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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 3 유홍준 (주)눌와 2012년 493/514쪽 7/30~8/5 2015-08-05 16:49:42 본문

독서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 3 유홍준 (주)눌와 2012년 493/514쪽 7/30~8/5 2015-08-05 16:49:42

singingman 2022. 12. 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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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조선의 그림과 글씨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로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 시대 사대부들에게 문사철은 전공 필수과목이고 시서화는 교양선택이라고 정옥자는 말한다.

조선 성리학의 이상을 구현하는 사회 덕목은 선비정신이다.

선비정신은 일본의 무사도에 비견되는 높은 정신적 가치였다.

조선선비들의아름다움에 관한 미학은 검이불루(儉而不陋)-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와 대교약졸(大巧若拙)-큰 재주는 어수룩해 보인다-이다.

조선 미술사는 크게 나누어

1392~1550년 중종 연간까지를 초기

1550~1700년 숙종 연간까지를 중기

1700~1830년 순조 연간까지를 후기

1830~1910년 대한제국까지를 말기로 구분한다.

 

조선의 그림은 도화서의 직업화가가 그린 화원의 그림과 문인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크게 구분된다.

조선의 그림은 기록화, 장식화라는 실용화와 감상화가 양대 산맥을 이룬다.

도화서 화원외에 차비대령화원이라는 규장각 소속의 화원도 있었다. 예비화원의 성격이 강했다.

궁중 장식화로는 일월오봉도와 십장생도등이 대표적인 그림들이다.

병풍에 그린 그림들이 궁중연회나 민간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궁중기록화는 또다른 중요한 이 시대의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조선 초기 그림들은 서양이나 마찬가지로 제일 중요한 그림들이 초상화들이다.

초상화눈 왕을 그린 어진, 공신초상, 선비초상들이 있다.

어진을 그린 화가는 높은 대우를 받았다.

초기에는 주로 관복을 입은 모습을 그렸지만 윤두서 자화상처럼 자기 얼굴만 그린 그림도 나온다.

김홍도도 자화상을 남겼다.

절에는 조사전에 고승들의 초상화가 많이 남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는 불교가 민간에 많이 유행하였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꿈에 본 세상을 환상적인 그림으로 그렸다.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도원경을 동시에 그렸다.

일과예란 선비들이 한 가지의 그림을 취미로 잘 그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들면 신사임당은 초충도를 잘 그렸고 이암은 강아지 그림을 잘 그렸다. 

신잠의 설중탐매도

 

김명국 설중귀려도

조선 후기에는 문인화가들이 많이 나왔다.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가 나온 것은 명나라가 망하고 오랑캐인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자 조선의 선비들은 조선이 소중화라는 생각을 갖게되고 그로 인해 우리 것을 중시하게 되어 금강산 유람도 다녀오면서 시도 짓고 그림도 우리 식으로 그리게 된다

 

관아재 조영석의 이잡는 노승

 

화재 변상벽의 묘작도

 

국보 216호 정선 인왕제색도

 

정선 박연폭포

 

신윤복 미인도

 

변상벽 모계영자도

 

김명국 달마도

김명국은 술을 엄청 좋아했는데 취하지 않고는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취옹이란 호도 즐겨 사용했다

욕취미취지간 - 취하고는 싶으나 아직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명작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도 있다.

심사정이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인 지두화 절로도해도 - 달마가 갈대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그림

후기에는 정조연간이고 조선최고의 화가인 김홍도의 작품들이 나온다.

김홍도는 표암 강세황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며 사제관계를 맺게된다.

 

중기에는 절파화풍이 대세를 이룬다.

절파화풍이란 중국 절강성 출신 화가들이 앞 시기 원말사대가의 조용하고 담담한 문인화풍과는 달리 호방한 필법과 강약이 드러나는 묵법을 사용한 활기 넘치는 화풍을 말한다.

김홍도 연꽃과 잠자리 - 하화청연도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후기 시대에는 도화서 화원의 전성시대다.

 

김지의 동자견려도

 

김두량 월야산수도

 

정선 계상 정거도

 

장승업의 꿩 그림과 수리 (좌:쌍치도 우:호취도)

영모도 란.. 새를 그린 그림 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의 깃털 또는 동물의 깃털 이란 의미로 확장 되어..
새 나 동물의 털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영모도 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또 대련 이란 동일한 형식으로 붙는 글 이나 그림을 말 하는데..
그래서 영모도 대련

서예의 서체에는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등이 있다.

추사는 비석 탁본을 연구하면서 글씨를 연구했다.

중국에 가서 당시의 유명인사인 완원, 옹방강과 사제관계를 맺으면서 고증학에 심취한다.완원에게서 완당이라는 그의 호도 나온다.

 

중국 산수화의 전통은 창시자인 종병이라는 사람에게서 시작하는데 젊을 때의 그는 처와 함께 수려한 중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보았지만 늙어서는 자신이 사랑했던 산수를 방 벽에 그려놓고 누워서 노닐었다고 한다.

와유 - 이것이 중국 산수화의 태동이다.

 

신윤복 단오풍정 - 당시로서는 춘화에 가까운 대단한 그림이다.

중국의 춘궁화는 성희의 갖가지 자세를 무술영화의 허풍처럼 과장되게 그리고 일본의 우키요예는 과장된 성기묘사로 일관하며 인도의 춘화는 요가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동작의 성희가 주를 이루고 몽골의 춘화는 말 타고 달리면서 마상에서 성교하는 그림이 주를 이룬다.

후기에는 정약용, 김정희 등의 그림과 글이 나타나고 북학의 영향을 받는다.

말기에는 오원 장승업이 나타난다.

대원군도 난을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