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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김태수 저 황소자리 2005년 376/391쪽 10/10~10/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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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김태수 저 황소자리 2005년 376/391쪽 10/10~10/14

singingman 2023. 1. 1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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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대 생활사를 연구한 책.

1900년대 초반의 생활사를 주로 신문과 광고등을 참고해서 쓴 책이다.

저자는 신문기자 출신이어서인지 이런 자료들을 많이 구해서 신뢰도를 높였다.

원래는 양반들이나 데리고 놀던 기생을 돈만 있으면 누구나 데리고 놀 수 있게 되자 양반들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解語花(말을 이해하는 꽃)인 기생은 1920년대 이전까지 가무와 음률에 능한 고급 엔터테이너여서 이 분야의 지식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함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갑오개혁 이후 기생이 3패로 나뉘면서 1패는 궁중 어전에서 가무를 하는 일급이었지만 3패는 술좌석에서 잡가나 부르면서 매음도 하던 사람들이었다.

권번에서는 기생들을 엄하게 훈련시켜서 이들이 가곡,서화,수신 창가,조선어,산술,우조 시조,사사,음악,무용,

동서음악등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도록 3년동안 가르쳤다.

이들 중에는 배우나 가수도 나오고 했지만 일제 시대를 지나면서 점점 질이 떨어지고 결국은 창녀와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까지도 검정 고무신은 질기고 대중적인 신발이었고 나중에 흰 고무신이 나오면서 밀려나게 되었다.

짚신을 신던 사람들에게 검정 고무신은 고급 신발이었고 운동화가 나올 때까지는 인기있는 신발이었다.

 

1920년대에 성병이 조선에 많이 퍼져 있었고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상태는 심각하게 되었다.

공창도 만들어지고 하면서 성병이 더 만연했다.

 

영어는 1890년대쯤부터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서양인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세운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고속 출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영어의 힘이었다.

배재학당에서 영어를 배운 이승만은 고종 황제 폐위 음모로 감옥에 있으면서도 영어를 가르쳤고 양주동은

3인칭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눈길 20리를 걸어가서 배웠다고 한다.

윤치호는 영어로 출세한 사람이다

 

아지노모도가 1909년에 우리 나라에 알려지면서 빠른 속도로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나중에 미원이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28년 초콜릿을 일본의 모리나가 제과업체가 선전하면서 포켓에 넣을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이라고 광고했다.

캐러멜, 껌등이 이 시기에 인기있는 간식이었다.

 

1920년대에 너무 가난하고 먹을 입은 많아지자 산아제한을 장려했다.

콘돔도 선전했고, 하지만 일본은 우리 국민을 자기들의 군인으로 기르기 위해서 산아제한을 억제했다. 

 

창씨 개명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서 출세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춘원 이광수는 친일인사로 이 책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다.

 

1920년대 영화는 배우보다 변사가 더 인기있고 수입도 좋았다.

 

1910년대 후반에 자동차가 처음 들어온 것 같고 고종황제는 궁궐에서 타고 다녔던 것 같다.

버스 차장은 인기있는 직업이었다.

 

라디오는 처음에는 큰 통속에서 소리가 났다. 그래서 촌 노인들은 하루 종일 말하는 사람이 힘들겠다고

먹을 거라도 통 뒤로 갔다주라고 했다고 한다.

 

비누라는 말은 더러움이 날아간다는 뜻의 비루(飛陋)에서 연루했다고 한다.

이것을 이탈리아의 사보나 지방에서 가져왔다고 해서 사봉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사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양치질에 대해 연세대 홍윤표 교수는 양치라는 말이 버드나무 가지를 일컫는 양지(楊枝)라는 말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발음하는 것도 이 양지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한다.

 

여자 화장품 분 종류 중에 박가분이라는 것이 엄청난 인기가 있었지만 나중에 이 화장품에 사용된 납 때문에

사용자들이 납 중독이 되어서 이 회사는 망한다.

이 박가분은 두산그룹 창업자 박두병의 아버지인 거상 박승직의 아내 정정숙이 부업삼아 만들기 시작한 것이

대박을 터뜨렸다.

동동구리무는 러시아 혁명을 피해 한국으로 온 백계 러시아인들이 북을 둥둥 치면서 이 크림을 팔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1920년대 미쓰코시 백화점이 우리 나라에서 영업을 하면서 우리 백화점인 화신도 생긴다.

백화점 종업원들은 예쁘고 지체있는 집안 미인들이 많아서 신부감으로 인기가 높았다.

 

막걸리는 약주와 다른 점이 막 걸렀다는 속성주라는 뜻이다. 그래서 상류사회에서는 막걸리는 술로 치지 않았다.

 

커피는 고종이 좋아했고 독살설과 관련해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일본군이 한 것이 아니고 러시아 말을 잘 해 고종의 총애를 받던 김흥륙이 러시아와 통상하면서 거액을 착복했다가 들통나 흑산도로 유배를 갈 상황이 되자 앙심을 품고 궁중 요리사를 시켜 아편독을 넣어 고종과 순종에게

주었는데 고종은 커피 맛을 정확히 알고 있어서 마시지 않았는지 늦게 마셨느지 해서 괜찮았고 순종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만큼 마셨다고 한다. 나중에 음모가 발각되어 김흥륙은 처형당한다.

다방은 할 일없는 조선인들이 시간 보내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손기정 남승룡이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계를 제패하자 조선인들의 사기가 엄청 높아졌다.

손기정이 우승하고 남승룡이 3등을 했다.

 

전당포는 고리대금업이었지만 갑자기 돈이 필요한 서민들에게는 꼭 필요한 금융기관이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전당포로 돈을 많이 벌었고 맡긴 물건들을 제 때 못 찾아가면 임의로 처분해서

이익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바리깡은 일본말이 아니고 이 기구의 발명가인 바리캉 마르의 이름이다.

단발령에 반대하던 지조있는 여인들 가운데는 남편이 단발하자 자결하기도 했다.

단발머리 신여성을 도던걸(Modern girl)로 불렀는데 비난조고 모단(毛斷)걸로 부르다가 못된 걸로 부르기도

했다.

 

1900년 전후의 여인들 사진에서 유방을 내놓은 사진들이 많이 있었는데 아들을 낳은 자랑으로 그랬다는

기사를 다른 책에서 본 것 같다.

이후 양장이 나오고 몸빼를 일본이 권했고 여자 바지도 나오게 된다.

 

1920년대에 포르노그라피도 나오고 발기부전 치료제도 나오고 한다.