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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거문고 본문

참고자료

공민왕의 거문고

singingman 2026. 7. 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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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수덕사에 가면 박물관에 이 거문고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거문고가 수덕사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아봤더니 조선말 의친왕과 만공 스님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이 절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공민왕(1330~1374)에 관해 알아보면 그는 정치는 물론 문학, 그림, 음악 등 다방면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이른바 '예술가 왕'이었습니다. 그는 거문고 연주에도 매우 능했는데, 특히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극심한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이 거문고를 타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전해집니다.

서울에 있는 종묘에 가면 그의 신당이 있습니다.
나라를 잃은 왕의 신당답게 아주 초라한 모습입니다.
이 신당 안에 노국공주와 공민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그림이 있습니다.



공민왕 신당


공민왕 신당
Gongminwang Sindang | 恭愍王 神堂
고려 제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정식이름은 '고려 공민왕 영정봉안지당(高麗恭愍王影幀奉安之堂)'이다. 공민왕은 밖으로 원나라를 물리쳐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고 안으로 개혁정치를 폈으며, 개인으로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왕이었다.
공민왕이 고려 최고의 군주는 아닐 수 있지만, 고려를 대표하는 왕 가운데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공민왕이 조선왕조의 최고 사당인 종묘에 모셔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This is a shrine honoring King Gongmin, the 31st monarch of the Goryeo Dynasty, and his wife Nogukdaejang Gongju, a princess from Mongolia. King Gongmin restored the sovereignty and territory of Goryeo by defeating Yuan China and implemented sweeping reforms. He was also a talented artist. A horse painting which is said to have been made by King Gongmin himself is kept inside the shrine. It is extraordinary that a king of Goryeo should be enshrined in Jongmyo Shrine, the supreme shrine of the Joseon Dynasty. The exact reason for this is not known.


신당 안에 있는 공민왕과 노국공주로 추정되는 인물도

공민왕이 사용하던 거문고가 어떻게 수덕사로 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고려 왕실] 공민왕 소장 및 연주
       ↓
[고려 말] 유학자 '야은 길재'에게 하사됨 (또는 전승됨)
       ↓
[조선 왕실] 조선 개국 후 왕실의 보물로 오랜 기간 전승
       ↓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하응)이 소장
       ↓
[일제강점기]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이강)'이 보관
       ↓
(1930년대, 신표로 선물)
[수덕사] 근대 불교의 대선사 '만공스님'에게 기증됨.

이런 과정을 거쳐서 수덕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씨가 이 사실을 알고 수덕사로 찾아가서 아버지의 거문고를 돌려달라고 했더니 수덕사에서는 만공스님이 이 거문고를 받을 때 의친왕에게  염주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오면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염주가 지금까지 있을 리가 없지요.
그리고 이 염주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공민왕의 거문고를 이석씨가 현재 살고 있는 전주의 초라한 승광재에 보관하고 있는 것 보다는 수덕사 박물관에 잘 보관, 괸리되고 있는 것이 훨씬 다행스러워 보입니다.
위의 거문고와 염주 이야기는 이석씨에게서 작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최인호의 소설 '길없는 길'에도 이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이석 황손 만남 15-06-20

성수부부와 함께 이석 황손을 뵈러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승광재로 가다.나는 이번이 세번째 만남이긴 하지만 내가 대인관계에 활달하지 못해서 아직도 그리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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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 - 두 마음 / 비둘기 집 (80년대 라이브)

YouTube에서 마음에 드는 동영상과 음악을 감상하고, 직접 만든 콘텐츠를 업로드하여 친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과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



수덕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공민왕의 거문고
길이 164cm, 너비 20cm이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명칭: 수덕사유물(거문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거문고 | 만공스님 유품 (萬空스님 遺品)
재질: 현학 (Geomungo, Wood)
소장처: 예산 수덕사 (禮山 修德寺, Su-deoksa Temple, Yesan)
시기: 고려 (高麗, Goryeo Period)

만공스님께서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공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거문고이다. 뒷면에는 조선 후기의 대감식안(大鑑識眼) 이조묵이 1837년에 초서로 쓴 찬문과 후일 1937년에 서각된 만공스님의 게송이 있다. 찬문에는 이 거문고가 본래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소장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공 스님'의 게송

