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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용재총화 성현 저 이대형 역 서해문집 2012년 247쪽 6/16~6/19 본문

독서

용재총화 성현 저 이대형 역 서해문집 2012년 247쪽 6/16~6/19

singingman 2023. 1. 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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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의 호가 용재다. 그래서 그의 수필집 이름이 용재총화다.

역자가 10권으로 된 것 같은 책을 3부로 편집했다.

성현(1439~1504년)은 세종21년부터 연산군10년까지 살았다. 

1부는 조선시대 문화를 이야기하고 2부는 인물들과 관계된 일화들을 실었고 3부는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저자는 성종 때의 문신으로 음악에도 조예가 있어서 악학궤범을 펴내기도 했다.

문장가로는 신라의 최치원을 꼽았고 서예가로는 청량산에 가면 있는 김생굴의 주인공 김생을 꼽았다.

화가로는 고려시대의 공민왕을 꼽았고 음악가로는 향비파 연주자로 典樂 송태평과 당비파의 송전수를 일인자라고 했다.

 

음악을 하는 3가지 방식은

1. 5음과 12율의 근본을 알아서 사용하는 경우

2. 연주하는 완급을 알아서 악보를 만드는 경우

3. 솜씨가 정묘하고 천기가 절묘한 경우다.

 

한양에서 노닐만한 곳 중에 으뜸은 삼청동이다.

진관사가 이때부터 이미 경치가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문과에 급제한 신참을 新來라 불렀는데 선임들이 처음에 이 사람을 아주 많이 부려먹고 대접을 받았다.

다른 책에 보면 선임들 대접하느라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처용놀이가 이 때에도 있었고 불놀이라는 이름의 폭죽놀이도 있었던 것 같다.

조선이 불교국가이긴 하지만 이 시대에 중들도 활약하고 있었고 기일에는 중을 불러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정초에는 3일간 모든 관청이 쉬었다.

정월 보름은 원석이라하여 약밥을 마련했다.

2월 1일은 화조라 하여 새벽에 뜰에 솔잎을 뿌려서 냄새나는벌레를 쫓았다.

3월3일은 상사라고 하고 답청하는 절기로 들에 나가 꽃지짐을 하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새로 난 쑥을 뜯어 설고라는 떡을 해 먹었다.

4월 8일은 연등으로 석가탄신일이다. 집집마다 장대를 세우고 등을 단다.

5월5일은 단오로 쑥호랑이를 문에 걸고 술에 창포를 띄운다. 남녀가 이 날은 동네에서 동아줄을 잡고

음탕한 짓거리도 했다.

6월15일은 유두로 더위를 피하여 동천에 머리를 물에 풀고 떴다 잠겼다 하며 술을 마신다.

수단병이라는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7월15일은백종이다. 절에서 갖가지 꽃과 과일을 심어 우란분(아귀도에 떨어진 망령을 위하여 여는

불교 행사)을 마련한다.

중추에는 달을 완상하

9월 9일에는 높은 데 오르고

동지에는 팥죽을 먹고

경신일에 잠을 자지 않는다.

여색을 모르는 3사람이 있다. 제안, 행원 한경기,자고 세사람이다.

평안도 강변의 꿩이 가장 좋아서 진상품이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청의 동자 수십명이 버드나무 가지로 도마뱀이 든 물 항아리를 때리면서

"도마뱀아, 도마뱀아!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해내라. 비를 많이 내리면 너를 놓아주겠다"라고 노래한다.

세종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언문을 만들라고 신숙주, 성삼문등에게 명했다.

초종성 8자, 초성 8자, 중성 열두자로 글자 모양은 산스크리트어를 따라 만들었다.

왕십리 들판에는 순무,무,배추를 심었고 청파역, 노원역에는 토란을 심고 이태원에는 다료를 심었다.

밀양에는 밤, 전라도 사람들은 생강을 좋아한다.

불교가 성행해서 절에는 노비도 많았고 그 부요함이 지나쳤다. 태종은 12종 가운데 2종파만 남기고 사원의

밭도 압수했다.

승려들이 음탕한 짓을 하고 돌아다녔고 유생들도 제사를 지낼 때는 승려를 불렀다.

