습니다. 특히 칠천량 해전 당시 충청수사 최호는 원균과 함께 참전했다가 왜군과 격렬히 싸우다 전사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병자호란: 충청 수영의 수군들은 강화도로 진출하여 청군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기타 사건: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충청수영성 서문 밖 '갈마진두'는 천주교 신부들이 순교한 가슴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3. 유명한 인물

최호(崔湖): 임진왜란 당시 충청수사로,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과 함께 끝까지 항전하다 전사한 인물입니다.

이장생(李長生): 중종 4년(1509)에 충청수영성을 돌로 쌓아 성곽의 기틀을 마련한 수군절도사입니다.

정약용 등 문인들: 군사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성내에 있던 영보정(永保亭)은 뛰어난 경관으로 유명하여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방문해 아름다운 시문을 남겼습니다.

4. 주요 유적지 및 특징

망화문(望華門): 충청수영성의 서문으로,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아치형 석문입니다.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정교한 석조 예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보정: 충청수영성의 최고 명승지로,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합니다. 최근 복원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포토스팟이 되었습니다.

진휼청: 수영성 내 관아 건물 중 하나로, 조선 시대 건물 배치와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최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참고: 충청수영성은 1896년 근대 군제 개편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폐영되었습니다. 현재는 성곽 복원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오천항의 풍경과 어우러져 역사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보령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충청 수영성


보령 충청수영성 (保寧 忠淸水營城)

Navy Headquarters of Chungcheong-do Province, Boryeong

사적 Historic Site

조선 초기에 설치된 충청수영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하였으며, 조운선의 보호와 안내 그리고 외적 방어 역할을 하다가 1896년 폐영되었다.

충청수영성은 1510년 수사 이장생(李長生)이 돌로 쌓은 성이며, 현재는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인 서문을 비롯하여 1,650m가 남아 있다.

북벽과 남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쌓았고, 서벽은 바다와 면한 지점에 쌓았으며, 서벽 앞은 유(U)자 모양의 포구를 이루어 전형적인 조선시대 수군진(水軍鎭)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내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그 중 영보정(永保亭)은 천하명승으로 알려져 조선시대 유명 시인 묵객들이 방문하여 많은 시문을 남기기도 했다.

충청수군은 임진왜란 때는 남해 바다에서 통제사 이순신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고, 특히 칠천량 해전(1597)에서는 수사 최호(崔湖)가 통제사 원균과 연합하여 싸우다가 함께 전사하였다. 병자호란(1636)때는 수사 강진흔(姜振昕)이 강화도 갑곳에서 청군을 방어하는 등 국가 위기 시에 큰 역할을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다른 수영성 유적은 훼손되어 원래의 경관을 잃어버렸지만, 이곳 충청수영성은 지형과 함께 경관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지정면적은 12만 5326㎡이다.


진휼청


충청수영 진휼청 (忠淸水營 賑恤廳)

Jinhyulcheong, Chungcheong Suyeong

진휼청은 충청수영성의 관아 건물 중 빈민 구제를 담당한 곳이다. 조선시대 충청수영 안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휼청으로 추정되는 이곳을 비롯한 객사(客舍)와 삼문(三門)이 남아 있다.

충청수영이 폐지된 이후 민가로 쓰이다가 1994년 국가에서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부엌 등이 있다.

충청수영 고지도(古地圖)등에 나타난 건물 배치로 볼 때 진휼청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다 위에는 배들이 떠 있고...




망화문(望華門)

충청수영성의 서문으로,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아치형 석문.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정교한 석조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영보정

영보정 (永保亭)



영보정은 수영성 안에 있던 정자로 1504년 수사 이량(李良)이 처음 짓고 계속 손질하며 고쳐 온 우리나라 최고 절경의 정자였다.

바다 건너편의 황학루·한산사와 어우러진, 뛰어난 경치로 조선 시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며 시문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다산 정약용, 백사 이항복은 이곳을 조선 최고의 정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수영이 폐지되면서 없어져 현재는 터만 남아 있으며,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보정도가 전해온다.


아치 형태의 서문인 망화문




「해유시화첩」 속 충청수영성과 거북선

「해유시화첩」은 규남 하백원(1781~1844)이 1842년 보령지역 문인 5명과 함께 만든 기행시화첩으로 충청수영성 일대를 돌아보고 느낀 감상을 그림과 시문으로 만들어 엮은 화첩 형식의 책이다. 화첩에는 「영보정」 그림을 비롯하여 「송호」(현재 보령화력 일원), 「황학루」(충청수영 맞은편에 있던 정자) 그림과 각각의 풍경에 관한 여섯 사람의 시가 차례로 실려 있다. 특히 영보정도는 충청수영성에 정박 중인 거북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19세기 중반에도 거북선이 운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화첩은 총 6권을 제작하였으며, 현재 전남 화순에 있는 규남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이미지 하단 캡션: 규남박물관 제공)

















가장 편안한 자세로 쉬어!










수영성에서 나와서 수덕사로 갔습니다.

수덕사 산문


삼층석탑




산수국

밀적금강과 나라연 금강





지국,증장


광목, 다문


성보 박물관이 있던 건물




포대화상




황하정루


접시꽃


맞배 지붕의 검소한 대웅전


고래 모양의 당목


용을 좌대로 사용한 법고


삼층석탑



대웅전 안의 삼세불
약사불은 너무 작은 약함을 손바닥 안에 감추고 있어서 알기 어렵다.


이 풍경이 부석사 앞 풍경에 못지 않다






이응노 화백 사적지


떡갈잎 수국


라나스덜꿩


스피카타 꼬리풀


리시마키아






경허 스님이 생각나는


승탑밭








금강문




이응노 화백 사적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두산 통일 전망대 26.06.16  (1) 2026.06.17
강화 기독교 유적 탐방 26.06.06  (0) 2026.06.06
교산교회 역사관 26.06.06  (0) 2026.06.06
수원 화성 26.05.05  (0) 2026.05.05
추사고택 26.01.22  (1) 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