一彈云是甚麼面 是何面也
一彈云是甚麼面 是何面也
一彈云是甚麼面 是何面也
一彈云是甚麼面 是石女心動外曲也 咄
湖西德崇山金仙洞小林草堂
佛紀二九六四年

한 번 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훤훤한 곡이로다.
한 번 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의 훤훤한 곡이로다.
한 번 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훤훤하고 훤훤한 곡이로다.
한 번 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돌여인의 마음 가운데 겹 밖의 곡이로다. 아하.
호서 덕숭산 금선동 소림초당 불기 2964년 (1937년)


이 거문고는 왕이 직접 사용하던 물건인 만큼, 당대 최고의 기술과 진귀한 재료가 아낌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아래의 설명들은 gemin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모(玳瑁) 장식: 거문고에서 술대로 전면을 내리칠 때 울림통이 상하지 않도록 가죽을 덧대는 부분을 '대모'라고 합니다. 보통은 소가죽 등을 쓰지만, 공민왕의 거문고는 바다거북의 등가죽(대모)을 말려 붙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쉽게 보기 힘든 대단히 희귀하고 고급스러운 전통 방식입니다.

향낭(香囊) 배정: 악기의 학슬(줄을 거는 부분의 장식) 쪽에 품격 있는 향낭(향주머니)을 매달아 두었습니다. 덕분에 연주자가 술대를 쥐고 거문고를 연주할 때마다 은은한 향내가 사방으로 퍼지도록 설계되어, 시각·청각·후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최고의 격조를 자랑합니다.

조선 왕실의 몰락 과정에서 의친왕 이강은 평소 깊은 교분을 나누던 만공스님에게 믿음의 징표(신표)로 이 거문고를 선물했습니다. 만공스님 역시 불교계의 큰스님이자 대단한 풍류가객이었기에, 휘영청 달이 밝은 밤이면 수덕사 암자 앞 바위에 앉아 이 거문고를 연주하며 세상의 번뇌를 씻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거문고의 뒤판에는 세월을 거치며 이 악기를 거쳐 간 이들의 감회와 내력을 적은 조선 시대 문인 이조묵의 찬문, 그리고 1937년 만공스님이 새겨 넣은 불교적 게송(시구)이 함께 새겨져 있어 그 역사적 증거를 더해줍니다.  

거문고에 관해 알아보면
거문고는 오랜 세월 동안 '백악지장(百樂之長, 모든 음악의 으뜸)'이라 불리며 한국 전통 음악에서 가장 선비다운 기품을 지닌 악기로 꼽혀왔습니다.

거문고의 탄생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명확히 전해집니다. 4세기 무렵, 중국 진(晉)나라에서 고구려에 칠현금(七絃琴)이라는 악기를 보냈으나 고구려 사람들은 그 연주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에 고구려의 제2상(총리급 관직)이었던 왕산악(王山岳)이 칠현금의 본래 제도를 크게 개조하여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거문고의 시초입니다. 왕산악이 이 악기로 새로운 곡을 지어 연주하자, 어디선가 검은 학(현학, 玄鶴)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이로 인해 '현학금(玄鶴琴)'이라 부르다가 훗날 '현금(玄琴)' 또는 '거문고'가 되었습니다.

학술적으로는 고구려의 옛 이름인 '검, 고마(곰)'에서 유래하여 '고구려의 현악기'라는 뜻을 지녔다는 설이 유력하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고구려인들이 거문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무덤 벽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무용총이나 통구 12호분 등의 벽화를 보면, 오늘날처럼 무릎 위에 올리거나 혹은 바닥에 편하게 앉아 거문고의 원형이 되는 악기를 연주하는 고구려인들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시작된 거문고는 시대의 흐름과 음악적 요구에 따라 그 역할과 음악적 성격이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거문고는 신라의 남쪽 지역(현재의 지리산 인근)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신라의 음악가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구하며 30여 곡의 새 곡을 지었고, 이를 제자들에게 전수하면서 신라 전역에 보급되었습니다. 이후 가야금, 향비파와 함께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세 가지 현악기인 '삼현(三絃)'의 중심 악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거문고는 궁중 의식 음악인 향악(우리 고유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악기가 되었습니다. 송나라에서 들어온 당악이나 아악과 대비되는, 민족 고유의 정서를 표현하는 대표 악기로서 궁중과 지식인층에서 두루 연주되었습니다.

