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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커피

singingman 2026. 7. 2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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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인의 대부분이 온종일 술에 절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시 유럽은 상하수도 시설이 엉망이어서 대부분의 물이 오염되어 있었다. 물을 그냥 마시는 것은 이질과 장티푸스 균을 들이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주로 아침부터 맥주 수프라는 것을 먹었다. 에일 맥주를 데운 후 딱딱한 빵에 적셔 먹는 것이다.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묽은 맥주를 물 대신 마셨다.

이 때문에 17세기 유럽인들은 하루 종일 몽롱하고 나른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교수와 학생들에게 매일 1갤런(약 3.7리터)의 에일 맥주를 식수로 배급했다. 철학자나 과학자들도 알코올 기운에 취해 우주와 인간의 이성을 논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 이상이었다. 전염병의 두려움 없이 수분을 섭취하면서도 뇌세포를 각성시키는 신비의 액체였다. 유럽인은 처음으로 술에 취하지 않은 맨정신으로 밤늦게까지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워했다.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가 그 놀라움을 글로 적었다.

"커피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맑은 음료이자 뇌의 강력한 자양분이다. 안개처럼 끼어 있던 몽상의 구름과 우울한 무게를 단숨에 걷어내고 진실의 번뜩임으로 사물의 실재를 맹렬하게 비춘다."

이 즈음 생긴 커피하우스에서는 각성된 이들이 모여 평등하게 1페니짜리 커피를 앞에 두고 토론을 이어갔다. 커피하우스에는 최신 팸플릿과 신문도 구비되어 도서관의 역할까지 했다.

커피하우스는 수많은 제도와 아이디어의 산파가 되었다. 런던의 로이드 커피하우스에서는 동방의 후추와 청자를 실은 배가 난파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 처음 만들어졌다.

왕립 거래소에서 시끄럽다는 이유로 쫓겨난 주식 중개인들이 동인도 회사의 주식을 거래하기도 했다. 증권거래소는 커피하우스의 탁자 위에서 탄생했다.

그레시안 커피하우스에서는 탁자 위에 돌고래 시체를 올려놓고 해부학적 구조를 논하기까지 했다니 당시의 커피숍은 지성의 신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동방의 커피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커피숍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들이 모여 중력 따위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 없었다면 <프린키피아>의 탄생은 얼마나 미뤄졌을지 모른다.

역사가 톰 스탠디지(Tom Standage)는 커피가 인류의 역사를 바꿨으며 계몽의 촉매제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왜 아니겠나.
(김효경의 글에서 복사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