유생이 독서할 때는 절로 올라갔다.

고시공부하는 사람이 절로 올라간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성종 때부터는 승려면허를 내 주지 않아서 승려들이 줄어들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귀신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귀신의 존재를 확실히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원 평강지방에 왕실 사냥터가 있었다.

 

중국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중국인은 순박하고 의심이 없다. 중국인은 정숙하여 말이 없다. 우리는 많이 먹는다. 중국인으 많이 먹지

않는다.

한 끼에 구운 떡 하나만 먹는다. 우리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새벽밥, 아침밥, 낮밥이 있고 무시로 모여서

술을 마신다.

중국인들은 관직에 오르면 공경대부라도 집에서 밥과 고기 한 그릇을 준비하여 관사로 가져와 먹는다.

우리는 상하관계가 질서가 문란한데 중국은 아주 엄하다"

 

동래 온천이 가장 좋고 온양 온천은 따뜻한 정도가 알맞다. 세종과 세조가 온양 온천에 여러 차례 행차했다.

황해도에 온천이 가장 많다.

 

승려는 승과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세종은 집현전 신하들에게 휴가를 주어서 진관사에 가서 독서를 하게 했다.

누에 기르는 집이 많아서 뽕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이익을 많이 얻었다.

삼포에 왜구를 살게 했는데 삼포는 동래 부산포, 진해시에 해당하는 웅천 내이포(제포), 방어진과 장생포

사이에 있는울산 염포다.

일본에는 황제와 국왕이 있다.(천황과 쇼군을 말한다.)

천황은 실권이 없다. 그래서 권세가 없으면서 높은 사람을 일러 왜황제라 한다.

성불도라는 놀이판이 있다.내가 어릴 때 했던 영생도라는 놀이도 여기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6각형으로 된 윤목(주사위)을 던져서 논다.

 

이 책의 저자 성현은 예조 판서와 장악원제조를 겸했다.

"빈한한 선비는 열심히 독서해도 한자리 차지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일찍이 급제하여 관직이

육경(육조판서)에 이르고 밤낮으로 노래소리에 묻혀있으니 어찌 이렇듯 태평한 음악을 혼자서 누린단 말인가"

라고 했다.

 

저자와 방옹이라는 사람이 조희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말을 훔쳐오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요승이라고 불린 신돈은 양기가 쇠할까 봐 매일 흰말의 음경을 잘라 먹었고 지렁이를 회쳐서 먹기도 했다.

 

귀신에게거나 귀신을 호통치는 저자의 외숙부 안공의 이야기도 있다.

 

홍씨 성의 재추(중추원과 재부의 신하)가 17~8세의 예쁜 여승을 범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이 여승이

죽어 도마뱀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큰 뱀이 되어 원수를 갚으니 나중에 홍재추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결국 죽었다.

 

신재추는 성격이 급했다.

파리가 어지러이 밥그릇에 모여들어서 쫓아내도 다시 모이자 재추는 화가 나서 그릇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부인이 아무 것도 모르는 미물한테 왜 이리 화를 내시오 하자 재추가 눈을 무라리며 말했다.

"파리가 당신 남편이오? 왜 편을 드시오?"

 

대제학 박연은 음악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피리를 잘 불어서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의 관원에게서 피리를

배웠는데 얼마 후 그 관리가 저 보다 더 뛰어나서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

편경의 소리를 듣고 두께가 맞지 않음을 알 정도였다.

 

서로 높이 올라갔다고 말하는 이야기의 원조가 여기 있다.

손을 올려보니 뼈다귀가 잡히지 않느고 묻고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그게 자기 다리라고 해서 이 사람이

일등한다.

 

상좌가 자기가 모시는 스승인 사승을 속이는 일은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과부를 탐한 중이 온갖 고초를 겪는 이야기에서 엄청 고생한 사람을 물 건넌 중(도수승)이라 부른다.

 

이 시대의 이야기에도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다룬 이야기가 참 많다.

 

맹인을 속이거나 골탕먹이는 일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어우동은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방탕해서 하녀와 함께 음란한 짓을 많이 했다.

김사문과 관기의 사랑 이야기도 있다.

 

실속없이 허풍떠는 것을 '목서방 거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