조선 시대는 거문고의 황금기였습니다. 숭유억불 정책과 선비 문화 속에서 거문고는 단순한 오락용 악기가 아니라, 학문과 덕성을 닦는 '수양의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사랑방 문화의 중심에서 풍류를 즐기던 가곡, 영산회상 등 관조적이고 절제된 '정악(正樂)'을 연주하는 데 쓰였습니다. 선비들은 방에 거문고를 걸어두는 것 자체를 풍류의 완성으로 보았습니다.

19세기 말, 전라도 출신의 명인 백낙준(白樂俊)에 의해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고고한 선비의 음악에만 쓰이던 거문고로 서민들의 애환과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독주 음악인 '거문고 산조(민속악)'가 창작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선비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으나, 거문고 특유의 묵직하고 강렬한 음색이 산조의 극적인 매력을 잘 살려내면서 근대 거문고 음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거문고가 가야금이나 다른 현악기와 구별되는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은 '쾌(괘)'와 '술대'에 있습니다.

가야금은 줄마다 움직이는 안족(기러기발)이 떠받치고 있는 반면, 거문고는 울림통 위에 고정된 나무 받침대인 '괘(棵)'가 16개 솟아 있습니다. 왼손 손가락으로 이 괘를 짚고 밀어 가며 음높이를 조절합니다.

거문고는 손가락으로 줄을 뜯지 않고, 대나무로 만든 단단한 술대를 손에 쥐고 줄을 '내리치거나 거두어 뜯으며' 연주합니다. 이 때문에 현악기이면서도 장구처럼 강한 타악기적 타격음과 묵직한 울림을 동시에 냅니다.

오늘날 현대 음악에 이른 거문고는 전통 정악과 산조에 머무르지 않고, 줄의 개수를 늘린 개량 거문고(소프라노·베이스 거문고 등)의 개발과 함께 전자 이펙터를 활용한 현대 음악, 서양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크로스오버 재즈 등 전 세계 무대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소리를 내는 한국의 대표 악기로 또 한 번 진화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거문고는 총 6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연주자 기준으로 안쪽(몸쪽) 줄부터 바깥쪽 줄까지 각 줄마다 고유한 이름과 역할이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 거문고 6줄의 이름과 역할

1. 문현 (文絃) 가장 안쪽에 있는 줄로, 주로 괘를 짚지 않고 둥근 안족(기러기발) 위에 얹어 고정된 낮은 음을 내는 바탕줄입니다.

2. 유현 (遊絃) 두 번째 줄로, 거문고에서 가장 가늘고 높은 소리를 냅니다. 이름 그대로 괘 위를 '놀며' 화려한 멜로디를 주도하는 핵심 줄입니다.

3. 대현 (大絃) 세 번째 줄로, 가장 굵고 깊은 소리를 냅니다. 유현과 쌍을 이루어 괘 위에서 연주되며, 거문고 특유의 묵직하고 거친 저음을 담당합니다.

4. 괘상청 (棵上淸) 네 번째 줄로, 괘 위에 떠 있는 줄입니다. 멜로디를 연주하기보다 유현이나 대현을 뜯을 때 함께 건드려 깊은 울림을 주는 공명줄(청줄) 역할을 합니다.

5. 괘하청 (棵下淸) 다섯 번째 줄로, 괘상청과 마찬가지로 안족 위에 얹혀 있으며 연주 중에 맑은 청소리를 더해줍니다.

6. 무현 (武絃) 가장 바깥쪽에 있는 굵은 줄로, 문현과 대칭을 이루며 주로 낮고 웅장한 소리를 보조합니다.

6줄 중에서 실제로 왼손으로 괘를 짚어가며 바쁘게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줄은 주로 2번 유현과 3번 대현입니다.
나머지 줄들은 주로 괘를 짚지 않고 본연의 음을 내며 전체적인 소리를 풍성하게 감싸 안는 역할을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개량 거문고들은 이 전통 6줄에 줄을 더 더해 7현, 8현 등으로 음역대를 넓힌 것들입니다.

수백년이 지난 위의 거문고가 지금도 연주가 가능하다고 하니 참 대단합니다.
해남에 있는 고산 윤선도(1587-1671) 의 고택 녹우당에 가면 박물관에 그가 사용하던 아양이란 거문고도 복원되어 있다고 합니다.

해남 녹우당 21-02-02

성수 부부와 함께 가다.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이 녹우당에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그런데 막상 가 보니 원본은 보관상의 이유로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지 않고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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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에서 복원한 고산유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