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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박제가와 젊은 그들 박성순 고즈윈 2006년 247쪽 7/13~7/18 본문

독서

박제가와 젊은 그들 박성순 고즈윈 2006년 247쪽 7/13~7/18

singingman 2023. 1. 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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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18세기 실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초정 박제가의 일대기를 다룬 책.

초정이라는 호는 초사, 즉 초나라 말로 쓰인 이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소는 초나라 시인 굴원이 쓴 장편시를 말한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四家詩人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대 청나라 최고 지식인 반정균으로부터도 답장을 받았다.

시서화에 뛰어났고 

 

목우도, 박제가

 

의암관수도, 박제가

서얼 출신이지만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래서 이덕무, 유득공, 서리수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받았다.  

연암 박지원 보다는 어렸지만 뜻이 맞아서 교제하였으며 당시 청나라의 좋은 점을 배워서 우리 정치나 경제에

활용하려고 했던 점은 두 사람이 비슷하다.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얻지 못한 사람을 선달이라 부른다.

박제가보다 7살 위인 무인 백동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1771년 과거에 급제하고도 오랜 기간 선달로 지내다가 1788년에야 병사들에게 창검 무예를 지도하는

장용영 초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1790년에는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공로로 비인 현감에 임명되었다가 1816년에 세상을 뜬다.

나중에 벼슬을 그만두고 오지 중의 오지인 인제 기린협으로 송아지를 메고 들어가서 살게 된다.

박지원이 백동수와 함께 유람할 때 황해도 금천군 연암협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연암협이 그의 호가 된다.

 

백탑은 지금의 탑골공원(파고다 공원)에 있는 탑을 말한다.

 

북학파의 선구자인 홍대용은 연경을 방문했을 때 성당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보고 부탁해서 연주하기도

다고 한다.

미리 양금을 연주할 줄 알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서인 노론 벽파가 득세한 시절에 서얼이었던 북학파 사람들이 현명한 군주인 정조를 만나서 뜻있는 일들을

하였지만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이들의 앞길도 끝나고 만다.

 

박제가가 살던 시대는 이미 한세기 전에 망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청나라를 오랑캐로

무시하면서 우리가 소중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의 뛰어난 문물도 무시하고 오직 주자학에만 경도된 사람들이 조정에도 많이 있었고 이들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

 

박제가를 비롯한 북학파들은 실사구시의 학문을 중시하고 청나라의 수레나 선박을 우리 나라에 도입할

것을 주장했고 심지어는 서학을 들여올 것도 생각했다.

이들이 연경에 갔다올 때 이미 그곳에서 천주교 신부들을 만나서 서양의 뛰어난 과학적 문물들을 접했고

그것이 우리 삶에 가져다 주는 유익을 알고 있었지만 오로지 경학에만 가치를 두고 있는 당시의 실권자들은

북학파의 이런 주장들을 코웃음치고 심지어는 믿지도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후배 가운데 정약용같은 뛰어난 천재가 나오고 조선은 최고의 문화 전성기인 르네상스기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